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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하려는 의식이 오류로 연결내게는 기침이 역설적 의도의 대상 중 하나다. 최근 들어 기관지가 약해져서 가끔 기침을 하지만, 그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다. 평소 일상생활을 할 때는 거의 기침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침을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상황이나 장소에서, 스스로도 기침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드문 기침이 터져 나오곤 한다. 마치 기침을 하지 않으려는 의식이나 노력이 오히려 기침을 불러오는 것 같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이런 역설적 의도는 낯설지 않을 것이다.심리학을 공부하며 접한 역설적 의도 중 하나는 불면증과 관련된 것이다. 대개 쉽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빨리, 깊은 수면에 빠져들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잠을 자려고 노력할수록 잠은 멀리 달아나버린다. 잠이 기대한 만큼 빨리 찾아오지 않을수록 불안하거나 초조해지고 그 불안감은 다시 잠에 필요한 몸과 마음의 이완(relax)을 불가능하게 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운전 중이나 중요한 회의자리와 같이 잠을 자면 안 되는 곳에서 갑자기 무섭게 졸음이 찾아오기도 한다.불면증은 단지 잠을 못 자는 병이 아니라 자야 할 때 못 자고 자면 안 될 때 잠드는 병이다. 그래서 어떤 심리치료사들은 불면증을 호소하는 상담자에게 오늘 밤에는 침대에 누워서 가능한 오랫동안 잠들지 않으려고 노력해보라고 제안한다. 잠을 자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동안에는 최소한 잠이 찾아오지 않을까 봐 고민하는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다른 불면의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 불안이 없어진다는 것만으로도 잠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렇게 역설적 의도를 역이용한 불면치료 기법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를 발휘한다.불안감 그 자체도 역설적 의도와 아주 가까운 존재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 심하게 떨어서 준비한 내용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곤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크건 작건 ‘무대 공포증’을 겪고 있는 셈인데, 이런 사람들은 그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지만 매번 실패하곤 한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으로 끔찍한 좌절 경험일 뿐만 아니라, 조직의 일원으로서 능력을 인정받는데도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곤 한다. 이런 경험을 호소하는 이들을 상담해본 전문가들은 그들 대부분이 두려움을 의식하고 억제하려는 노력 자체가 불안감을 불러오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인간관계에서도 역설적 결과 빈번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역설적인 상황은 비교적 드물다. 나머지 대부분의 경우에는 우리의 의도와 노력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는다. 무대 공포증이나 불면증도 마찬가지다. 운동선수들도 무대 공포증에 시달리는 직업군 중의 하나다. 꼭 이겨야 하는 중요한 경기일수록 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긴장을 통제하지 못하면 경기력을 발휘 못해서 지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엄청난 연습이다. 최근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NBA 농구선수 코비 브라이언트는 팀 훈련과는 별도로 매일 1500개의 슛 연습을 했다.발표할 때의 불안도 마찬가지로 해결할 수 있다. 불안감을 압도할 정도로 충분히 발표 자료를 숙지하고 반복적으로 발표 리허설을 하는 것이다. 불면증에도 직설적 의도에 해당하는 치료기법이 있다. 이완 훈련(relaxation training)이 대표적인데, 머리끝부터 발끝에 이르는 온 몸의 근육을 하나씩 의식해가며 힘을 빼는 연습을 반복하는 방법이다. 간단히 말해서 침대에 누워 이마 근육부터 눈, 입과 턱 근육에 들어가 있는 힘을 빼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드는 식이다.둘 중 어느 방법이 절대적으로 우월한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둘 다 그에 합당한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대체로 직설적 의도는 기계적이고 단순한 대상에게 가장 잘 작동한다.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에는 역설적 결과가 종종 발생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공부를 잘하기를 바라고, 이를 위해서 사교육에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가장 잘하는 건 공부가 아니라 컴퓨터 게임인 경우가 많다.상대방의 호감을 얻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오히려 어색함이나 당혹감을 선사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직에서도 그렇다. 부하직원들의 존경을 받기 원하는 리더일수록 존경과는 정반대의 대상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너희들이 얼마나 하찮으며, (그런 너희에 비하면)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알려줘야 나에 대한 존경심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이 가져온 역설적 결과다. 직원들의 성과를 촉진하기 위해서 압박을 가하는 건 어느 정도까지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 효과만 믿다가는 유능한 직원들은 다 빠져나가고 달리 갈 곳이 없어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직원들만 남은 조직을 얻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적절한 대상에 적절한 방향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지 못할 때 우리는 역설적으로 자신들이 피하려던 결과를 얻고 말 것이다.※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