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CES 2020 미래 모빌리티] ‘자율주행은 식상해’ 자동차, 도시와 사회를 보다 

 

친환경생산·실험도시·하늘길에 주목… 글로벌 합종연횡은 더욱 고도화

▎현대자동차 CES 2020 부스. / 사진:AFP=연합뉴스
2000년대 들어 소비자가전쇼(CES)에 자동차 기업의 참여가 시작됐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자장비가 늘어나면서다. CES 2008에선 처음으로 자동차 고정 전시장을 설치했다. 이 때부터 자동차 업체들의 메인 테마는 코넥티드, 자율주행, 전기자동차였다. 그러나 올해 CES에선 이런 지형에 변화가 생겼다. 적어도 자동차 관련 업체들이 모이는 노스홀에선 코넥티드·자율주행·전기차는 너무나 당연하고도 식상한 주제가 됐다. 전기차와 코넥티드카는 이미 현실이 됐고, 완전한 자율주행이 이뤄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반인들도 인지하고 있다. 자동차업계는 ‘하늘길’ 등 또 다른 미래 모빌리티에 주목하는 한편, 미래 모빌리티가 바꿔놓을 도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의 실질적인 변화상은 자동차업계가 아니라 이종업계가 선보이고 있다.

이번 CES에서 자동차 업체는 차량 자체를 벗어나 모빌리티 시대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을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전까지의 친환경 차와 자율주행 차를 어떻게 잘 만들 것이냐를 고민했다면 올해는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 자동차가 어떻게 도시와 사회 속에서 가치를 찾을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車 벗어나 ‘모빌리티 시대’ 바라본 자동차업계


▎벤츠 AVTR / 사진:EPA=연합뉴스
올라 셸레니우스 다임러그룹 이사회 의장 겸 메르세데스-벤츠 회장은 1월 7일(현지시각) 기조연설에서 앞으로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로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자동차에 친환경 소재를 더 사용하고 차량 생산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줄여 환경보존에 앞장 서겠다는 것이다. 그는 “자동차 판매량이 늘어나도 자원 소비는 늘지 않도록 자동차 생산전략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차량의 운행뿐 아니라 생산과정에서도 친환경 공정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오는 2030년까지 차량 생산에 들어가는 물과 전기를 각각 30%, 40% 이상 줄이고 발생하는 폐기물은 40% 이상 줄일 계획이다. 차량 제작에 쓰이는 소재 95%를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로 채택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벤츠는 이 같은 비전을 콘셉트카 ‘비전 AVTR’를 통해 보여줬다. 셸레니우스 회장은 “비전 AVTR은 ‘미래 자동차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벤츠의 대답”이라며 “사람과 기계가 인문학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AVTR은 배터리에 희토류·금속을 쓰지 않아 배터리 소재를 재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게 벤츠 측의 설명이다.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그린 미래 모빌리티 전략도 인상적이다. 도요타는 작은 도시를 만들어 미래 모빌리티 시대 기술을 일상생활 속에서 검증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70만㎡ 규모로 ‘우븐 시티’를 조성하고 연구원과 가족, 공모를 통해 뽑은 주민 등 약 2000명이 실제로 거주하면서 미래 기술이 우리 생활에 어떻게 녹아들지를 연구하겠다는 내용이다. 내년 초 착공해 빠르면 2023년부터 부분 오픈할 계획이다. 이는 미래 모빌리티 시대가 단순히 탈 것의 기술개발만으로 이뤄지지 않는 만큼 ‘살아있는 실험실’을 만들어 모빌리티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다. 전시장에는 자율주행 플랫폼 e-팔레트를 전시했다. 도요타가 CES 2018부터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이 차는 우븐시티에서 모빌리티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새로운 모빌리티 시장에서 자동차가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지 깊은 고민을 한 기업도 있다. 아우디는 쇼카 ‘AI:ME’를 통해 미래 모빌리티 시대의 자동차를 집과 직장에 이은 ‘제3의 생활 공간’으로 정의했다. 쇼카의 인테리어는 운전대를 없애고 차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수많은 콘텐트를 더한 게 특징이다. 시선을 추적하는 기능이 탑재돼 탑승자의 눈으로 차량과 직관적으로 소통할 수 있으며, 비치된 가상현실(VR) 고글을 착용하면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산봉우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등의 ‘가상 비행’을 즐길 수 있다. 아우디 측은 “가상의 콘텐트를 자동차의 움직임에 실시간으로 반영해 탑승자가 휴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도요타 e-팔레트 / 사진:EPA=연합뉴스
BMW 역시 아우디와 비슷한 상상을 했다. 다만 자율주행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를 내다봤다. BMW가 선보인 ‘i3 어반 스위트’는 기존 i3의 모든 부분을 호텔 스위트룸 느낌으로 구성했다. 탑승자는 차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거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다만 아우디처럼 자율주행 시대를 내다보고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모빌리티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는 콘셉트다. 작은 i3가 ‘쇼퍼 드리븐’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이 혁신적인 부분이다. BMW 관계자는 “미래의 고급스러운 이동성은 차량의 크기와 상관이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닛산은 전기차가 얼마나 다양한 차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전기차 리프의 장거리 버전과 함께 전기차 레이싱인 포뮬러 E 챔피언십을 위해 만든 레이스카를 새로 선보였다. 이와 함께 전기 구동 방식의 아이스크림 트럭 등을 전시해 전기차의 다양한 활용성을 선보였다.

