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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 두기’와 공존지수 

 

어느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된다. 그러나 그들은 곧 자신들의 가시가 동료들을 서로 찌르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너무나 아파 곧 흩어지지만, 추위를 견딜 수 없어 다시 모여들었다. 가시가 서로를 찌르면 흩어졌다가 또 모이고 흩어지고를 반복하다 보니 마침내 그들은 상대방의 가시에 찔리지 않을 적당한 거리를 알아낸다.

고슴도치들은 추위를 견디려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의 가시에 찔리고, 그렇다고 떨어져 있으면 추워지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처럼 가까이 다가갈 수도 그렇다고 떨어질 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을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최적의 거리(Optimum distance)’를 찾아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많은 피를 흘리고 고통을 참아냈을 터이다.

이처럼 자신의 가시가 상대에게 상처를 내고, 상대의 가시로 인해 내가 상처 입는 것이 무서워 다른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자기를 감추고 상대방과 일정한 거리를 두며 살기 때문에 상처를 입히지도 입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냥 떨어져 사는 게 편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알게 되겠지. 어른이 된다는 건 가까워지든가 멀어지든가 하는 것을 반복해서, 서로 그다지 상처 입지 않고 사는 거리를 찾아낸다는 사실을….”

1995년 TV도쿄에서 방영된 안노히데아키(庵野秀明) 감독의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에 나오는 대사다.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에서 따온 것이란다. 프로이트의 ‘집단심리학과 에고의 분석(Group Psychology and the Analysis of the Ego)’에도 나온다.

공존지수(Network Quotient·NQ)는 곧 행복지수

언제부터인가 ‘공존지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공존 지수(Network Quotient·NQ), 즉 네트워크지수는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얼마나 잘 운영할 수 있는가 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인터넷 등을 기반으로 한 수평적 네트워크 사회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공존지수가 높을수록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쉽고, 소통으로 얻은 것을 자원으로 삼아 더 성공하기 쉽다는 개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존지수는 내가 속한 집단은 잘 되고 다른 집단은 소외시킨다는 ‘패거리’ 개념이 아니라 서로 잘 살도록 도와야 한다는 이타적 개념에 가깝다.

공존지수가 높아야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타인과의 이러한 의사소통 능력이 개인의 성공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나 봉사활동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인맥지수 또는 행복지수라고도 부르는데, 1970년대 부탄(Bhutan) 왕국에서 만들어낸 국민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성장을 대신하는 새로운 후생지표 가운데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행복지수다. 학자들 간에 다소 이견이 있긴 하나, 행복지수라는 참신한 아이디어의 모델은 부탄 정부이다. 부탄은 히말라야 산맥 동쪽에서 티베트 인도와 접한 나라로,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 싸여진 인구가 100만 명도 안 되는 왕국이다.

1972년 통치자였던 왕축(Wangchuck) 전 국왕은 국민이 물질적 풍요와 전통적 가치를 보존하는 국가에서 살 수 있는 경제를 국정 목표로 설정했다. 그는 이러한 후생지표를 ‘국민총행복’이라고 명명하고, 부탄왕국은 국민총생산 편향에서 벗어나 국민 행복을 추구할 것을 역설했다. 실제로 왕축 국왕은 “국민총행복지수가 국내총생산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4월 13일 체링(Tshering) 현 부탄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2016년 7월 히말라야 트래킹의 추억을 떠올리며 “부탄 정부가 국민소득(GNP) 대신에 국민행복지수를 지표 삼아 사람 중심의 국정운영을 하는 것에 감명을 많이 받아 현재 한국의 국정운영에도 참고하고 있다”고 소개한 바 있다.

지금 전 세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을 줄이자는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람들이 서로 만났을 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에서 사람들이 접촉하는 물리적 기회를 줄여보자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의 사회학적인 의미는 사회 안의 집단 구성원이나 집단 간에 존재하는 정서적·문화적 거리를 의미하지만, 집단 구성원 사이의 물리적 거리로 그 의미가 한정된다.

기업은 물론 학교와 종교단체 등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의 접촉을 원천적으로 줄임으로써 가능한 예방법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권장하고 있는 것이 재택근무와 온라인 강의, 종교집회 자제 등이다. 호흡기 질환은 거리 두기가 마스크 착용이나 손 씻기보다 더 근본적인 예방법으로 평가되고 있어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접촉할 기회 자체를 줄이자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역사는 꽤 오래다. 1918년에 스페인 독감이 지구촌으로 번지자 미국 교회가 예배모임을 중단하여 사람 간의 접촉을 삼가는 운동을 한 것이 사회적 거리 두기의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백신도 없고 치료방법도 없을 때, 유일하게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예방법이었을 것이다. 이는 현대사회에서도 가장 확실한 전염병 확산방지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코로나19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으로 2020년 3월 6일 정부에서 권장, 전 사회적 운동으로 시행되었으며,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잠시 멈춤’ 등의 캠페인으로 퍼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 속에서도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공존지수를 유지해야 그 인맥지수가 행복지수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볼품도 없고 온몸에 가시 같은 털이 돋은, 그래서 ‘최적의 거리’를 두고 사는 고슴도치의 외모에서 연유한 속담이 많다. 자식은 어버이 눈에 모두 잘나 보인다는 뜻으로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한다’는 말이 쓰인다. 남에게 진 빚이 많을 때 ‘고슴도치 외 걸머지듯’이라고 하고, 사람에게는 누구나 친구가 있다는 말로는 ‘고슴도치도 살 동무가 있다’라고 한다.

“현대인들은 북풍한설 몰아치는 얼어붙은 동토에 버려진 한 마리의 가시 돋친 고슴도치가 되어 버렸다”는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의 말이 ‘사회적 거리 두기’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메아리친다.

- 정영수 칼럼니스트(전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1532호 (20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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