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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간편식(HMR) 선두 기업 CJ제일제당] “개식화 현상, 워킹맘 증가 보니 HMR 식품이 답” 

 

비비고 국물요리 지난해 1650억원 팔려… 전년 대비 30% 증가하며 시장점유율 1위

▎1월 15일 서울 중구 CJ제일제당 사무실에서 만난 이주은 상무. / 사진:전민규 기자
“20여년 간 식품업계에서 근무했는데 처음으로 소비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어요. 일하고 육아까지 전담하는 워킹맘에게 가정간편식(HMR) 국과 탕은 단순 먹거리가 아니라 일상에 여유를 만들어주는 요술 같은 음식이더라고요.”

1996년 즉석밥 햇반을 내놓으며 HMR 시장에 뛰어든 CJ제일제당이 2016년 국과 탕도 HMR 제품으로 선보였다. 즉석밥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할 만큼 독보적인 시장지배력을 보이는 햇반처럼 국과 탕 역시 업계 1위다. 매출 성장세도 가파르다. 2016년 6월 첫 출시해 그해 140억원을 기록한 이후 2018년 1280억원, 2019년엔 1650억원을 기록했다. 시장 점유율은 지난 2018년부터 40%를 넘어섰다. 비비고 국물 요리 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이주은 CJ제일제당 HMR 상온마케팅담당 상무는 “맛과 편리성을 동시에 찾는 현대인 식(食) 트렌드를 살피면서 국과 탕 HMR 식품 성공을 예견할 수 있었다. 여럿이 함께 살지만 각자 스케줄에 따라 혼자 밥을 먹는 ‘개식화(Solo-Dining)’ 현상 역시 HMR 식품 소비와 이어진다”며 “모든 답은 소비자에게 있다”고 말했다.

HMR 국과 탕 제품은 집에서 간편하게 끼니를 해결하고 싶지만 요리하기는 번거롭게 느끼는 사람, 그러면서도 누군가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소비자에게 호응받고 있다. 이 상무의 말이다. “대부분의 비비고 국물요리 제품은 논산에 있는 CJ제일제당 공장에서 만들어집니다. 특히 육개장 제품은 양짓살 고기 피를 빼고 하나하나 직접 찢어 넣고, 국물은 2시간 이상 끓여서 완성하죠. 액기스 등은 사용하지 않고 대신 가정에서 직접 우려낸 국물 맛을 살리기 위해서 아미노산 성분 함량까지 제어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과 압력을 찾아내 이에 맞춰 조리합니다.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핵심 요인이 바로 섬세한 육수 제조 기술에 있죠.”

제품 안에 들어가는 야채 식감도 소비자 선택을 이끄는 데 한몫했다. 레토르트 공정 과정에서 양파나 무 등 야채는 가열 시 115℃부터 조직감이 급속하게 저하돼 무른 식감을 갖게 된다. CJ제일제당은 이를 막기 위해 전처리 기술을 내부적으로 개발해 야채가 단단한 식감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까다로운 수산 원재료 HMR 제품에 도전


