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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희의 테크&라이프] 일, 창업가처럼 온라인 협업하자 

 

일하는 환경이 디지털로 바뀌어, 지금부턴 일하는 방식도 바꿔야

▎사진:© gettyimagesbank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서로 얼굴을 맞대며 일하고 거래하며 대화하고 모인다는, 우리가 그간 당연하게 생각해 오던 활동들이 모두 지장을 받고 있다. 재택근무에 소극적이던 기업들도 이젠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네이버·카카오·현대자동차·SK 등 크고 작은 기업, 기관들이 재택근무에 나섰고 미국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트위터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직원들에 재택근무를 권하고 있다.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나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같이 현장에서 다양한 고객을 만나면서 홍보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전시회도 취소되면서 마케팅과 홍보(PR), 제휴 등의 업무도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직장에 한데 모이지 못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일할 것인가? 도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e메일과 메신저가 있고, 업무를 공유하는 협업 도구도 많이 나와 있다. 네이버 자회사 라인웍스의 협업솔루션의 2월 메시지 트래픽은 1월보다 5배 늘었다고 한다. 영상 통화와 영상 화면 공유 사용량은 1.5배 증가했다. 대용량 파일을 주고받기 편해 업무용으로 많이 쓰이는 네이트온 메신저는 2월 24일부터 3월 1일 사이 메시지 발송 건수가 지난달 같은 기간보다 10% 이상 늘었다. 온라인 업무 도구를 만드는 기업들은 이번 기회를 틈타 무료 사용 이벤트를 열며 홍보에 열심이다.

동료들과 바로 소통하는 플랫폼 역할 확대

사실 온라인 환경을 염두에 두고 협업과 공유, 실시간 의사 소통에 초점을 맞춘 업무 지원 서비스는 점점 확산되어 왔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소프트웨어가 업무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개발자나 디자이너는 디지털 형태의 결과물을 인터넷으로 세계 어디서든 전송할 수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보수적인 국내 기업 문화에서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더구나 협업은 이제 단순히 외주 인력과 e메일로 연락하고 웹하드에 올려놓은 시안을 확인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업무의 판자체가 새롭게 바뀌고 있다.

이런 현상을 잘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바로 메신저 ‘슬랙(Slack)’의 인기다. 실리콘밸리 직장인들 사이에서 조금씩 인기를 얻기 시작하더니 몇 년 새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열풍이 됐다. 슬랙은 상장을 했고, IBM 같은 거인 기업도 35만명 직원 전체의 소통 수단으로 슬랙을 도입하기로 했다.

슬랙은 겉보기에는 그냥 메신저이다. 우리나라 직장인들도 24시간 카카오톡으로 상사의 지시를 받을 정도로 업무에 메신저를 잘(?) 활용하고 있는데, 슬랙은 무엇이 특별할까? 슬랙은 채팅을 매개로 업무에 쓰는 여러 소프트웨어와 온라인 협업 도구들을 날줄과 씨줄처럼 엮어준다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의 많은 직장인들이 이러한 온라인 도구를 사용해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일정과 진척 상항을 공유하며, 업무를 적절한 사람에게 맡기고, 결과물에 피드백을 주고 있다.

슬랙은 다양한 온라인 협업 도구를 메신저에 통합해 동료들과 바로 소통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필요한 기능을 슬랙에 구현할 수 있도록 직접 개발을 할 수도 있다. 구글 드라이브에 저장한 구글 문서 링크를 채팅 창에 공유하면 문서를 바로 열어 함께 편집할 수 있다. 채팅 창에서 대화하며 프로젝트 일정 관리 도구의 내용을 새롭게 바꾸거나 완료된 일을 지울 수도 있다. 업계 뉴스 공유처럼 필요하지만 번거로운 일들은 자동화할 수도 있다. 카카오톡에서 부장님에게 업무지시를 받으면 프로젝트 관리 도구에 따로 들어가 새 할일 항목을 만들어야 하지만, 슬랙에선 대화하면서 바로 항목을 만들 수 있다.

