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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원·달러 환율 어디로] 과도했던 원화 강세 반작용으로 하락 

 

국내 증시, 아시아 통화 대비 낙폭 커… 원화에 대한 근본적 시각 변화로 보기 어려워

10월 말에 접어들면서 원·달러 환율이 모처럼 하락했다. 서울 외환시장 종가 기준으로 1170원대를 나타내기도 했다. 날을 세워 대립했던 미국과 중국이 10월 고위급 회담에서 잠정 합의한 미니 딜을 명문화하기 위해 공세를 자제하고 머리를 맞댄 것이 금융시장의 안정에 기여했다. 미국이 관세 인상을 보류하고 중국이 농산물 구매 확대를 약속한 쉬운 해법 외에 핵심 쟁점에는 진전이 없어 합의 내용은 실망스럽다. 그래도 미국의 태도 변화가 국면 전환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는 해석이 부상하면서 시장이 안도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미·중 회담, 브렉시트 재연기 등 호재


영국이 합의 없이 유럽연합(EU)을 이탈하는 사태를 피한 것도 시장 안정에 기여했다. 영국의 존슨 총리가 7월 취임한 이후, 영국이 EU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10월 말 EU 이탈을 강행하겠다며 강수를 두자 시장의 우려가 커졌다. 그러나 결국 EU 이탈이 재(再)연장되는 수순을 밟았다. 한편으로는 3분기 미국 기업들의 실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낮아진 눈높이에 비해 기업 실적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려하던 미국 기업 실적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점은 시장의 심리 개선에 기여했다.

그런데 한동안 1200원대에 익숙해진 탓에 원·달러 환율이 예상보다 크게 하락하자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다른 통화 대비 유독 원화에 대해 달러 약세폭이 커진 상황이 어색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암울해 보이는 한국과 세계 경제 전망 탓에 갑작스런 원화 강세를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올해 원·달러 환율 상승폭이 다른 통화 대비 상대적으로 컸던 사실을 상기해 봐야 한다. 상승에 대한 반작용으로 환율 하락폭이 커진 것으로 볼 수 있어서다. 또 환율 하락 과정에서 외환시장이 원화 강세에 베팅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즉 원화를 적극적으로 매수하기보다는 기존에 원·달러 환율에서 과도했던 원화 매도 포지션이 일부 청산된 것이기에, 한국 경제와 원화에 대한 시각이 변화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환율 움직임은 방향성은 고사하고 변화의 폭에 대해서도 적절한지 평가하기 어렵다. 하지만 비교 대상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흔하게 접하는 비교 사례는 다른 아시아 통화들의 달러 대비 환율을 원·달러 환율과 비교하는 것이다. 외환시장 내에서 비교하자면 호주 달러(AUD)와 일본 엔화(JPY) 거래를 생각할 수 있다. 다른 비교 대상도 있다. 주식시장 움직임과 비교하자면 세계 주식시장과 비교한 한국 주식시장의 상대적 성과를 고려할 수 있다. 원자재 시장에서는 구리와 금 가격의 비율을 비교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호주 달러(AUD)와 일본 엔화(JPY)의 직거래 환율인 AUD·JPY는 외환시장에서 리스크 바로미터(risk barometer)로 통한다. 금융시장 전반의 투자심리를 대변하는 가늠자로 간주되는 것인데, 환율이 상승(하락)하면 시장의 심리가 개선(악화)되는 상황을 나타낸다. 원·달러 환율은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대외 여건과 금융시장의 투자심리에 민감하다. 따라서 AUD·JPY 환율과 비교할 수 있다. 이를 시각화해 보면 지난 10월의 원화 강세가 상대적으로 격렬했음을 알 수 있다.

변덕이 심한 자본의 유출입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주식시장 유동성이 우수하고 세계 제조업 경기에 민감한 한국 주식시장의 상대적 성과를 도출해 비교할 수도 있다. 전 세계 증시의 가중평균을 한국의 주식시장과 비교하면 주식시장의 움직임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이 역시 최근 외환시장의 원화 강세 움직임은, 즉 원·달러 환율의 하락은 주식시장이 시사하는 정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격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거대한 자본이 몰리는 또 하나의 투자 대상인 원자재 시장에도 투자자의 신뢰와 심리를 반영하는 좋은 비교 대상인 구리와 금 가격 비율이 있다. 구리와 금은 관행상 각각 달러화 기반으로 거래되기에 상대 가격을 도출하면, 각각의 가격에 미치는 달러화의 영향을 배제한 상황에서 세계 산업 경기(구리 가격)와 안전자산(금 가격) 수요를 대변하게 된다.

이를 통해서도 최근 원화 움직임의 상대적 강도를 비교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비교에서 최근 원화 강세가 상대적으로 과도하다는 것이 곧 환율 움직임이 되돌려질 것임을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을 비교 대상을 통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미·중 갈등 쉽게 해결될 사안 아냐

만약 차기 대선과 미국 경제 둔화에 운신의 폭이 좁아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협상의 문턱을 낮추고 타협을 서두를 것으로 시장이 판단하는 것이라면, 단지 원화 매도 포지션을 거둬 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원화를 적극적으로 매수하면서 원·달러 환율을 더욱 끌어내릴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였던 미·중 갈등이라는 변수가 변곡점을 맞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재산권 문제나 ‘중국 제조 2025’와 같은 중국의 전략 산업 육성 정책에 대한 견제 등 핵심 쟁점에서 양국이 근본적으로 타협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단지 잠시 묻어 놓고 지나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양국의 갈등이 쉽게 가라앉으리라고 낙관하기에는 사안의 무게감이 남다르다는 판단이다.

- 백석현 신한은행 외환이코노미스트

※ 필자는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 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1508호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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