출시 첫해 육개장과 두부김치찌개 등 4개 제품으로 시작했던 비비고 국물 요리는 현재 추어탕, 콩비지찌개, 순댓국 등 총 22개 제품으로 늘었다. 하지만 모든 제품이 성공할 거라고 예상하진 않았다. 이 상무는 “솔직히 말하면 미역국 제품은 반신반의했다. 미역국은 워낙 레시피가 간단한 음식이기 때문에 누가 이 제품을 사 먹을까 했지만 반응은 예상외였다. 2017년 출시 후 연평균 50%씩 매출이 성장해서 지난해엔 2017년 매출의 두 배 가량이 팔렸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는 HMR 식품 원재료로 사용하기에 까다로운 ‘수산물’에도 도전했다. 집에서 손질하기 어려운 생선을 제품화한 것이다. 명란, 콩나물, 두부 등이 들어간 알탕과 큼직한 동태살이 씹히는 동태탕 등이 개발됐다. 이 상무는 “냉동식품이 아닌 상온에서 장기간 보관하고 맛볼 수 있는 수산 HMR 식품을 내놓은 건 비비고 국물 요리가 거의 처음”이라며 “집에서 냄새 나는 생선요리를 하기 싫어서 식당에서 알탕, 동태탕을 사 먹던 사람들이 4000원 대에 즐길 수 있어 반응이 좋다”고 덧붙였다. 수산 HMR 제품에는 구이와 조림도 있다. 구이로는 고등어구이, 삼치구이, 가자미구이가 있고 조림으로는 고등어시래기조림, 코다리무조림, 꽁치김치조림이 있다. 이 제품들은 지난해 출시 100일 만에 누적판매량 100만개를 넘기며 월 평균 13억원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끼 식사를 대체할 수 있는 죽 요리도 시작했다. 죽 제품 시장율은 동원F&B가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CJ제일제당은 환자식 범위를 벗어나 다양한 크기의 제품을 내놓으며 차별화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큼직한 국그릇에 가득 담길 만큼의 성인 1~2인용 파우치 포장 죽이다. 죽 제품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부드러운 식감을 선호하는 중장년층 소비자를 겨냥하고 있다. 이 상무는 “건강한 삶을 살고자 하는 현대인은 HMR 제품을 고를 때도 비교적 건강한 음식을 선택한다. 이 같은 소비자 성향을 반영한 제품이 수산 제품과 죽 제품이다. 수산 제품은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하고, 죽 제품은 위와 장에 자극이 적은 음식으로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새벽 배송에 HMR 식품이 더해져

하지만 혁신적인 제품에는 미투 상품, 대체할 수 있는 경쟁자가 곧 따라붙는다. 최근 신선식품과 식재료를 아침에 배달하는 새벽 배송 업체도 그 중 하나다. HMR 제품 주요 소비자인 워킹맘의 소비 패턴이 달라지지 않았나 물었더니 이 상무는 새벽 배송 업체가 오히려 HMR 시장을 키운다고 말했다. “몇몇 새벽 배송 업체에서 비비고 국물 요리를 판매하고 있어요. 상온 HMR 제품은 냉동식품보다 유통기한이 짧기 때문에 그날 먹을 것을 아침에 배송받는 시스템에 우리 상품이 제격이죠.”

국과 탕은 한식 메뉴이기 때문에 시장이 국내에만 한정되지 않을까. 이 상무는 “전형적인 한식 메뉴이기 때문에 오히려 세계적일 수 있다”고 답했다. “세계적으로 한류가 인기를 끌면서 K 푸드가 함께 주목받고 있어요. 하지만 한식은 요리방법이 복잡해서 집에서 만들기 어렵고, 해외에 있는 한식당에서 즐기기엔 가격이 부담스럽죠. 이런 이유로 먼저 마트에서 판매하는 HMR 식품으로 한식을 경험하고자 하는 수요가 많아요. 3~4분 전자레인지만 돌리면 한식을 경험할 수 있어서 젊은 소비자에게 반응이 좋죠. 삼계탕, 된장찌개, 두부김치찌개 등이 해외에서 인기 있는 메뉴에요.”

제품을 출시할 때 제일 어려운 점은 ‘적정가격’ 측정이다. 한 가지 주요 식재료만 들어가는 파스타, 샐러드 등 해외 HMR 제품과 달리 국과 탕에는 수십 가지 원재료와 소스 등이 들어가기 때문에 원재료 값도 고려 대상이지만 사람 손길(인건비)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 예로 소고기장터국을 만들 때 우거지 세척에만 5~6번 손질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상무는 “이런 이유로 제품 가격을 올리게 되는데 가격 너무 높으면 소비자에게 선택받지 못하니, 적정가격을 매기는 것이 늘 어렵다. 합리적인 소비자 가격을 내놓기 위해 항상 고민한다”고 말했다.

-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1519호 (202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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