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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국 핀테크 원년 될까] ‘안정-혁신’ ‘집중-분산’ ‘보호-투명’, 고차원 방정식의 딜레마 

 

통제 꿈꾸는 당국, 수익 난망 금융권, 신뢰 못 주는 IT의 ‘동상이몽’... 정부 딜레마 뚫고 주도권, 예산 2배 늘리고 규제 풀기로 ‘강공’

▎핀테크는 앞으로 금융 산업에 일대 전환을 불러 현금 없는 사회를 가속화 할 것으로 보인다. / 사진:픽사베이
세계 금융의 허브는 영국이다. 전 세계에 식민지를 개척해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지난 400년간 세계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패권을 미국에 넘겨줬지만. 영국이 금융 허브로 발돋움한 것은 17세기 왕실이 전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대규모 채권을 발행하면서다. 왕실·상인들 간에 자금조달 체계가 자리 잡았고, 금융은 시스템화한 산업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세기 교역 증가와 금본위제 도입 등으로 영국 파운드화는 글로벌 기축통화로 올라섰다. 당시 많은 나라가 영국의 선진적 금융시스템을 배웠고, 런던은 자연스레 전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됐다. 금융은 패권의 상징이며, 돈·사람을 움직이는 일종의 시스템인 것이다.

금융 산업에 변화의 물결이 몰아치고 있다. 금융을 만난 정보기술(IT)이 지급·결제는 물론 대출·투자·보험 등 모든 분야의 이용 방식과 산업 구조의 틀을 바꾸고 있다. 이른바 ‘핀테크(Fintech)’라 불리는 금융산업의 새로운 조류다.

핀테크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손쉽고 저렴한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정부도 IT 기술에 기반을 둔 금융서비스 및 혁신적 비금융기업이 신기술을 활용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핀테크의 정의를 명시하고 있다. 국가적으로는 자본·인재를 끌어들여 대외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선도국가가 아니다. 어니스트영(EY)에 따르면 한국의 핀테크 도입률은 2019년 기준 67%에 불과하다. 세계 평균 64%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2017년 32%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비약적 발전이지만, IT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고려하면 아직 초라한 수준이다. 한국의 기존 금융시스템은 안정됐고, 이미 깊숙이 자리 잡아 전환하기 어렵다. 핀테크를 둘러싸고 정책당국·금융회사·IT기업 간에 이견이 팽팽하고 도입 속도가 더딘 이유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2020년을 핀테크 도입의 원년으로 삼고, 본격적으로 핀테크 산업 육성에 나섰다. 정부와 금융권은 4월부터 핀테크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핀테크 혁신펀드를 조성한다. 2023년까지 총 3000억원을 조성하고, 필요에 따라 2025년까지 규모를 5000억원으로 늘릴 방침이다. 올해에만 855억원을 집행한다. 이 펀드는 은행과 금융 유관기관이 참여해 핀테크 기업의 창업 초기 자금과 스케일업·해외 진출 등에 투자한다. 정부는 또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100개로 늘리는 한편 인수합병(M&A) 활성화, 기술특례상장독려 등을 통해 국내 핀테크 기업들의 스케일업을 도울 계획이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기획단장은 지난해 12월 ‘2019 핀테크의 밤’에 참석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금융혁신을 가속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도입률 중국·인도에 20%포인트 뒤진 67%


정부가 이처럼 핀테크 대응에 바삐 나선 이유는 금융산업의 세계적 변화가 빨라지고 있어서다. 전 세계적 스마트폰 보급과 정보기술 발달로 금융시스템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중국·인도 등 신흥국의 핀테크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결여는 필요를 낳고 필요는 혁신으로 이어진다. 동남아시아 신흥국은 은행 계좌를 보유한 사람의 비중이 30% 안팎으로 낮다.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국가 자원을 분배하거나 경제성장을 위한 자금 지원이 어려운 실정이다. 저소득층에 무담보 신용대출을 하는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 등 마이크로 파이낸스가 등장했지만, 지역 사회 전체로 전파되지는 못했다.

이런 가운데 스마트폰의 등장, 보급은 개인인증 등 금융의 자격증명 및 보안 문제를 해소했다.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격오지 거주자들도 은행·보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지급·결제 방식도 신용카드를 건너뛰고 페이 서비스로 이동하며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보다 현금 없는 사회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핀테크 도입률은 87%(2019년 기준)에 달한다. 이에 비해 금융선진국으로 불렸던 일본은 34%에 그친다.

