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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원격의료 첫발 뗄까] 설익은 정책, 의료계 반발에 20년째 ‘시범사업’ 

 

법적 책임·의료 민영화 공방 여전… 미·중·일은 디지털 헬스케어 성큼

▎일본 정부가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이던 다이아몬드프린세스호에 코로나19 원격진료를 위한 아이폰 2000대를 공급했다. / 사진:© gettyimagesbank
지난 2월 16일, 일본 후생노동성이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이던 다이아몬드프린세스호에 아이폰 2000대를 공급했다. 다이아몬드호 탑승객 3400여명 중 285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되자 의료 상담을 하기 위해 객실마다 ‘코로나19 대응 지원센터’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아이폰을 배포한 것이다. 승객들은 원격으로 의사·간호사에게 의료 상담은 물론 고민 상담, 약물 요청 등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서비스는 원격의료 상담서비스를 실시 중인 소프트뱅크·라인이 제공했다.

위기 상황에 상당히 획기적인 방법이지만 그러나 이 같은 원격의료 상담 서비스는 한국에선 불법이다. 원격 기기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모니터링 하는 것은 괜찮지만, 의료진이 환자에게 “규칙적 수면을 해라” “물을 많이 마셔라” 권고하는 행위는 의료법 위반이다. 유럽연합(EU)과 미국·중국 등 세계적으로 원격의료 서비스가 개화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인 셈이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선원·군인 등 격오지 근무자들은 제때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사태로 원격의료 필요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의료진 부족으로 대구·경북지역 감염자 급증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거나, 의료진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일이 속출하자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24일 전화로 의사 진단과 처방을 받는 원격진료를 일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병원은 의사의 판단에 따라 전화 상담으로 진료·처방을 할 수 있게 됐다. 진료비는 계좌이체 등 송금으로 결제하고, 처방전은 팩스·이메일로 환자가 희망하는 약국에 전송해주는 식이다. 환자와 약사가 합의하면 약을 택배로 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중소 산업단지나 노인요양시설 등 일부 지역의 공공의료기관을 제외하고 원격의료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전염 속도가 빨라 불가피하게 일시 허용했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김강립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은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정례 검진과 투약이 시급하다. 이동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단기간 내의 제한적 조치”라고 의사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코로나19에 일시 허용했지만 의료계 거센 반발

그러나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조치가 원격의료 전면 허용을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을 통해 “전화상담 및 처방은 환자의 진단을 지연하거나 적절한 초기 치료의 기회를 놓칠 위험성이 있다”며 “원내 조제의 한시적 허용으로 의료기관의 직접 조제와 배송을 함께 허용하지 않는 이상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이번 일시 허용 조치는 강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실효성에 의문도 제기된다. 협회는 의사 회원들을 상대로 ‘코로나19 관련 대회원 긴급 안내’를 통해 “협회는 정부가 발표한 전화 상담 및 처방을 전면 거부한다. 회원님들의 이탈 없는 동참을 부탁드린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격의료 문제는 다시 도마 위에 오르며 뜨거운 감자가 됐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월 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코로나19 사태로 경증 환자나 평소 고혈압·당뇨 등을 앓던 분들의 경우 원격으로 의료 심사를 받을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됐다면 어땠을까”라며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하자”고 제안했다. 최 의원은 또 원격의료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의료법 개정안’이 10년째 국회 계류 중인 데 대해서도 “각자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국민 모두의 후생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냉정하게 논의해 보자”고 말했다.

의료계가 가장 반발하는 지점은 의료진의 책임소재에 있다. 원격진료는 화상·음성·문자 등 제한적 정보만으로 진단·처방을 내려야 하므로 오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책임소재와 진료 범위, 의사 재량권, 보험청구 등 세부적 지침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적으로는 의료진이 진단의 주체이기 때문에 오진의 민·형사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원격진료의 일시 허용에서 정부는 ‘의사 판단에 따라 안전성 확보가 가능한 경우’로 제한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의료법상 원칙적으로 금지된 원격의료를 한 것에 대한 형사·행정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의료사고 발생 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은 져야 한다.