이번 CES에서 자동차 업체 중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단 한 대의 자동차도 전시하지 않은 현대자동차 부스였다. 현대차 역시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내다보고 큰 밑그림을 그렸다. 현대차의 비전은 다임러와 도요타보다 훨씬 원대했다. 친환경 차와 자율주행 생태계에 그치지 않고 ‘하늘’로 모빌리티의 영역을 확대한 것이다. 현대차가 내놓은 비전은 ‘도심 항공 모빌리티(Urban Air Mobility·UAM)’, 이른바 ‘개인용 비행체’다.

최근 2025 비전을 통해 UAM 사업 진출을 선언한 현대차는 CES 2020에서 개인용 항공 이동 수단(Personal Air Vehicle·PAV) 콘셉트인 S-A1을 전시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9월 현대차에 UAM사업부를 만들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 출신인 신재원 박사를 UAM사업부장(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이번 CES 전시는 UAM사업부가 내놓은 첫 결과물이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라는 개념이 현재로써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불가능할 것은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회전익 비행기(헬리콥터)는 제한적이지만 도심 내 이동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를 대중교통수단으로 구현하는 것이 현대차의 UAM 비전의 핵심이다. 물론 UAM만으로 스마트 모빌리티를 완성하는 것은 단기간에 어렵다. 현대차는 이를 적용하기 위한 구체화된 비전을 내놓았는데, 핵심 키워드는 모빌리티 환승거점(Hub)과 목적 기반 모빌리티(Purpose Built Vehicle·PBV)다. UAM을 활성화하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이착륙 장소다. 현대차는 도심 곳곳에 이착륙 장소를 마련해 환승거점으로 만들고 목적지까지 라스트마일은 육상 운송수단으로 해결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동 시간의 혁신적 단축으로 도시간 경계를 허물고, 의미 있는 시간 활용으로 사람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목표를 이루며, 새로운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역동적인 인간 중심의 미래 도시 구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UAM의 시장성은 분명하다. 미국의 교통정보분석기업 인릭스(INRIX)는 2018년 미국 운전자들이 교통정체로 도로에서 불필요하게 허비한 시간을 연평균 97시간으로 추산했으며, 금액(기회비용)으로 환산하면 1인당 1348달러(약 160만원), 미국 전체적으로는 총 870억 달러(약 100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UAM은 이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혁신이다.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2040년까지 글로벌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 시장이 1조5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UAM 시장에서 현대차가 갖출 경쟁력은 미지수다. 현대차의 UAM 사업진출 선언은 자동차업계에선 처음이지만 범위를 넓혀서 보면 ‘후발주자’다. 2017년 미국 차량공유업체 우버가 ‘우버 에어’ 비전을 내놓은 이래 이미 200여개 업체가 PAV 제작과 UAM 사업에 뛰어들었다. 우버 등 플랫폼 사업자부터 벨(Bell), 보잉, 에어버스 같은 항공기 제조업체까지 다양한 플레이어가 참전한 상태다.

