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해운대 펜트하우스 10년 넘게 미분양 사연] 투자성 적은데 누가 거액 들이나 

 

달아오른 서울과 달리 싸늘한 해운대 집값… 보유세 올라 주인 찾기 더 힘들 듯

▎지난해 말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옆에 준공한 국내 최고층(85층) 아파트 '해운대엘시티더샵'. 최고층 펜트하우스 6가구 중 3가구가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고층 건물이 많은 마천루 숲 부산 해운대. 최고 72층의 해운대아이파크 65층과 66층에는 국내 아파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285㎡(이하 전용면적, 127평형)이 위아래로 2가구 들어서 있다. 그러나 2011년 준공 이후 10년째 불이 꺼져 있다.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양을 시작한 2008년 초부터 따지면 13년째 미분양이다. 이 단지 1631가구에서 ‘유이한’ 미분양 물량이다. 이 단지 옆에 해운대아이파크와 비슷한 시기에 분양하고 준공한 해운대두산위브더제니스. 맨 위인 66~80층의 222㎡(98평형) 30가구 중 여섯 가구도 주인을 찾지 못했다. 총 1788가구에서 다른 주택형엔 미분양이 없다.

해운대 앞바다를 내려다보는 ‘하늘 위 궁전’ 펜트하우스(꼭대기 층 고급주택)가 뜻밖에 아직 미분양 상태다. 이 집들의 등기부등본 소유자는 시행사다. 현대산업개발(해운대아이파크)와 대원플러스건설(해운대두산위브더제니스)이다. 집값 상승을 주도한다며 정부가 시가 30억원 초과 주택의 담보대출을 아예 금지한 서울 초고가 주택 시장과는 완전 딴판이다.

이 단지들뿐 아니다. 지난해 말 인근 해운대해수욕장 옆 바닷가에 준공한 해운대엘시티더샵은 85층의 국내 최고층 아파트다. 꼭대기 층을 차지한 244㎡(95~97평형) 6가구 중 3가구도 미분양 명단에 남아있다. 부산시의 미분양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총 882가구 중 미분양은 244㎡ 3가구뿐이다.

70층이 넘는 해운대 랜드마크 3개 주상복합 단지 모두 빈 펜트하우스가 있는 셈이다. ‘희소가치’ ‘최고급’ ‘초고층’ ‘바다 조망권’ 등 최고의 조건을 갖췄는데도 미분양이라는 데 업계도 의외라는 반응이다. 주택 매수를 좌우하는 투자성이 당초 하늘을 찌를 듯한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펜트하우스 분양가 최고 3.3㎡당 7000만원

2000년대 중·후반 집값 급등기 끝 무렵이던 분양 당시, 펜트하우스 가격은 다른 주택형의 3배에 가까웠고 금액도 워낙 비쌌다. 두 단지의 평균 분양가가 1600만원대였는데, 펜트하우스는 최고 4500만원이었다. 같은 시기에 분양한 서울 뚝섬 주상복합 갤러리아포레 최고가 수준이었다. 가구당 분양가가 해운대아이파크 285㎡ 57억6360만원이었고, 해운대두산위브더제니스 222㎡ 28억~44억원이었다. 2008년 부산에서 거래된 아파트 4만5000가구의 거래가가 3.3㎡당 평균 900만원대였다. 10억원 초과가 5건에 불과했고 최고가도 20억원이 되지 않았다.

2015년 10월 분양한 해운대엘시티더샵 펜트하우스 분양가는 3.3㎡당 4700만~7000만원이었다(전체 평균 2700만원). 가구당 45억~68억원이다. 당시 부산 평균 분양가가 3.3㎡당 1000만원대였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분양가가 비싸 안 팔리고 있는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분양 초기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일반 주택형은 분양됐지만 초고가의 펜트하우스 분양 실적이 저조했고 그 뒤 시장 분위기도 냉랭해졌다. 해운대아이파크와 해운대두산위브더제니스가 입주한 2011년 이후는 부산 집값 상승세가 한풀 꺾인 때였다. 2016년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해운대구가 2017년 8·2대책으로 양도세 중과 등 규제를 받으며 2018년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8·2대책 뒤인 9~10월 각각 35억원과 38억원에 거래된 해운대두산위브더제니스 222㎡ 2가구가 지난해 9월 같은 가격 그대로 팔렸다. 2017년 매수자는 15억18억원가량 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보유 기간 2년간 대출이자 1억여원, 보유세 1000만원 정도를 손해 보고 넘긴 셈이다.

해운대엘시티더샵 분양권 거래도 비슷하다. 펜트하우스 2건이 거래됐다. 분양 직후인 2015년 11월 거래 땐 분양가에 웃돈이 3000만원 정도 붙었지만 2018년 6월 거래 가격은 그만큼 내려가 분양가 그대로였다(49억8600만원). 해운대아이파크와 해운대두산위브더제니스는 조망권을 살리기 위해 독특한 평면을 도입해 주거 편리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월무 미드미디앤씨 대표는 “해운대 조망권을 내세워 서울의 투자수요를 기대했는데 서울에서 돈이 생각만큼 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고개 숙인 펜트하우스는 정부의 공식적인 평가금액인 공시가격으로도 확인된다. 해운대아이파크와 해운대두산위브더제니스가 공시가격에 이름을 올린 2012년 이후 지난해까지 부산 아파트 공시가격은 평균 13.9% 올랐다. 같은 기간 이 단지들의 펜트하우스 공시가는 20% 넘게 내렸다. 2012년 41억4400만원이던 해운대아이파크 285㎡가 지난해엔 30억4000만원까지 내렸다. 정부가 밝힌 지난해 시가 30억원 초과의 공시가격 현실화율(69.2%)을 적용하면 지난해 시세가 43억9000만원 선이다. 11년 새 분양가보다 몸값이 13억원(24%) 내린 셈이다.

10년새 공시가격 20% 넘게 하락하기도

해운대아이파크 펜트하우스보다 6억원 쌌던 갤러리아포레 271㎡(분양가 50억원)의 지난해 공시가격이 46억원으로 시세가 66억원 정도로 평가된다. 분양가보다 16억원 올랐다. 달아오른 서울 집값과 싸늘한 해운대 집값의 명암을 보여준다.

이 펜트하우스들이 가격을 많이 내리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주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2018년 9·13대책과 지난해 12·6대책으로 종부세율이 두 차례 올라가고 공시가격이 뛰면서 급등하는 보유세 부담 때문이다. 해운대아이파크 285㎡ 공시가격 30억4000만원의 지난해 보유세가 2700만원이었다. 올해 공시가격 산정 때 시세를 지난해와 같다고 보더라도 정부가 올해 시가 30억원 초과에 적용키로 한 현실화율 80%에 따라 공시가가 35억원 정도 나올 수 있다. 이 금액의 보유세는 지난해보다 50%가량 늘어난 4000만원이다.

해운대엘시티더샵 공시가격이 올해 처음으로 나온다. 펜트하우스 중에서도 최고가인 67억9600만원 분양가를 시세로 보고 현실화율 80%로 계산하면 공시가가 54억원이다. 보유세가 7600만원이다. 2015년 분양 당시 같은 분양가로 예상된 보유세는 3500만원 정도였다.

부산 해운대 랜드마크 초고층 주상복합들의 미분양 펜트하우스에 볕이 들까.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재력가라 할지라도 펜트하우스의 희소가치만 보는 게 아니다”며 “큰 시세차익을 기대하지 않아도 투자성이 적은 데 거액을 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 안장원 중앙일보 기자 ahnjw@joongang.co.kr

1522호 (2020.02.24)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