슬랙의 인기 뒤에는 클라우드 기반의 온라인 협업 도구가 점점 더 많이 쓰이고 있다는 현실이 자리한다. 프로젝트 진척 상황을 나타내는 포스트잇이 붙은 화이트보드를 온라인에 옮긴 듯 한 모습의 ‘트렐로(Trello)’, 할 일들을 정리하고 업무를 팀원에게 배정하는 ‘아사나(Asana)’ 같은 서비스는 스타트업에서 일반적인 도구가 됐다. 영업 활동을 위한 고객관계관리(CRM) 솔루션은 세일스포스 같은 기업이 완전히 온라인화 했다.

이들 협업 서비스의 특징은 집이건 사무실이든, PC든 스마트폰이든 상황에 구애 받지 않고 접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꼭 사무실에 모이지 않더라도 집에서도, 카페에서도 일은 가능하다. 더 중요한 건 모든 팀원이 투명하게 업무를 공유하고 누가 어떤 일을 맡았는지, 일은 얼마나 진행됐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팀의 전체 그림이 어떻고,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성과는 어느 수준인지 등을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다. 파티션이 처진 사무실에서 옆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팀장이 나에게 왜 이 일을 지시하는지 모르는 채 일하는 것과는 동기유발의 수준이 다르다.

클라우드 기반 협업은 효율성도 높여준다. 보고서를 e메일에 첨부해 보내면 팀장과 부장, 외부 고객 등의 수정을 수없이 거치면서 어느 파일이 최신 버전인지 헷갈리는 경험은 직장인 누구나 할 것이다. 최근의 온라인 문서는 아예 하나의 문서에 관계자들이 함께 접속해 작업하는 접근법을 취한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문서에 기록할 수 있고, 웹페이지 게시물에 댓글을 달듯 문서의 외부에 댓글을 달거나 필요한 파일을 첨부할 수 있다. 문서 출력을 전제로 하는 작업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할 일 체크박스나 동영상·웹페이지 링크 등을 넣어 역동적인 업무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요즘 인기 있는 ‘노션(Notion)’ 같은 서비스는 한발 더 나아가 아예 하나의 페이지에서 데이터베이스·캘린더·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필요에 따라 같은 데이터를 다른 형식으로 보여주기까지 한다.

디지털 변화에 맞춰 일하는 문화도 달라져야

우리는 이미 많은 협업 도구를 갖고 있다. 대기업들은 자체 시스템을 구축했고, 중소기업들이 적은 부담으로 쓸 수 있는 업무 솔루션도 많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 직원이 집에 있건, 카페에 있건 믿고 일을 맡기는 수준의 협업을 위해선 기술만큼이나 문화도 중요하다. 공유와 투명성, 책임과 위임, 솔직한 의사소통 등이다.

이런 문화는 위에서 소개한 최근의 여러 협업 도구들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말하면 투명하게 공유하고 각자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할 준비가 안돼 있다면 좋은 도구를 도입해도 효과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솔직히 업무에 대한 투명성은 관리자나 실무자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 코로나19로 우리는 확실히 알지 않았나. 변화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행히 이제 관료적 구조에 최적화된 서류 중심 업무 방식에서 벗어나 디지털 환경에 맞게 일할 여건이 됐다. 당신 눈 앞 스크린에 떠 있는 흰 색의 공간은 바로 당신 팀의 공동 사무실이다. 가상현실 헤드셋을 머리에 쓰고 손짓으로 포스트잇을 떼어 벽에 붙이지 않아도 당신은 이미 가상현실 사무실에 있는 것이다. 혹시 당신은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를 책상에 두고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서도 아직도 A4 용지에 출력할 서류를 중심에 놓고 업무에 임하는 것은 아닌가.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1526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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