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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출 기로에 선 액상형 전자담배] 유통 막히고 정부 규제 강해지고 

 

‘사용 중단’ 권고 후 편의점·대형마트 등 판매 중단… 액상 담배 소매점도 경쟁력 잃어

▎사진:© gettyimagesbank
정부의 ‘사용 중단’ 권고가 내려진 액상형 전자담배가 사실상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편의점 GS25는 권고가 나온 지 하루 만인 10월 24일 가향 액상형 전자담배의 판매를 중단했다. 이어 CU와 세븐일레븐, 이마트24도 일제히 판매·공급 중단을 선언했다. 대형마트와 면세점도 판매 중단에 동참하고 나섰다. 유통이 막힌 셈이다. 특히 정부가 담배사업법을 연내 개정해 안전성과 제세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액상형 전자담배 시장을 다잡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현행법을 피해 성장해온 액상형 전자담배 소매 시장까지 퇴출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내외에서 폐손상 사례 보고 잇따라


지난 10월 24일 편의점 업계 1위 GS25 매대에서는 향이 들어간(가향) 액상형 전자담배 4종이 사라졌다. 쥴랩스코리아가 지난 5월 24일 내놓은 쥴(JUUL)의 ‘트로피칼’ ‘딜라이트’ ‘크리스프’ 등 3종과 같은 달 27일 KT&G가 출시한 ‘시드 툰드라’ 등 4종이다. 정부가 지난 10월 23일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경고 수위를 ‘사용 자제’에서 사용 중단으로 높여서다. 정부는 “국내에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이 원인으로 보이는 폐손상 사례가 보고됐다”며 “미국에서는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에 따른 것으로 추정되는 폐손상 사례가 1479건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현재는 GS25를 포함한 대부분 편의점에서 가향 액상형 전자담배를 찾을 수 없다. 점포 수 기준 업계 2위인 CU와 3~5위를 차지하고 있는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미니스톱이 모두 정부 발표 4일 만에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공급 중단에 나섰기 때문이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1~5위 업체가 국내 전체 점포의 90%를 차지한다”면서 “담배의 70%가 편의점에서 팔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액상형 전자담배는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됐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는 “가향에 속하지 않는 박하향 등 5종은 정상 판매되지만,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액상형 전자담배 퇴출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정부가 액상형 전자담배 유해성 문제를 제기하자 대형마트와 면세점까지 줄줄이 판매 중단에 동참하고 있어서다. 유통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와 삐에로쑈핑, 일렉트로마트 등 대형마트가 전자담배 기기·액상 판매를 중단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10월 28일 액상형 전자담배 가향 제품 신규 공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대상 제품은 쥴랩스, 시드 툰드라, 픽스, 비엔토 등 액상형 가향 전자담배 12종이다.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박하향인 쥴 프레쉬를 포함한 액상 5종의 신규 발주를 중단했다.

유통이 막히면서 생산도 멈췄다. 담배회사 KT&G는 현재 액상형 전자담배 기기인 ‘릴베이퍼’에 쓰이는 가향 액상 시드 툰드라 생산을 하지 못하고 있다. 편의점 등 주요 판매처가 판매를 중단하면서 이미 생산한 액상이 소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KT&G 관계자는 “편의점 등에서 판매를 재개해 재고가 소진되면 제품 생산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향 액상형 전자담배를 만드는 킴리코리아 역시 자사 액상형 전자담배인 ‘버블몬’ 생산을 중단했다. 주요 판매처인 편의점 세븐일레븐에 버블몬 납품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원인이 됐다.

