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술 발전과 기대수명 증가로 100세 시대가 열리면서 ‘신(新)중년’이 주목 받고 있다. 다른 어떤 세대보다 능력·의지·경제력을 겸비한 50~64세의 사람들로 ‘50플러스(+)세대’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청년과 노년 세대 사이에 끼어서 겉돌기 쉬웠지만 지금은 다르다. 새로운 꿈을 좇아 자신을 가꾸는가 하면,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사회와 나누기도 한다. 특히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는 이들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여기며 맞춤형 정책과 프로그램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시간도 할 일도 많은 신중년의 특징과 가치, 주목할 만한 신중년 정책, 현장의 목소리 등을 두루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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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광고·디자인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은퇴한 장한교(59)씨는 지난 9월 캄보디아로 향했다. 지금은 현지 초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경력과 관심사를 잘 살렸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장씨와 이곳을 연결해줬다. “아내와 자녀들이 적극 성원해줘서 오게 됐습니다. 지금껏 일만 하다가 새로운 곳에서 새 삶을 사는 거죠. 이번 봉사활동을 계기로 여러 타인과의 관계를 배우고, 편안하게 누렸던 많은 부분을 내려놓는 마음 수양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내년 9월까지 이곳에 머물 장씨는 보람에 하루하루가 알차다고 전했다.
국내 남녀 기대수명 82.7세로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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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창 때인 환갑(61세)을 축하해주는 잔치는 의미가 없다”거나 “법적인 노인 기준 연령을 지금의 65세에서 70세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등의 사회적 논의도 활발해졌다. 예전과 달리 지금의 50~64세는 여느 젊은이들처럼 꿈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을 시기다. 가뜩이나 고령화가 강도 높게 진행 중인 시대에 ‘50플러스(+)세대’라고도 불리는 이들이 만들고 있는 현재와, 만들어 나갈 미래에 관심이 커지는 배경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주역으로 꼽히는 이들 세대는 주로 베이비붐 세대로 국내 인구 구성에서도 중심축을 차지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 10월 말 기준 50~64세의 50+세대 인구는 약 124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3.9%에 이르렀다. 40~49세 인구(16.2%)나 65세 이상 인구(15.4%) 대비 월등히 많다.
50+세대의 고민과 희망은 무엇일까. 올해 서울시가 시민 8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들은 평균 68.3세까지 일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또 71.7세까지는 활동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50+세대는 주요 관심사 또한 과거 동년배들과는 달랐다. 서울시 조사에서(복수응답 기준) 40.8%가 ‘노후 준비’에 관심이 많다고 한 것까진 비슷했지만 33.7%가 ‘여가와 취미활동’을 주요 관심사로 지목했다. ‘자녀의 취업과 결혼(35.1%)’과 별 차이가 없었다. 과거였다면 자신보다 자녀의 대소사에 훨씬 관심이 많고, 자신의 여가·취미활동에 신경 쓸 여유도 덜했을 연령층이다.
문제는 이처럼 달라진 이들이 만족할 만한 자아실현 프로그램이나 양질의 일자리·일거리가 사회적으로 충분히 갖춰져 있느냐는 점이다. 지금껏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마련한 사회복지시설은 대부분 65세 이상 노년층을 위해 존재했다. 노인 세대라면 이런 시설이나 경로당 등에서 친분을 쌓고 여가·취미활동까지 하는 데 어려움이 없지만 신중년은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고 의미 있는 재취업이나 창업에 도전하기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양서영 KDB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 연구원은 “2017년 통계를 보면 65세 이상 고용보험 신규 취득자, 즉 재취업자 중 청소·경비직 비율이 약 31%로 가장 높았다”며 “은퇴자를 위한 일자리가 청소·경비 등 저생산성 직군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는 의미”로 풀이했다.
