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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쥐고 난감해진 정몽규 회장] ‘신성장동력’이냐 ‘밑빠진 독’이냐 

 

아시아나 자력 호흡 두 달 예상… 딜레마 빠진 정몽규 회장 선택은

코로나19로 아시아나항공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인수 주체인 HDC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 관련 기자회견에서 “모빌리티 그룹 도약”을 외쳤지만 감염병 사태로 시장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 항공업계에선 아시아나항공 상황을 ‘벼랑 끝’이라 묘사할 정도다. “아시아나항공이 자력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두 달 남짓”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HDC현대산업개발 안팎에선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포기를 놓고 묘한 줄다리기가 이어진다. 미래를 위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계획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과 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안해 인수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에 따라 정몽규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어떤 결단을 내릴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 안팎선 “산은 도움 없으면 포기 가능성 높아”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난해 11월과는 판이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당시 시장에서는 HDC현대산업개발이 탄탄한 자금력을 앞세워 아시아나항공을 정상화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이 많았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실적이 예상보다 좋지 않았고, 최근 코로나19 사태마저 겹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손실은 4437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전 세계 하늘길도 막혔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3월 넷째주 국제선 여객은 전년 동기 대비 95.5% 급감했다. 3월 29일부터 4월 4일까지 김포국제공항의 국제선 이용객(환승객 포함)은 단 한명도 없었다.

항공업계에서 항공 산업은 ‘현금 인출기’로 불릴 정도로 유동성이 중요한 산업이다. 매달 항공기 운항으로 확보한 수익으로 항공기 임차 비용 등 수천억원에 달하는 고정비를 충당해야 하는 구조다. 결국 현금이 돌지 않으면 매달 빚 독촉에 시달리는 산업이라는 얘기다. 코로나19로 하늘 길이 막혀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면, 당장 존폐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 지원 없이는 전 세계 항공사 90%가 파산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항공업계는 아시아나항공이 자력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두 달 남짓으로 본다. 이미 아시아나항공은 3000억원의 단기 차입금 증가를 결정했다고 4월 7일 공시했다. 차입금 상환 및 운영 자금 목적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번 차입금 증가 결정으로 산업은행이 지난해 지원한 1조6000억원을 모두 소진하게 됐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의 자금 사정을 고려하면 한 달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산업은행의 지원이 없다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두 달 남짓”이라고 말했다.

HDC현대산업개발 주변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포기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주장하는 쪽은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항공 시장이 빠르게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그룹 성장 동력을 위해 인수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인수를 포기하자는 쪽에서는 “주택 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와중에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다가 자칫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얘기한다.

재계에서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이미 산은과 아시아나항공 인수 조건 변경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에 빌려준 차입금 상환 연기를 HDC현대산업개발이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HDC현대산업개발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HDC현대산업개발과 산은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조건을 놓고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산은 측이 HDC현대산업개발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자칫 특혜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조건 변경이 어려울 경우 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HDC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서 지난해 체결한 조건으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항공 산업을 위한 정부 지원이 없고 산은도 인수 조건을 변경하지 않을 경우, 인수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진단했다.

‘신규사업이 본사업 흔들까’ 우려도

현재 HDC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도 포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한 것은 주택 시장 불황과 불확실성에 대비하려는 전략이었다. 항공산업 진출로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호텔·면세점 등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다는 계산이었다.

재계 안팎에서는 정몽규 회장의 무(無)차입 경영 스타일을 감안하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사활을 걸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정 회장은 대규모 투자보다는 안정적 재무 관리로 그동안 무차입 경영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런 그가 2조5000억원의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국적 2위 항공사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룹의 미래를 위한 과감한 결단이었던 셈이다. HDC현대산업개발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정몽규 회장은 평소 세심한 재무 관리를 통해 안정적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며 “이제껏 무차입 기조를 깬 적이 없던 그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를 추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활을 걸었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쉽게 포기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HDC현대산업개발이 현재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무리하게 밀어붙이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코로나19로 촉발된 항공업계 위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시아나항공 정상화를 위해 돈을 쏟아 붓다가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업계의 올해 장사는 사실상 끝났고, 내년에 시장 상황이 회복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며 “HDC현대산업개발이 정부 지원 없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다면, 언제까지 돈을 쏟아 부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대해 HDC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해 구체적인 답변을 하기 어렵다”며 “절차대로 인수가 추진되고 있다”고 했다.

-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1530호 (202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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