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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 남매의 난] 조현아와는 다른 조현민의 계산법 

 

조원태 체제서 역할 잃은 조현아… ‘정석기업’ 쥔 조현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왼쪽)과 조현민 한진칼 전무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의 현재 경영상황이 심각한 위기상황이며 그것이 현재의 경영진에 의하여는 개선될 수 없다”(1월 31일 조현아-KCGI-반도건설)

“이명희와 조현민은 조원태 회장을 중심으로 현 한진그룹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지지한다.”(2월 4일 이명희-조현민)

불과 일주일 사이에 발표된 두 입장문은 한진그룹의 경영권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난달 31일 조현아 전 부사장이 KCGI의 손을 잡으며 한진칼의 경영권은 KCGI-반도건설-조현아 연합이 가져가는 듯 했다. 하지만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조현민 한진칼 전무의 조원태 지지 선언으로 양 측의 싸움은 박빙의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양 측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은 32.06%(KCGI-반도건설-조현아) 대 18.3%(조원태-조현민-이명희). 델타항공(보유지분 10%)과 계열사 임원, 친족, 재단(4.15%) 등을 조원태 측 우군으로 분류할 경우 ‘32.06% 대 32.45%’다.

조원태에 밀린 조현아의 반격


조현아 전 부사장은 왜 가족을 등지고 KCGI의 손을 잡았을까. 조 전 부사장과 조 회장 남매의 분열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게 재계의 반응이다. 두 사람은 15개월 차이로 태어난 사실상 연년생으로 한진그룹 후계구도에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왔다. 각자 맡은 사업 분야는 나눠져 있었지만 한진그룹의 계열사 지분 증여는 3남매에게 거의 균등하게 이뤄졌고 두 사람은 각자의 영역에서 경쟁하듯 경력을 키워왔다.

누나인 조 전 부사장은 1999년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본부 대리로 입사했다. 미국 코넬대학에서 호텔경영을 전공한 그는 대한항공 사업의 한 축인 호텔 부문을 맡았다. 조 회장은 2003년 계열사인 한진정보통신으로 입사, 2004년에 대한항공 핵심부서인 경영전략본부 차장으로 옮겨왔다. 입사 초반에는 누나인 조 전 부사장의 승진이 빨랐는데, 2010년 인사에서 동시에 전무를 달며 조 회장의 존재감이 커졌다.

두 사람의 균형이 무너진 것은 2014년 말 이른바 ‘땅콩 회항’ 사태가 발단이 됐다. 이 사태로 조 전 부사장은 모든 직책에서 내려오게 됐고, 조 회장이 후계구도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된다. 조 전 부사장은 약 3년이 지난 2018년 3월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경영복귀를 시도했지만 한달 만에 다시 물러나야 했다. 조 전무의 이른바 ‘물컵 갑질’ 사태가 발단이 됐다. 이후 한진그룹 일가에 대한 사정기관의 조사가 이어졌고, 지난해 3월에는 조양호 전 회장이 사망했다. 남매 중 유일하게 경영진에 남아있던 조 회장는 한진그룹 후계자로 무게감을 키웠다.

조 전 부사장이 결국 KCGI 측과 손을 잡은 것은 조원태 체제에서 자신이 나설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조 회장 체제에서 조 전 부사장의 경영참여는 철저히 배제됐고, 지난해 말 단행된 대한항공의 인사에선 조 전 부사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던 기내식기판 담당 임원 상당수가 퇴사했다.

조 전 부사장의 입장에선 어차피 경영 일선에 나서지 못한다면 KCGI의 손을 잡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할 수 있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조현아와 KCGI간 모종의 딜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조만간 KCGI가 내놓을 주주제안을 보면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삼자동맹에 가입한 조 전 부사장 측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공언했기 때문에 조 회장의 경영권을 뺏더라도 직접 경영에 나설 수는 없다. 하지만 조 회장 체제가 깨진다면 자신의 측근을 대표로 앉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그게 아니라면 한진칼 및 정석기업 지분 등을 KCGI가 구조조정 대상으로 언급한 호텔사업 지분과 맞바꿀 가능성도 있다.

조현민 부사장 취임날 신규사업 추가한 정석기업

그렇다면 조원태 측의 손을 잡은 이명희와 조현민의 계산법은 뭘까. 조현아·조원태와 나이 차이가 큰 조현민은 사실상 승계와 관련해 직접적인 경쟁에선 벗어나 있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LG애드(현 HS애드)에서 잠시 근무한 뒤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에 과장으로 입사한 시기는 2007년. 대한항공이 자회사로 저비용항공사(LCC) 진에어의 출범을 준비하던 시기였고, 자연스레 진에어의 경영을 조 전무가 담당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외국인 등기이사 선임제한 때문에 이뤄지지 못했다. 외국인인 조현민은 당초부터 진에어의 등기이사를 맡을 수 없었다.

조원태 회장은 ‘물컵 갑질’ 사태로 물러난 조현민에게 먼저 경영복귀의 길을 열어줬다. 조현민은 모든 경영 직책에서 물러난 지 불과 1년2개월 만인 지난해 6월 정석기업 부사장과 한진칼 전무를 맡으며 경영에 복귀했다. 조현아에게 경영참여의 길이 열리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조 전 부사장에게 검찰조사 및 재판 등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지만 조현아와 함께 조사와 재판을 받은 이명희 고문이 정석기업 사내이사직을 지속 유지하고 지난해 6월에는 고문직도 맡은 것을 고려하면 조현아 입장에선 불합리하다고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상속세 재원 마련이 시급한 상황에서 단 한푼의 임금도 받지 못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조현민이 조원태 체제의 한진그룹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 재계에선 ‘정석기업’에 주목한다. 이명희 고문은 2006년부터 정석기업의 사내이사를 지속 맡아왔다. 조현민의 경영복귀도 지주사인 한진칼과 함께 정석기업 부사장으로 이뤄졌다. 정석기업은 한진칼이 지분 48%를 가진 비상장법인인데, 대표적인 알짜 회사로 통한다. 이 고문과 조 회장 3남매는 20%정도 되던 조양호 전 회장의 정석기업 주식을 법정비율대로 상속받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조현민이 부사장으로 임명된 날 정석기업이 새로운 사업목적을 추가했다는 점이다. 정석기업은 지난해 6월 10일 ‘부동산 개발 및 공급업’을 등기부상 사업목적에 추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동산 개발 및 공급업은 토지나 건물을 도급해 개발에 나서고 이를 분양하는 사업이다. 임대 및 오피스 관리 서비스를 주로 영위하던 정석기업이 개발사업을 갑자기 추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조현민의 부사장 취임과 동시에 사업목적이 추가됐다는 점에서 조현민이 구상하는 사업 영역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한편 정석기업은 지난해 하반기 부산 정석빌딩을 매각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오너일가의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한 매각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21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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