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버리히어로, 우아한형제들에 4조7000억 베팅한 배경… 아시아에서 통할 라스트마일 서비스
국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1위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이 독일 배달 앱 업체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됐다. 국내 스타트업의 성가를 인정 받은 기록적인 인수·합병(M&A)이지만, 한편으로는 독과점과 배달 수수료율 인상 등의 문제로 논란도 낳고 있다. 더불어 40억 달러(약 4조7000억원)라는 인수가도 화제가 됐다. 자산이 배달 앱인 ‘배달의민족’과 브랜드 가치뿐인데 기업가치를 과도하게 평가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배달 앱 시장이 중요 변곡점을 맞고 있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반박과 부딪히고 있다.우아한형제들이 상장사였다면 이번 인수 금액은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시가총액 순위 52위에 해당한다. GS(4조9431억원, 24일 기준)·현대건설(4조7271억원)과 비슷하고 효성첨단소재(4861억원)·진에어(4680억원) 등의 10배 수준에 이른다. 우아한형제들이 부동산과 방대한 설비, 기술력, 특허, 수십 년의 노하우를 가진 유수의 기업들보다 더 가치 있다고 평가 받은 것이다. 그러나 우아한형제들의 현금창출 능력만 보면 이번 매각가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우아한형제들의 지난해 매출은 3192억원, 영업이익은 585억원이었다. 주가수익비율(PER)로 따지면 80.3배에 이른다. 네이버(46.2배)·엔씨소프트(27.9배)·넷마블(41.1배) 등 국내 간판급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보다 2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주가수익비율은 시가총액을 연간 영업이익으로 나눈 수치다. 높으면 주가가 고평가, 낮으면 저평가됐다는 뜻이다. 청산가치로 따져봐도 마찬가지다. 우아한형제들은 대규모 설비나 지식재산권(IP)·인력 등에 대한 투자가 적어 청산가치도 높지 않다. 특히 배달 앱 업계는 낮은 진입장벽과 독과점 위협 등 여러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기존 잣대로는 DH의 베팅 이해하기 어려워그런데도 딜리버리히어로가 4조7000억원이라는 거액을 우아한형제들에 안긴 것은 배달 앱 시장의 패러다임에 변화가 일고 있어서다. 현재 배달 앱 시장은 공유주방, 도심 수직형 농장 등의 등장으로 ‘마일스톤(milestone, 도로에서 방향을 가르키는 표지로 미래 성장 가능성과 사업 방향성 등의 척도)’으로 여겨지고 있다. 공유주방이란 배달만을 목적으로 하는 여러 가상의 주방을 뜻한다. 여러 요리사들이 이용료를 내고 입주해 자신의 브랜드를 내건 음식을 만들어 배달·판매한다. 초기 비용이 낮고 소비자 기반이 안정적이며, 마진 확보가 용이한 데다 법무·세무·회계·홍보 등의 부담이 덜한 장점이 있다. 이 공간은 경쟁력 있는 요리사를 발굴해 새로운 외식브랜드를 만드는 일종의 식당 창업 인큐베이터로서도 작동한다.우버의 창업자 트래버스 캘러닉이 지난해 공유주방 기업 ‘클라우드키친’을 세운 것도 이런 가능성을 엿봐서다. 그는 지난 5월 한국의 ‘심플키친’을 인수하고, 서울에서도 공유주방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도심의 인구 밀집도가 높고 배달음식의 천국이라 공유주방과 배달 앱이 협업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곳이다. 특히 상업용 부동산 임대료가 비싸고, 인구 1만명 당 외식 업체 수가 125.4개로 세계에서 가장 많아 변화가 필요하기도 하다. 이 때문에 중장기적으론 주거 밀집지의 상업용 부동산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영국의 벤처투자자 마이클 모리츠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칼럼에서 “딜리버루 등 배달 앱이 공유주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저임금 자영업 배달원을 사용해 지역 식당에 폭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우버 등 승차공유 회사들이 기존 택시 업계의 반발에 부딪혀 전진하지 못하는 사이 배달 앱과 공유주방은 저항이 적은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나아가 아마존 등이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는 도심 수직형 농장도 배달 앱 생태계에 새로운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수직 농장은 작물을 흙에서 키우지 않기 때문에 병충해가 적고 1년에 여러 번 재배할 수 있다. 도심 수직농장으로 농산물 재배는 물론 유통·음식조리·판매·배달로 이어지는 새로운 가치사슬을 구축할 수 있다.딜리버리히어로는 이런 변화의 가운데 아시아 시장 공략을 염두에 두고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했다. 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대체로 연 5~6% 수준이며, 평균 연령은 20대로 젊다. 소득 증가로 생활 수준이 빠르게 높아지는 데 비해 요식업과 도로·철도 등 사회 인프라는 탄탄하지 않다. 이 때문에 외식문화가 배달을 통해 자리잡을 확률이 있다. 게다가 배달앱은 단순히 식당·소비자 중계 서비스에서 벗어나 요식업 플랫폼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배달 앱은 오토바이로 사업장의 문부터 사용자의 집까지 이어주는 ‘라스트마일’ 서비스다.딜리버리히어로는 우아한형제들 인수로 라스트마일을 장악해 음식뿐만 아니라 쇼핑·심부름·탁송 등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다. 이후 일종의 포털로서 광고 수입을 확보할 수 있고, 나아가 자체 결제망을 확보하면서 쇼핑 시장으로 보폭을 넓힐 여지도 있다. 딜리버리히어로로선 우아한형제들을 단지 한국의 배달 앱 회사가 아닌, 아시아의 외식산업을 바꿀 지렛대로 보고 통크게 배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시아의 외식산업 바꿀 지렛대?제2, 제3의 우아한형제들을 꿈꾸는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이라면 이 지점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산업의 변곡점을 포착해 다음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기술력, 창업자의 역량을 입증해야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심종선 삼정KPMG 회계사는 보고서에서 “미래의 불확실성은 계획을 통해 합리적인 수준까지 통제할 수 있다”며 “명확한 마일스톤과 그에 필요한 활동, 팀의 역량, 수익 추정의 객관적 자료가 있다면 비즈니스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특히 창업자의 비전과 사업모델이 해외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면 규모를 더욱 키울 수 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모여 유니콘 기업이 되기 때문에 의식주 등 포괄적 분야, 해외 등 큰 시장을 겨냥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수치로도 입증해야 한다”며 “적자를 보더라도 꾸준한 성장세와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는 창업자의 역량, 글로벌 투자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소통능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