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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해지는 ‘랜드로버’의 존재감] 억대 가격에도 ‘품질 논란’ 확산, 1분기 판매 반토막 

 

‘불매운동’ 일었던 일본차 판매 수준… 서비스센터 확충은 소극적

2016년 한국 시장에서 처음으로 1만대 판매를 넘어서며 수입차업계 안팎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랜드로버’가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다. 한때 ‘강남 싼타페’라는 수식어를 얻을 정도로 수입차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지만 지난해부터 급격한 판매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랜드로버의 판매량은 7713대로 전년(1만1772대) 대비 34.5% 급감했다. 수입차시장 점유율도 2018년 4.52%에서 2019년 3.15%로 떨어졌다. 올해 1~3월 판매는 더 심각하다. 1분기 동안 1494대 판매에 그쳤는데, 지난해 1분기 2796대 판매에 비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올해 1분기 수입차시장 점유율은 2.73%로 더 떨어졌다. 2014년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랜드로버의 판매 급감 요인으로 ‘고객들의 품질 불만’을 꼽는다. 서비스 인프라 부족에 따른 서비스센터 이용 불편이 불만을 가중시켰다. 무리한 고가트림 전략도 판매 절벽의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런 가운데 경쟁업체들이 SUV 라인업을 확충하며 ‘SUV 대표 브랜드’ 랜드로버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품질 불만’ 꼬리표에 판매 급감


랜드로버가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2010년대 들어서다. 2012년부터 매년 150%의 성장세를 거듭했고, 2016년에는 연간 판매 1만대 고지를 넘어서며 수입차업계 판매 6위에 올랐다. 2013년까지 1%대에 그쳤던 수입차시장 점유율은 2014년 2%대(2.38%)로 올라섰고, 2017년엔 4.61%까지 비중을 높였다.

하지만 연간 1만대 판매는 2018년에서 멈추었고, 이후 판매량이 급감했다. 지난해 랜드로버의 판매량 감소폭(34.5%)은 전체 수입차 판매량 감소폭(6.1%)을 훨씬 넘어선 수치다. 일본상품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은 닛산(-39.6%), 토요타(-36.7%)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수입차 시장 점유율도 전년 4.52%에서 1.37%포인트나 떨어졌다. 랜드로버의 판매 부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랜드로버는 신차 출시 효과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재규어 랜드로버코리아는 지난해 7월 2세대 레인지로버 이보크를 출시했는데, 출시 이후 9개월간 이보크의 판매는 월평균 77대에 그쳤다. 이전 모델의 2019년 1~5월 월평균 판매량(89대)보다 적은 수치다. 올해 2월 부분변경해 내놓은 디스커버리 스포츠도 2월 한달 동안 72대가 팔리는데 그쳤다.

판매저조는 같은 회사 브랜드인 재규어도 마찬가지다. 재규어는 2017년 연간 판매량이 4125대까지 올랐으나 판매 감소세가 가파르다. 지난해 판매량은 2484대에 그쳤으며 올해 1~3월에는 225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월 평균 판매량이 75대 수준으로, 판매량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연간 1000대 판매에도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자동차업계에선 재규어랜드로버에 대한 ‘품질 논란’을 판매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교수(자동차학부)는 “일본차 브랜드의 판매 감소는 무역 갈등으로 인한 불매운동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기인한 측면이 크지만, 랜드로버는 ‘품질’에 대한 불만족이 판매 감소를 이끈 것으로 보인다”며 “브랜드의 매력도를 보고 비싼 가격에 차를 산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만 여론이 커지면서 급격한 판매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랜드로버의 품질에 대해서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 2018년 가수 출신인 황현민씨와의 분쟁이 화제가 되며 표면에 드러났다. 황씨가 리스한 2016년식 랜드로버 디스커버리4가 6개월 사이 3번 멈춰서는 등 중대한 결함이 반복됐고, 결함에 대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황씨는 딜러사 직원에게 폭언을 했다. 사건 초기 ‘전직 연예인의 갑질’로 보도됐지만, 랜드로버의 품질과 고객대응의 문제로 번졌다. 랜드로버의 품질과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많던 소비자들의 질타가 쇄도한 것.

현재 황씨는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딜러사 천일오토모빌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 중이다. 황씨의 소송을 대리하는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원고는 자동차의 결함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고 이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요구했는데, 피고는 허위·왜곡 보도를 사주해 연예인인 원고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켰다”고 주장했다.

랜드로버의 품질에 대한 불만족은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공신력 있는 시장조사 매체 미국 제이디파워(JD Power)가 지난 2월 발표한 ‘2020 내구품질조사(Vehicle Dependability Study, VDS)’에서도 랜드로버는 꼴찌를 기록했다.

제이디파워의 내구품질조사는 조사 당시 기준 3년 전 미국에서 판매된 차량을 대상으로 고객들의 만족도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총 177개 항목으로 만족도를 조사해 100대 당 발생한 문제·불만 건수를 집계한다. 그 점수가 낮을수록 높은 품질만족도를 의미한다. 이 조사에서 랜드로버는 220점을 받아 조사대상 32개 브랜드 중 32위를 기록했다. 1대당 2.2건의 문제나 불량이 발생했다는 의미다. 랜드로버와 같은 회사의 브랜드인 재규어 역시 186점을 받아 30위에 그쳤다.