유통 업계와 액상형 전자담배 제조사들은 정부가 사용 중단을 권고하면서 밝힌 유해 성분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앞서 정부는 제품 회수와 판매 금지 근거 마련을 위해 액상형 전자담배 내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HC) 등 유해성분 분석을 11월까지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분석은 식약처가 맡았다. 식약처 분석 결과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유통 업계가 재판매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실제 액상형 전자담배 이용으로 가장 많은 폐손상 환자가 발생한 미국은 대마 추출 성분인 THC와 THC를 기화하는 데 필요한 비타민E 화합물이 폐손상 원인 물질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다만 THC는 대마가 불법인 국내에선 쓰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가 유해성 검사를 종료한 후에도 액상형 전자담배의 퇴출은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THC와 비타민E 화합물이 액상에 들어가지 않는 국내에서도 폐손상 사례가 나온 가운데 이미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10월 28일 발표한 3분기 담배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량은 유해성 논란이 빚어지기 이전인 3분기 이미 하락세로 돌아섰다. 지난 3분기(7~9월) 액상형 전자담배는 총 9800만개(1회용 카트리지 기준)가 팔렸다. 월평균 3266개가 팔린 것으로, 지난 5월 출시 이후 본격적인 판매가 이뤄진 지난 6월 3600개보다 적었다. 특히 액상형 전자담배는 지난 7월 4300개 판매를 정점으로 8월 2700개, 9월 2800개로 판매량이 줄었다.

액상형 전자담배의 퇴출 규모도 커질 전망이다. 국내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액상형 전자담배는 그동안 담배 줄기에서 니코틴을 추출했다는 이유로 정부의 안전성 검사 및 제세를 피해왔다. 현행 담배사업법은 담뱃잎에서 추출한 니코틴을 포함한 제품만 담배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줄기 추출 니코틴을 액상으로 쓴 액상형 전자담배는 세금이 없는 덕에 가격 경쟁력을 확보, 액상형 전자담배 시장을 장악했다. 전자담배 소매점에서 팔리는 액상형 전자담배가 모두 여기에 속한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 같은 유사담배가 지난해 전체 액상형 전자담배 시장의 97.2%(니코틴액 기준)에 달했다. 그러나 정부는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 권고와 동시에 줄기에서 추출한 니코틴 활용 담배도 법으로 규제할 근거를 연내 마련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특히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는 담배사업법 개정을 통해 담배의 정의를 확대, 담뱃잎뿐 아니라 줄기·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 제품도 포함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줄기 추출 니코틴이라고 해도 액상 1㎖당 1799원인 담배 제세부담금 적용을 받아야 한다. 담배제품 관리체계에서 정한 분기별 안전성 및 유해성 성분 분석 규제도 적용된다. 그동안 전자담배 소매점에서 파는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소비세, 지방교육세, 개별소비세, 국민건강증진기금 등 제세부담금이 포함되지 않아 액상 1병(30㎖ 기준)당 약 3만원에 팔려왔다. 그러나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사업법이 개정되면 세금만 5만4000원에 달해 병당 가격은 8만원을 넘어 경쟁력을 잃을 전망이다. 전영철 전자담배협회 부회장은 “액상형 전자담배 시장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더 음성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액상형 → 궐련형 전자담배 풍선효과 우려

정부의 액상형 전자담배 규제 강화가 궐련형 전자담배 판매를 늘리는 풍선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미 주요 담배회사들은 궐련형 전자담배 신제품을 출시하며 시장 대응에 나섰다. 액상형 전자담배 시장이 퇴출 수순을 밟으면서 궐련형 전자담배 수요가 다시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에서다. 실제 액상형 전자담배의 출시 이후 궐련형 전자담배 점유율은 올해 초 12%(편의점 판매 기준)에서 10월 현재 10%로 축소했다. 한국필립모리스는 정부 대책이 나온 10월 23일 곧장 신제품 ‘아이코스 3 듀오’를 들고 나왔다. BAT코리아는 연말 신형 궐련형 전자담배 ‘글로 프로’ 출시를 예정했다. KT&G는 지난 10월 29일 궐련형 전자담배 ‘릴(lil)’의 전용 담배인 ‘핏(Fiit)’을 새로 출시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1508호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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