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 불만’ 꼬리표에 판매 급감
판매저조는 같은 회사 브랜드인 재규어도 마찬가지다. 재규어는 2017년 연간 판매량이 4125대까지 올랐으나 판매 감소세가 가파르다. 지난해 판매량은 2484대에 그쳤으며 올해 1~3월에는 225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월 평균 판매량이 75대 수준으로, 판매량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연간 1000대 판매에도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자동차업계에선 재규어랜드로버에 대한 ‘품질 논란’을 판매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교수(자동차학부)는 “일본차 브랜드의 판매 감소는 무역 갈등으로 인한 불매운동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기인한 측면이 크지만, 랜드로버는 ‘품질’에 대한 불만족이 판매 감소를 이끈 것으로 보인다”며 “브랜드의 매력도를 보고 비싼 가격에 차를 산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만 여론이 커지면서 급격한 판매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랜드로버의 품질에 대해서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 2018년 가수 출신인 황현민씨와의 분쟁이 화제가 되며 표면에 드러났다. 황씨가 리스한 2016년식 랜드로버 디스커버리4가 6개월 사이 3번 멈춰서는 등 중대한 결함이 반복됐고, 결함에 대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황씨는 딜러사 직원에게 폭언을 했다. 사건 초기 ‘전직 연예인의 갑질’로 보도됐지만, 랜드로버의 품질과 고객대응의 문제로 번졌다. 랜드로버의 품질과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많던 소비자들의 질타가 쇄도한 것.현재 황씨는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딜러사 천일오토모빌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 중이다. 황씨의 소송을 대리하는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원고는 자동차의 결함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고 이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요구했는데, 피고는 허위·왜곡 보도를 사주해 연예인인 원고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켰다”고 주장했다.
랜드로버의 품질에 대한 불만족은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공신력 있는 시장조사 매체 미국 제이디파워(JD Power)가 지난 2월 발표한 ‘2020 내구품질조사(Vehicle Dependability Study, VDS)’에서도 랜드로버는 꼴찌를 기록했다.제이디파워의 내구품질조사는 조사 당시 기준 3년 전 미국에서 판매된 차량을 대상으로 고객들의 만족도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총 177개 항목으로 만족도를 조사해 100대 당 발생한 문제·불만 건수를 집계한다. 그 점수가 낮을수록 높은 품질만족도를 의미한다. 이 조사에서 랜드로버는 220점을 받아 조사대상 32개 브랜드 중 32위를 기록했다. 1대당 2.2건의 문제나 불량이 발생했다는 의미다. 랜드로버와 같은 회사의 브랜드인 재규어 역시 186점을 받아 30위에 그쳤다.3개월 동안 판매된 신차 구매자의 만족도를 조사하는 JD파워의 신차품질조사(IQS) 결과 역시 비슷하다. 지난해 6월 발표된 신차 품질조사 결과에서 랜드로버는 123점을 받아 32개 브랜드 중 31위를 기록했다. 32위는 재규어(130점)다.
서비스센터 37개로 늘린다더니 29개 그쳐랜드로버 소유자들은 출고된 차의 잦은 고장에 더해 서비스에 대한 불만도 토로한다. 전문가들은 랜드로버의 판매가 짧은 기간 동안 빠른 속도로 늘었지만, 서비스에 대한 투자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고객들의 불만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호근 교수는 “랜드로버가 급격히 판매량을 늘리면서 운행되는 차가 늘어난 반면 서비스센터의 증설은 늦어졌다”며 “잔고장이 많은데 서비스센터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부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브랜드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그럼에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의 서비스 투자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백정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대표이사는 품질 및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는 점을 의식해 지난해 1월 ‘서비스 네트워크 확충 및 품질 강화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해당 계획에서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는 당시 27개이던 서비스센터를 2019년 말까지 37개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의 서비스센터는 29개에 그친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관계자는 “2019년 경기 침체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신규 서비스센터 개소가 연기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올해 서비스센터 확충 계획을 보면 단순한 연기로 보기 어렵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관계자는 “올해 3개의 신규 서비스센터 오픈을 준비하고 있고, 기존 2개의 서비스센터는 규모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말까지 37개를 확충하겠다던 계획이 2020년 말까지 32개로 바뀐 셈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는 올해 들어 벌어진 일이다.서비스센터를 만드는 것은 딜러사의 몫이다. 하지만 판매량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딜러사가 적극적으로 서비스센터 투자에 나설 리는 만무하다. 국내 한 수입차 딜러사 관계자는 “랜드로버의 경우 1년 사이 판매량이 급감했고 앞으로도 판매량이 회복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며 “수입사가 딜러에게 부여하는 판매 목표도 지난해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설정돼있다”고 말했다.본사가 모든 이익을 가져가는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의 구조적 문제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는 발생하는 이익을 모두 본사에 배당한다. 3월 결산법인인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의 최근 감사보고서(2018년 4월~2019년 3월)를 살펴보면 133억5697만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둬 133억5630만원을 영국 본사에 배당했다.고배당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배당을 위해 필요한 비용마저 절감한다면 국내에서 판매 확대를 도모하긴 어렵다. 실제 2018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늘었지만 이 회사가 딜러사에 2018년 4월~2019년 3월 지급한 판매촉진비는 약 119억원으로 직전회계년도(약 137억원) 대비 오히려 줄었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랜드로버는 본사의 경영사정이 악화하다보니 조금이라도 더 비용을 절감하는 데 집중하는 듯 하다”며 “수입사 사정이 이렇다보니 딜러사가 서비스인프라 확대를 추진할 리는 만무하다”고 말했다.
경쟁모델 늘면서 ‘고가 전략’이 자충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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