3개월 동안 판매된 신차 구매자의 만족도를 조사하는 JD파워의 신차품질조사(IQS) 결과 역시 비슷하다. 지난해 6월 발표된 신차 품질조사 결과에서 랜드로버는 123점을 받아 32개 브랜드 중 31위를 기록했다. 32위는 재규어(130점)다.

서비스센터 37개로 늘린다더니 29개 그쳐

랜드로버 소유자들은 출고된 차의 잦은 고장에 더해 서비스에 대한 불만도 토로한다. 전문가들은 랜드로버의 판매가 짧은 기간 동안 빠른 속도로 늘었지만, 서비스에 대한 투자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고객들의 불만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호근 교수는 “랜드로버가 급격히 판매량을 늘리면서 운행되는 차가 늘어난 반면 서비스센터의 증설은 늦어졌다”며 “잔고장이 많은데 서비스센터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부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브랜드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의 서비스 투자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백정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대표이사는 품질 및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는 점을 의식해 지난해 1월 ‘서비스 네트워크 확충 및 품질 강화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해당 계획에서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는 당시 27개이던 서비스센터를 2019년 말까지 37개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의 서비스센터는 29개에 그친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관계자는 “2019년 경기 침체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신규 서비스센터 개소가 연기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올해 서비스센터 확충 계획을 보면 단순한 연기로 보기 어렵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관계자는 “올해 3개의 신규 서비스센터 오픈을 준비하고 있고, 기존 2개의 서비스센터는 규모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말까지 37개를 확충하겠다던 계획이 2020년 말까지 32개로 바뀐 셈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는 올해 들어 벌어진 일이다.

서비스센터를 만드는 것은 딜러사의 몫이다. 하지만 판매량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딜러사가 적극적으로 서비스센터 투자에 나설 리는 만무하다. 국내 한 수입차 딜러사 관계자는 “랜드로버의 경우 1년 사이 판매량이 급감했고 앞으로도 판매량이 회복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며 “수입사가 딜러에게 부여하는 판매 목표도 지난해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설정돼있다”고 말했다.

본사가 모든 이익을 가져가는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의 구조적 문제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는 발생하는 이익을 모두 본사에 배당한다. 3월 결산법인인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의 최근 감사보고서(2018년 4월~2019년 3월)를 살펴보면 133억5697만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둬 133억5630만원을 영국 본사에 배당했다.

고배당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배당을 위해 필요한 비용마저 절감한다면 국내에서 판매 확대를 도모하긴 어렵다. 실제 2018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늘었지만 이 회사가 딜러사에 2018년 4월~2019년 3월 지급한 판매촉진비는 약 119억원으로 직전회계년도(약 137억원) 대비 오히려 줄었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랜드로버는 본사의 경영사정이 악화하다보니 조금이라도 더 비용을 절감하는 데 집중하는 듯 하다”며 “수입사 사정이 이렇다보니 딜러사가 서비스인프라 확대를 추진할 리는 만무하다”고 말했다.

경쟁모델 늘면서 ‘고가 전략’이 자충수로


▎레인지로버 벨라 / 사진:재규어 랜드로버
랜드로버의 판매 저조 이유는 제품 자체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랜드로버의 반짝 인기는 ‘SUV 특화 브랜드’가 제공하는 다양한 라인업의 SUV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다른 브랜드들이 최근 몇 년 사이 앞다퉈 SUV 라인업을 강화해 이런 효과가 희석됐다는 분석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자동차학과)는 “랜드로버는 오프로드 SUV 분야에서 독보적인 브랜드 가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의 신차들은 이런 측면에서 혁신적이지 못하고 다소 개성이 흐려진 측면이 있다”며 “재규어랜드로버 영국 본사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랜드로버가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SUV 라인업은 6종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정도의 SUV 라인업을 가진 브랜드는 없었다. 하지만 벤츠와 BMW는 물론 지프, 볼보 등이 한국 시장에서 SUV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특히 볼보와 지프는 지난해 1만대 판매를 돌파하는 등 가장 큰 성장률을 보이는 브랜드로 주목받는다. 현대차도 2018년 팰리세이드와 올 초 제네시스 GV80 등 라인업을 더하며 경쟁자로 가세했다.

랜드로버의 무리한 고가트림 위주의 전략도 구매 유인을 줄이는 요인이다. 랜드로버코리아가 국내에 수입하는 차는 고가 트림 위주다. 이 때문에 고객들의 선택지는 좁다. 랜드로버 브랜드의 플래그십으로 불리는 레인지로버의 경우 3리터 디젤 기준 권장소비자가격이 미국에선 9만1700달러(약 1억1000만원)부터 시작한다. 영국에선 8만4105파운드(약 1억2600만원)이다. 이에 반해 한국에선 가장 저렴한 모델이 1억8000만원부터다.

이에 대해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측은 “생산공장이 영국을 포함한 유럽 지역에 위치해 재고 판매를 할 수밖에 없어서 국내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옵션들을 탑재해 신차를 출시한다”며 “개별 주문 방식도 제공하고 있으나, 주문 후 차량 인도까지 최소 6개월 이상의 대기 시간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필수 교수는 “랜드로버의 브랜드 가치는 결국 충성고객에 있다”며 “랜드로버코리아로선 충성고객을 우대하는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다양한 선택권을 부여해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30호 (202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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