하지만 현대차가 UAM 분야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가졌다는 진단도 많다. 현대차는 CES 2020 현장에서 우버의 우버 엘리베이트와 ‘UAM 사업 추진을 위한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UAM 시장에서 가장 앞선다고 평가받는 우버가 현대차를 파트너로 받아들인 것은 현대차가 가진 대규모 생산능력을 눈여겨 봤기 때문이다.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CEO는 “현대차의 대규모 제조 역량은 우버 앨리베이트에 커다란 진전을 가져다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재원 현대차 UAM 사업부장은 “UAM이 실제 상용화가 되면 대도시에서 하루에도 수백번 운행을 해야 하는 시장이기 때문에 공급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며 “항공기 업체들은 대량 생산체제 접목이 어렵기 때문에 현대차그룹의 능력은 매우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도 UAM에 적극 지원을 나설 것이라고 선언해 UAM 시장에서 현대차의 가능성은 더욱 희망적이다. 현대차는 2028년을 UAM 상용화 시점으로 보고있다.

모빌리티는 모바일 잇는 메가트렌드


이전 CES에 비해 자동차 브랜드 부스에 전시된 자동차는 줄었고, 가전업체 부스에 전시된 자동차는 늘어났다. CES 2020에서 가장 눈길을 끈 자동차는 가전업체 소니가 전시한 비전-S 였다. 관심이 모인 것은 가전업체 소니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동차 전자장비 시장에 집중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시다 켄이치로 소니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0년 모바일이 우리 생활을 변화시켰다면 앞으로는 모빌리티가 메가트렌드가 될 것”이라며 “비즈니스 영역을 모빌리티로 확장하겠다”고 말했다.

소니뿐 아니라 올해 CES에서도 IT 업체들은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의 대표적인 통신용 칩 기업 퀄컴은 자율주행 전용 플랫폼 ‘스냅드래곤 라이드’를 공개하며 본격적으로 모빌리티 산업에 뛰어들었다. 퀄컴이 공개한 스냅드래곤 라이드는 자율주행차를 지원하는 첫 완성형 시스템으로 비용과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는 효율성에 중점을 뒀다. 퀄컴은 올해 상반기 중 제품 개발을 추진해 오는 2023년께 본격적인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퀄컴은 올해 하반기부터 선보일 자동차용 클라우드 플랫폼도 공개했다. 차량과 주변 환경 간 소통능력을 극대화해 자율주행의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굴지의 가전·통신 기업들도 적극적인 글로벌 합종연횡을 통해 모빌리티 시장에 집중했다. 삼성전자는 CES 2020에서 5G(5세대) 이동통신 기반의 ‘디지털 콕핏 2020’을 선보였다. CES 2018부터 시작해 3번째다. 올해는 특히 5G 기술을 적용한 차량용 통신장비(Telematics Control Unit·TCU) 기술을 시연하기도 했다. 주행 중에도 고화질 콘텐츠와 HD맵을 실시간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고, 화상회의나 게임을 끊김없이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왔음을 알린 것이다. 삼성전자·하만이 공동 개발한 5G TCU는 2021년에 양산되는 BMW의 전기차 ‘아이넥스트(iNEXT)’에 탑재된다.


▎소니 비전-S / 사진:AFP=연합뉴스
SK텔레콤도 CES 현장에서 전기차 업체 바이톤과 협력을 발표했다. 바이톤은 BMW, 닛산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 출신들이 2017년 홍콩에 설립한 전기차 업체로, 지난해 9월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와 위탁 생산 계약을 맺고 국내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양사는 이번 협약에 따라 차량 내부 통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IVI)을 개발하고 차량에 적용하는 과정 전반에 걸쳐 협력에 나선다. LG전자는 유럽의 차량용 소프트웨어 전문기업 룩소프트와 함께 미국에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기로 했다. 올 상반기 중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지역에 회사를 만들고 LG전자가 자체개발한 커넥티드카 운영체제(OS)인 ‘웹OS 오토’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콕핏, 지능형 모빌리티 시스템 등을 개발할 예정이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18호 (2020.01.20)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