65세 이상 재취업자의 31%가 청소·경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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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년을 위한 맞춤형 재교육의 장을 잘 갖추려면 또 다른 선결 과제도 존재한다. 바로 비용 문제다. 얼마 전 은퇴한 최교식(54)씨는 “활기찬 인생 2막을 준비하기 위해 새 일자리를 가져볼까 생각 중이고 창업에도 관심이 있다”면서도 “관련 강좌 등을 들으려니 자녀 사교육에 돈이 많이 들듯이 돈을 꽤 들여야 하는 분위기라 고민 중”이라고 걱정했다. 최씨가 알아본 곳은 요리학원인데, 월 수십 만원의 수강료를 내야 해서 등록을 보류했다. 당장 수입이 끊겼고 연금 수령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은퇴자로서는 적잖은 돈이다. 이처럼 재취업·창업뿐 아니라 여가·취미생활을 위한 학습에도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든다면 아무리 은퇴 후 삶을 가꾸는 데 관심 많은 신중년이더라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올해 서울시 조사에서 노후를 위한 경제적 준비가 ‘충분하다’고 응답한 50+세대는 36.1%였다. ‘충분하지 않다(63.9%)’는 경우보다 훨씬 적었다. 충분하지 않다고 답한 509명 중 58.2%는 ‘돈이 급하게 필요해서’, 29.9%는 ‘애초 소득이 적어 여유가 없어서’, 11.6%는 ‘따로 노후 대비를 생각 못해서’를 이유로 들었다. 애초 소득이 적어 노후 준비를 충분하게 못한 경우보다, 목돈이 급히 필요해졌거나 미처 노후 대비 생각을 못한 경우가 많은 것은 은퇴자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직장을 떠나고 있는 국내 현황과 무관하지 않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는 지난해 말 ‘2018 은퇴백서’를 펴냈다. 이에 따르면 국내 25~74세 응답자 2453명 중 아직 은퇴하지 않은 1953명은 평균 65세를 자신의 은퇴 연령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미 은퇴한 500명이 밝힌 실제 은퇴 연령은 평균 57세인 것으로 집계돼 간극이 컸다.
이런 문제까지 고려한다면 복지 차원에서 50+세대 맞춤형의 정책적 뒷받침이 중요하다. 근래 들어 지자체를 중심으로 지원 사업이 활발해진 이유다. 서울시가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출자출연기관인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설립해 3년째 운영하면서 50+세대에 속한 시민의 성공적인 인생 재설계를 돕고 있다. 앞서 서울시 측은 관련 실태 연구 보고서에서 50+세대 맞춤형 정책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2010년 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은퇴(2016~2020년 약 98만 명 은퇴 예상) 등으로 다른 나라보다 50+세대 문제가 심각하다. 하지만 한국은 1981년 노인복지법 제정 이후 그동안 65세 이상 노인 대상의 정책과 사업 지원에 활발했던 반면, 사회의 중심축이 되고 있는 50+세대만을 대상으로 한 지원 추진은 미흡했다. 50+세대의 다양한 욕구를 수용한 정책은 없었다.’
이에 따라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2016년 서부캠퍼스(은평구)에 이어 2017년 중부캠퍼스(마포구), 지난해 남부캠퍼스(구로구)를 각각 여는 등 거점 확대로 더 많은 50+세대 지원에 나서고 있다. 기존 경력과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새 일자리나 창업 기회, 각종 여가·취미생활을 꿈꾸는 50+세대를 위한 공간으로 ▶상담센터 ▶교육실 ▶대강당 ▶서재 ▶공유사무실 등을 갖추고 있다. 세 캠퍼스에서 올 들어서만 9월 말까지 1만2343명이 교육 과정에 참여했다. 전체 이용 인원은 27만여 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2만2000여 명이 상담센터에서 무료로 인생 2막 설계 도움을 받았고, 3800여 명은 1대1로 컨설턴트와 상담했다. 서울시민 중 50+세대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정부 지원에서 소외됐던 50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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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재단 측은 지원 대상자에게 걸맞은 일자리나 창업 아이템을 매칭해주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회계 분야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시민이 이 재단의 50+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 중소기업 동종 분야에 취업해 기여하거나 ▶학원 강사로 일했던 시민이 재단 캠퍼스 공유사무실에 입주해 협동조합을 설립, 각 지자체의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 기여하는 등의 사례가 속속 나왔다. 남경아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사업본부장은 “그간 50+세대를 위한 일자리는 청소·경비·택배·운전 등의 분야로 한정돼 이들이 경력과 적성을 살려 재취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이런 한계를 넘어서는 한편, 노후 준비가 덜 된 50+세대가 사회적 취약 계층으로 주저앉지 않도록 이들의 역할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