특히 환자의 병력 등 의료정보를 활용할 수 없다는 점도 원격의료를 가로막는다. 국회에서 데이터3법이 처리돼 개인정보를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그 범위는 격오지 근로·거주자의 가명 정보로 제한적으로 제공된다. 정보를 활용하지 못하니 환자의 건강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전용 플랫폼도 없는 실정이다. 한 대학병원 의사는 “원격의료와 개인의료정보는 묶음이다. 둘 중 어느 한 가지 규정만 풀려서는 실효성 있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환자를 보고 있는 의료진이 화상 등을 통해 타지의 의료진과 상담·진단하는 행위는 합법이다. 그러나 개인정보 제공 동의가 필요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는 의료법 제34조에 따라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또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대형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이 심해져 동네 의원이 고사, 의료전달체계가 붕괴할 거란 우려도 있다. 여기에 병·의원이 오진 가능성까지 떠안으며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설비 투자를 단행할 가능성이 작다. 게다가 한국은 영토가 그리 넓지 않고 의료접근성이 높아 원격의료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격의료 외면하면 한국 갈라파고스 될 수도”


그러나 세계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추세로, 여론 또한 의료 서비스의 편의성을 높여야 한다며 원격의료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원격의료를 전면 도입하면 120만명의 의료 소외계층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건강보험 재정 악화가 불가피한데, 원격의료를 통해 사회·재정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정보통신기술(ICT) 선진국들은 원격진료를 허용하고 있다. 격오지 등 의료 사각지대에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다. 영토가 넓고 의료서비스가 비싼 미국은 진료 건수 6건 중 1건이 원격의료일 정도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화상통화·앱 등을 통한 원격진료는 실제 대면 진료보다 비용이 70%가량 저렴하다. 스마트폰에 연결하는 웨어러블 심박 측정기나 혈압안정기 등 가정용 의료기기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보급되고 있다.

2015년 원격의료를 전면 시행한 일본은 2018년부터 의료보험 및 건강보험에도 원격의료를 적용하고 있다. 중국도 2016년부터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시작했다. 5세대(5G) 이동통신망과 클라우드 서버 구축, 의료장비 기술의 발달 등으로 원거리 수술도 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

이런 흐름은 구글·IBM·알리바바·소프트뱅크 등 글로벌 ICT 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한국보다 통신 환경과 의료설비가 열악한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원격의료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일류의 의료 기술을 갖고도 이런 세계적 조류에 발맞추지 못하면 갈라파고스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5G와 의료 데이터,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갖고도 활용할 수 없다”며 “메르스나 코로나19 같은 판데믹(감염병 대유행)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원격의료와 의료 데이터 활용 등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격의료를 전면 도입하고 의료정보를 활용하면 기업은 개인의 혈당·부정맥 등 만성 질환 정보도 습득해 일상 진찰이 가능해진다. 의료·생체 정보까지 습득하게 되면 정밀의료와 차세대 유전체 분석 등 첨단 의료 연구도 가능해진다.

이런 필요성에 정부는 2000년부터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작했지만, 의료계의 ‘집단 휴진’ 등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삼성전자·삼성생명·SK텔레콤·LG유플러스·LG전자 등 대기업들이 2010~13년 원격 의료 시범사업에 뛰어들었을 때도 의료계는 의료 민영화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고객의 운동량에 따라 보험료를 절감하는 신기술·신개념 상품을 내놓아도 의료계의 반발이 겁나 홍보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원격 모니터링·의료전달체계 먼저 구축” 주장도

찬반의 경계가 분명해 이번에도 원격의료 논의가 용두사미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실효성 있는 정책 도입을 위해 원격 모니터링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다.

원격의료가 기존 의료 체제를 완전히 대체하는 게 목적이 아닌 만큼, 원격 모니터링을 전면 도입해 환자의 관리 수준을 높이고,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원격 모니터링은 환자가 자택에서 의료기기를 이용해 스스로 혈당·혈압·심전도 등 일상 건강 데이터를 병원에 보내면 의료인이 원격 모니터링하고 피드백을 주는 방식이다. 고혈압·당뇨·심장질환 등 만성질환환자 질병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원격 모니터링 자체는 위법이 아니다. 다만 의료진이 환자에게 권고하는 것은 원격진료로 불법이기 때문에 서비스 활성화에는 부담이 된다.

또 의료전달체계 먼저 제대로 구축할 필요성도 있다. 의료 전달체계란 대형 병원에 환자 집중을 막기 위해 지역 병·의원을 먼저 가도록 하는 시스템인데, 한국은 여전히 환자가 대형 병원으로 몰려 각급 병원이 무한경쟁을 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해 환자들이 각급 병원에 나눠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1차 의료기관으로서 공공 보건의료체계를 강화하면 의료계의 반발도 감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현재 동네 병·의원과 대학병원이 한 상에서 다투는데, 여기에 원격의료를 또 들인다고 하니 어떤 의료인이 찬성하겠느냐”며 “각급 병원의 체계를 먼저 잡는 게 먼저며, 이 실마리부터 풀어야 원격의료 논란을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526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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