세계적으로 핀테크 도입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이 흐름을 쫓지 않으면 금융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에 한국도 정부와 금융회사, IT 기업들이 뭉쳐 2017년께부터 핀테크 도입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당초 정부의 입장은 조심스러웠다. IT는 기존 금융업의 가치사슬을 와해시킬 수 있는 파괴자의 속성을 갖고 있어서다. 예컨대 크라우드펀딩·P2P 대출이 활성화되면, 극단적으로 은행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기존에는 은행이 고객으로부터 받은 예금을 자금이 필요한 곳에 빌려주는 자금중개자 역할을 했는데, 앞으로는 예금자와 대출자가 직접 온라인 공간에서 자금을 거래할 수 있어서다.

중개기관은 부동산처럼 양측 계약을 도와주는 한편, 대출자의 신용 및 사업성 평가를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e커머스와 지급·결제 영역도 마찬가지다. 네이버·카카오 등 온라인 플랫폼이 커지면, 각사의 페이 서비스가 독자적 화폐 생태계를 갖출 수도 있다.

이런 급진적 변화는 기존 금융시스템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은 관치산업이다. 관치는 금융회사의 능동적 판단을 가로막고 책임회피 수단으로 악용되지만, 금융시스템 보호 측면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금융회사들의 리스크 관리와 무분별한 대출을 막고, 통화량 관리 등을 통한 경제 정책의 체계적 운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핀테크 도입에 따른 시스템의 불확실성 고조에 불안감을 갖고 있다. 특히 산업을 관리·통제해야 하는 금융당국으로서는 소수 금융회사가 모든 금융거래를 취급하는 현재 산업구조가 쉽고 용이하다. 그러나 핀테크로 인해 불특정 다수의 자금 대여자와 차입자가 등장하면 통제가 어렵고 관리비용이 증가한다. 금융당국이 핀테크 산업 활성화에 장고한 까닭이기도 하다.

P2P·크라우드펀드 잇단 사고로 신뢰 추락


금융당국의 이런 불안을 갖게 된 것은 IT기업들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P2P 대출 업체들의 부실한 여신관리가 대표적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월 18일 기준 140개 P2P 기업의 대출 연체율은 15.8%에 달한다. 대출 원금이 1000억원이라면 이 중 158억원의 대출이 이자를 못 갚았다는 뜻이다. 연체율이 100%에 달하는 기업도 8개나 된다. 이에 금융당국은 ‘소비자경보(주의단계)’를 발령했다.

P2P 기업들이 취급하는 상품은 대체로 부동산 리파이낸싱 등 비우량 자산을 기초자산으로 삼는다. 한국P2P금융협회에 따르면 부동산 대출상품만 취급하는 16개 P2P 회사의 평균 연체율은 20.9%에 달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저축은행들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체율이 14% 안팎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높은 편이다.

연체율이 높은 것뿐만 아니라 실제 투자 실패 사례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국내 P2P 1위 업체 테라펀딩의 경우 3월 세종시 근린생활시설 신축사업에 투자하는 대출상품 30억원이 모두 원금 손실을 일으키기도 했다. 2위 업체 어니스트펀드도 중소기업 매출채권 상품과 김홍도 얼라이브 미디어아트 전시채권 부실 등으로 기록적인 손실을 일으킨 바 있다.

P2P 업체들은 관리 능력이 부족했음에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경기 여건의 불확실성을 실패 원인으로 꼽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 업체들 역시 투자 상품들이 손실을 일으켜도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보다 책임회피에 급급하다.

금융회사는 엄격한 위험 관리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고, 고객 자산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진다. 이에 비해 크라우드·P2P 등 신생 핀테크 기업은 서비스의 플랫폼을 지향할 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지난 3월에는 5개 이상의 P2P 업체들이 연 24%의 법정 최고금리를 초과해 이자를 받은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들이 차주로부터 받은 플랫폼 수수료에 이자를 합하면서 법정 최고 이자율을 넘긴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연 24%를 초과한 수수료는 어떤 명칭이든 모두 이자로 봐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핀테크 회사를 둘러싼 신뢰 문제가 계속해서 터지는 가운데 오래 8월 27일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온투법)’이 시행된다. 온투법 시행으로 P2P 금융이 제도권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뱅킹 온라인 플랫폼에서 개인 간 거래에서 발생한 사건·사고와 관련해 IT기업들의 책임규명이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P2P 상품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봤다는 한 투자자는 “사실상 P2P 사업자는 대출 부실의 리스크를 거의 지지 않으며, 수수료가 주된 수익이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상품을 많이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며 “상품의 부실화를 막고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화된 시스템과 P2P 회사에 책임을 물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핀테크 기업의 45.1%(2018년 기준)가 자본금 1억원 이상 10억원 미만이다. 1억원 미만도 20.2%에 달한다. 고객이 믿고 돈을 맡기기에는 규모와 역량이 부족한 셈이다.

