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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F 사태 수습안 발표 그 후] 분쟁조정 수락할까 법정으로 갈까 

 

배상배율 세부 사항 은행에만 알려… 은행의 신탁판매 허용에 “가해자 두둔” 비판

대규모 손실을 낸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금융당국이 DLF 투자 손실과 관련해 분쟁조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일부 은행들은 발 빠르게 투자자 배상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일부 투자자 사이에서는 분쟁조정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보여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피해자들은 이번 DLF 사태를 일으킨 은행이 사실상 배상비율 산정을 맡게 된다는 점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DLF 후속대책 최종안에 은행들의 건의사항이었던 신탁판매가 일부 허용되면서 피해자들은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을 두둔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12월 5일 DLF 사태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불완전판매, 은행 내부통제 부실책임 등에 따라 40~80%의 배상비율을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배상비율은 분쟁조정위원회에 상정된 피해사례 6건을 대상으로 결정한 분쟁비율이지만, 앞으로 은행별 투자자 배상 규모를 좌우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결정이다. 금감원이 정한 최소 비율은 20%이기 때문에 불완전판매가 인정된 DLF 투자자라면 별도의 분쟁조정 절차 없이 20~80%의 배상을 받을 수 있다.

피해자들, 20~80% 배상 받을 수 있어


배상비율 80%는 지금까지 은행을 상대로 제기된 금융 분쟁 가운데 최대치다. 그러나 DLF 투자자 사이에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들은 최대 배상 비율 80%도 부족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DLF 피해자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배상비율 80%가 적용된 투자자는 치매 환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운 DLF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은 “역대 최대 배상비율을 적용했다고 하지만 투자경험이 없고 난청인 고령의 치매환자 대상이었다”며 “피해자들은 분쟁조정 과정과 결과에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의 불만이 커지다 보니 연내 배상을 마무리 짓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금융당국과 시중은행들은 일단 현재 제시된 가이드라인에 맞춰 피해자들에게 개별 배상비율을 확정해 통보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반발이 터져 나오면서 계획대로 진행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DLF 피해자들이 금감원이 일괄적으로 제시한 배상비율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할 경우 분쟁조정위원회에 재재심을 신청할 수 있다. 이 경우 다시 한번 배상비율이 결정되는데, 여기서도 수긍하지 못할 경우 법정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다만 법정 소송을 결정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언제 최종 배상을 받을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배상비율 결정과 관련한 세부 사유가 피해자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채 시중은행들에만 전달됐다는 점도 DLF 피해자들로서는 불만이다. 20~80% 사이의 배상비율을 적용한다고 하지만 피해자들은 정확하게 어떤 사항을 적용하는지 알지 못한 채 은행이 판단한 비율을 받아들일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지예 금융정의연대 사무국장은 “금감원이 12월 11일 DLF 사태 관련 자율조정 권고기준을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 전달하면서 피해자들에게는 세부 기준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며 “이번 사태의 가해자인 은행에 자율조정을 맡기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DLF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금융당국이 피해자가 아니라 이번 DLF 사태를 일으킨 은행들을 두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DLF 후속대책에서도 은행들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신탁판매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로 해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1월 중순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서는 은행의 고난도 금융투자 상품 판매 제한이 포함됐는데 사모펀드뿐 아니라 은행의 신탁판매에도 제한을 걸기로 했다. 국내 은행들이 신탁판매로 매년 거둬들이는 수수료 수입은 1조원가량이라 뼈아픈 부분이다. 이에 금융시장 전반이 위축될 것이란 반응이 터져나왔고, 12월 발표된 최종안에서는 손실배수 1 이하인 파생결합증권을 편입한 신탁(ELT)은 은행 판매를 허용하기로 변경됐다.

금융당국에서는 금융시장 전반에 미칠 파급 효과를 감안했을 뿐 은행을 두둔하고 있다는 지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은행의 신탁판매까지 막아버릴 경우 국내 주가연계증권(ELS) 시장 위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투자시장에서는 올해 상반기에만 47조원이 넘는 ELS가 발행됐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27조원가량의 물량을 은행 신탁에서 소화했다. 은행의 신탁판매를 전면 금지할 경우 관련 시장의 위축이 불가피하다. 또 ELS 시장의 위축은 증권과 채권 등 금융투자시장 전반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ELS는 주가와 연계됐기에 주식시장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여기에 ELS 구조상 헤지 목적으로 채권 포지션을 함께 가져간다는 점 때문에 채권 수요 역시 위축될 수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파생결합증권 발행자금운용 자산의 63.5%가량이 헤지 목적으로 편입한 채권이다. 은행의 신탁판매를 전면 금지할 경우 ELS 시장이 위축되고 국내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온 배경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한달 전 내놓은 대책에서 일부 바뀐 부분이 있지만 투자자 보호장치 강화와 금융회사의 책임성 확보라는 큰틀에서는 바뀐 것이 없다”며 “은행의 ELT 판매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지만 기초자산이 KOSPI200이나 S&P500, Eurostoxx50 등 대표 지수들이고 판매 규모에도 제한을 두는 등 일부에서 비춰지는 것처럼 무분별한 허용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피해자 요구사항도 수용하라”

DLF 피해자들은 신탁판매와 관련한 은행들의 건의사항이 받아들여졌던 것처럼 배상비율 조정 사유 공개와 배상비율 상향 조정 등 피해자들의 요구조건도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금감원은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배상비율 조정 사유를 직접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피해자들이 알 수 있는 만큼은 제시된 상황이라는 판단이다. 더구나 워낙 사례가 다양하다 보니 조정 사유 공개 때 배상비율 적용에 오히려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고민하고 있다.

-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1515호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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