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노인을 위한 금융은 없는가 

 

“저건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2008년 아카데미상을 석권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의 제목은 19세기 영국 시인 예이츠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원제는 예이츠의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라는 시의 첫 구절 ‘저건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노인을 위한 나라’가 따로 있을 턱이 없다.

국민 90%가 현금 쓰지 않는 나라도 있다는 보도는 노인들에게 충격적이다. 결국 노인을 위한 금융도 없어지는 것일까. ‘내 손 안의 작은 은행’을 모토로 금융권이 디지털 사업을 강화하면서 이를 이용하지 못하는 노년층이 급기야 금융소외 계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올해 은행권이 디지털 전환을 위해 책정한 예산은 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반면 은행 점포는 최근 3년 새 8%, 자동화기기(ATM)는 17%나 줄어들었다. 앞선 금융 기술과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노년층이 사실상 차별을 받는 셈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노인들이 각종 금융사기의 대상으로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나온 모바일 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서도 70대 이상 연령대의 은행 모바일뱅킹 서비스 이용률은 6.3%에 머물렀다. 전체 평균인 56.6%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60대 이용률도 18.7%. 반면 20대는 76.3%, 30대는 87.2%가 은행 모바일뱅킹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은행들이 제공하는 모바일뱅킹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핀테크’ 서비스로 영역을 확대하면 60대 이상 연령층의 사용률은 2% 안팎으로 더욱 낮아진다.

젊은층과 노년층 간 디지털 금융 격차는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가 유독 두드러진다. 한 카드사 조사에 따르면 35세 이하 국민 가운데 89.4%가 디지털 금융 경험을 가진 반면 55세 이상 비율은 38.4%로 뚝 떨어졌다. 이들의 격차는 51%포인트로 다른 국가의 20~30%포인트에 비해 현저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주요 금융사들의 ‘디지털’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핀테크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지원도 어느 때보다 활성화된 상태다. 핀테크(Fin Tech)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금융과 모바일 IT 기술이 합쳐진 금융 서비스 산업을 의미한다. 예금이나 대출, 결제와 송금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가 IT 기술과 만나 은행 이용자들에게 보다 더 편리한 이용 방식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소외 계층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정책이나 회사는 많지 않다. 이런 가운데 ‘금융 양극화’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70대 중에서 모바일뱅킹을 쓰는 인구는 단 6%에 불과하다는 통계까지 나와 있다. 금융상품에 모바일 우대가 보편화되면서 노년층은 예금 우대금리나 대출금리 할인 같은 기본적인 금융 복지에서조차 소외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은 노인복지관 정보화 교실을 리모델링해 고령자를 위한 금융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을 본격 운영하고 있다. 이 은행은 지난 2017년부터 전국 360개 노인복지관을 대상으로 노후화된 정보화 교실을 개선하는 ‘신한 더 드림(THE Dream) 사랑방’ 사업을 운영 중이다. 선정된 노인복지관에서는 고령자를 위한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일부 저축은행도 최근 실버세대를 위한 금융교육 협약을 맺고 고령층 대상 금융교육을 시작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등등 디지털 범죄가 해마다 많이 늘어나고 그 피해도 작지 않아 고령층 대상 금융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시니어 고객을 대상으로 금융사기 방지를 위한 모바일 뱅킹 활용방법 등의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최근 모바일 등을 통한 금융사기 등이 점차 늘어나면서 모바일 기기 활용이 익숙지 않은 고령층의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며 “더 많은 고령층 고객의 금융서비스 권리를 되찾아주고 이들이 충분히 금융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60세 이상 고령자들의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 규모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60세 이상 고령자들의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액은 2016년 255억원에서 2017년 296억원, 2018년 987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전체 보이스피싱 범죄 전체 피해액 중 60세 이상 고령자 피해액 비율은 전년보다 2배쯤 늘었다.

금융권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디지털 전환으로 소외당하는 노년층의 고충은 장시간 은행 창구 이용을 기다리는 고령 인구에서 엿볼 수 있다. 도시 외곽의 한 은행 지점에서는 노년층 고객 10여 명 이상이 번호표를 뽑아 상담 순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80대 할머니 한 분은 “가까운 곳에 지점이 없어지면서 지하철 두 정거장을 이동해 이곳에 온다”며 “창구 직원이 갈수록 줄어서 용돈 몇푼 뽑는 데 1시간 걸릴 때도 있다”고 푸념했다.

국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금융사들이 디지털 전환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반면 오프라인 점포는 꾸준히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B국민 등 5대 은행 국내 영업 점포 숫자는 2015년 5093개에서 2년 새 4699개로 400개 가까이 줄었다.

금융권에서는 “수익성이 낮은 점포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크기 때문에 노년층만 생각해서 무작정 점포와 ATM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은행도 디지털 금융소외 계층을 줄이기 위해 각종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은행 대부분이 ATM에 화면 확대 기능을 제공 중이며 ‘어르신 전용 상담 전화’ 서비스를 도입한 은행도 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디지털 확산으로 인한 계층 간 괴리) 해소는 정책적 추진보다 각 은행이 자율적으로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 대면 서비스에 익숙한 노년층 등을 위해 은행 점포를 폐쇄했을 때 인근 우체국이나 상호금융 점포를 대체 수단으로 활용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지만, 실효성은 미미하다는 평가다.

노인 계층의 ‘디지털 소외’가 나날이 심화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해졌다. 앞으로도 디지털 금융이 더욱 발전하고 금융권의 비용 중심 전략이 가속화된다면 고령층의 금융서비스는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 금융 문맹’에 대한 대책이 발등의 불이다.

- 정영수 칼럼니스트(전 중앙일보 부국장)

1509호 (20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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