금융권은 정중동, 경쟁력 유지 방안 모색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올해는 핀테크가 결실을 보는 해라며 규제 혁신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이런 혼란 속에서 기존 금융회사들은 수동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핀테크를 도입하면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해서다. 핀테크는 기존 은행의 수익 모델을 전면 부정하는 분산과 개인 간 거래를 지향한다.

예컨대 해외송금의 경우 고객이 은행에 송금 요청을 하면, 은행이 외환 중개은행에 지급을 요청하고, 외환 중개은행은 해외의 송금 받을 은행에 입금을 통지하고, 해외 은행은 이 돈을 수취인에게 전달하는 4단계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송금수수료·전신료·중개수수료·수취료 등 네 종류의 수수료가 발생하며, 은행의 수익으로 귀속된다. 그런데 고객이 해외의 수취인에게 1~2단계 만에 송금할 수 있는 핀테크 기술을 적용하면 은행은 해외송금 수수료를 얻지 못하게 된다.

해외송금만이 아니다. 금융지주사가 자사의 신용카드 서비스를 포기하고, 페이를 도입하면 연 수천억 원에 달하는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잃게 된다. 페이 서비스는 높은 가맹점 수수료를 요구하지도, 회원들에게 연회비를 받지도 않는다. IT 플랫폼 기업들은 당장 e커머스 등의 자기 생태계의 확장을 위해 페이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이런 핀테크의 거래 간소화와 투명성 향상, 비용 절감 등의 방향은 금융회사의 수익구조와 대치된다. 금융회사들이 그간 핀테크 열풍에 눈 감아왔던 이유다. 이 때문에 금융회사들은 핀테크의 도입 필요성은 인지하면서도, 최대한 그 시기가 지연되길 바랐다. 현재는 금융당국의 교통정리에 몸을 맡긴 상태다. 금융회사는 확고한 오너가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현재는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정책당국이 핀테크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 금융위는 성장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기존 금융회사와 묶어 시스템화하는 방식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금융위, 스몰 라이선스 등 진입장벽 낮춰 혁신


그 첫번째 무대는 규제 샌드박스다. 정부는 지난해 1월 17일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227건의 규제 샌드박스를 승인했다. 이 가운데 금융혁신 분야가 102건으로 가장 많다. 샌드박스 안에서 새로운 가치사슬을 창출할 수 있는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가진 회사를 실제 시장에 내놔 금융 혁신을 꾀하고 있다.

현재 샌드박스 안에는 KB금융그룹·신한금융지주·하나금융지주 등 국내 주요 금융지주 산하 기업들이 핀테크 기업들과 손잡고 인공지능(AI)·보안·신용분석·P2P 등 분야 서비스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올 8월 신용정보법을 포함한 데이터3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혁신 금융서비스들이 규제 특례 없이 서비스를 개시할 수 있게 된다.

정부가 4월 가동을 시작한 핀테크 혁신 펀드는 스타트업이 수익화 모델을 본격적으로 구현하기 전까지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주는 측면도 강하다. 더불어 스몰 라이센스 제도를 통해 복잡한 인허가 절차 없이 핀테크 기업이 금융업이 쉽게 뛰어들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영국의 금융시장 시장분석가 크리스 스키너는 그의 책 [디지털뱅크, 은행의 종말을 고하다]에서 은행과 핀테크 산업의 본격적 협업이 이뤄지는 것을 핀테크 발전 단계의 3기 ‘파트너십’으로 정의했다. 현재 한국도 파트너십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며, 금융소비자의 생활 패턴도 온라인과 모바일로 이동할 전망이다.

물론 불만도 나온다. 샌드박스 제도 역시 관치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선정되지 못한 핀테크 기업들은 독자 생존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 로보어드바이저 개발사 대표는 “규제 샌드박스 기업 선정에 있어 기술력과 비전보다도 금융위 관계자들과의 관계가 많이 작용한다”며 “해외 핀테크 기업의 국내 진출 등에 대비한 전략과 국내 기업의 해외시장 진출 방안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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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2호 (20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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