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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영의 팝콘 심리학] 일관성은 ‘양날의 검’ 

 

잘못된 선택 고집하는 원인되기도… ‘소통 본능’ 살려 균형 유지해야

▎사진:© gettyimagesbank
‘한국전쟁’은 동아시아의 한 작은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이었지만, 세계사적으로도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cold war)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전쟁은 심리학사에서도 중요한데, 서방세계 심리학자들에게 ‘세뇌’를 알리게 된 계기였기 때문이다. 중공군에게 포로가 된 미군 중 일부가 몇 개월 후에 대남방송에 출연해서는 자본주의를 비난하고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중공군의 사기가 훌륭하고 포로에 대한 대우도 좋다고 칭찬하는 등 연합국 군인들의 사기를 끌어내릴 말만 골라서 해대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연합군의 조사 결과, 이적방송에 출연한 그 군인들은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도 공산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포로가 되기 전까지는 조국에 충성하는 평범한 미국 군인들이었다. 이 덕분에 중공군의 세뇌 기법의 가공할 위력이 서방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영어로 세뇌를 ‘brainwashing’이라고 하는데, 이건 원래 중공군이 사용하던 ‘뇌를 세척하다’는 뜻의 한자어 세뇌(洗腦)를 그대로 영어로 옮긴 것이다. 이 사건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전쟁이 끝났고, 고국에 돌아온 미군포로들을 통해서 중공군이 저지른 세뇌 작업의 실상이 밝혀졌다. 최면술에서 시작해 뇌수술까지 온갖 기괴하고 잔인무도한 기술의 결과물이라고 생각되었던 세뇌의 실상은 그러나 허탈할 정도로 단순했다. 중공군이 ‘유화정책’이라고 불렀던 이 전략의 골자는 아주 작은 요청부터 시작해서 점차 더 크고 심각한 요청을 한다는 것 뿐 이었다. 로버트 치알디니의 책 [설득의 심리학]에 기술된 이 전략을 요약해보자.

중공군은 처음에는 미군 포로들에게 공산주의의 장점과 자본주의의 단점에 대한 간단한 글을 써달라고 요청을 했다. 큰 보상도 없었다. 단지 글을 쓰는 동안 노역을 하지 않는 정도였다.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에도 허점이 있고 공산주의도 나름 장점이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말할 수 있지 않은가. 따라서 몇 명이 요청에 응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일단 글을 쓰고 나면, 그 글을 남들 앞에서 발표해달라는 요청이 따른다. 이번 보상은 담배 한 갑 정도. 큰 보상을 받지 않으니까 돈에 팔려 국가를 배신한다는 느낌도 없다. 게다가 어차피 자기가 쓴 글이니 발표 못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 정말 좋은 글이라며 라디오방송에서도 한번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만약 처음부터 방송 출연을 요구했다면 대부분 거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의 절차를 차곡차곡 밟아온 포로들은 거부하지 않는다. 일단 한번 공식적으로 방송에 나간 포로는 더 심한 요구에도 응한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도 자신이 공산주의에 호의적이며 자본주의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고 믿게 된다. 이렇게 사소한 과정이 축적된 결과, 마침내 미국을 경악하게 만든 ‘세뇌된 병사’가 탄생한 것이었다.

중공군의 세뇌기술은 공산혁명 이후 중국 국민들의 사상을 개조하려는 범국가적인 작업을 통해서 갈고 닦여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기술은 자본주의자들의 최전선인 광고와 마케팅 분야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 세일즈의 기본 전략 중 하나인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이 그것이다. 일단 어떻게든 집 문간에 발부터 걸쳐놓으라, 발이 들어간 다음에 머리가 들어가면 된다는 것이 이 기법의 요체다.

이 기법은 지금도 여전히 잘 활용된다. 예를 들어, 온라인 매장에서 처음 주문하는 고객에게 거의 공짜와 다름없는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주 값싼 물건이라도 한번 주문하고 난 고객은 조금 더 비싼 물건을 주문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종종 벌어지는 제품 사용기 공모전도 그렇다. 이런 행사에 참여한 소비자들은 처음에는 건성으로 제품을 칭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칭찬을 하려면 어떻게든 제품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야 하고, 실제로 남들이 보는 공간에서 자기 이름을 걸고 칭찬도 하고 나면 실제로 그 제품이 자기가 칭찬한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나중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제품을 남들에게 추천할 지도 모른다. 중공군의 정치 발표회와 마찬가지 기능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도 단순한 기법에 말려드는 것일까? 치알디니는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본능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사실 일관성은 좋은 것이다. 초지일관, 예측가능한 행동을 한다는 뜻이 아닌가. 단골 가게에 계속 가고, 약속을 했으면 지키고, 자신의 결심을 고수하는 것은 모두 일관성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그 사람이 일관적으로 행동할 것임을 믿는 것이다. 신뢰가 없으면 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다는 점에서 결국 일관성의 본능은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접착제와 같다.

하지만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던 미군들처럼, 가끔은 이 본능이 우리를 함정에 빠트려 아주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구매한 불필요한 물건들, 답할 필요 없었던 어리석은 질문들,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가치가 없었던 수많은 활동들 중에는 이 일관성의 법칙 탓이 꽤 많다.

멀쩡한 조직이 벌이는 황당한 ‘삽질’의 원인

일관성이 양날의 검이 되는 건 조직이나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직에서는 일관성이 단지 본능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한 다음에는 대개 그에 상응하는 투자가 이루어진다. 뒤늦게 그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더라도 포기하기 쉽지 않다. 매몰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처음 했던 선택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멀쩡한 조직이 벌이는 황당한 ‘삽질’들이 그렇게 탄생한다. 허망한 목표를 위해 다른 데 써야할 귀한 자원을 퍼붓는 거다. 물론 삽질을 의도하는 조직은 없다. 하지만 알고 피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애초에 삽질이 아니다. 모든 삽질은 처음에는 작은 착각, 오해, 판단오류에서 시작해서 창대한 대실패로 끝난다. 포기하지 못한 일관성 때문이다.

해답은 소통이다. 개인들도 그렇지 않던가. 남들과 활발히 소통을 하는 사람일수록 상식을 벗어난 주장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들도 실수를 한다. 하지만 진작에 남들 말을 들어가며 자신의 오해나 착각을 수정했을 뿐이다. 덕분에 착각이나 오해가 삽질로 이어지지 않거나 아주 사소한 삽질로 끝난다.

하지만 따돌림을 당하거나 비슷한 오해를 공유하는 이들과만 소통하며 지내는 사람이라면, 애초의 작은 착각은 점차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거대한 삽질로 이어진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모습은 일관성의 본능과 소통의 본능이라는 두 개의 바퀴로 지탱되는 셈이다. 어느 한쪽이 빠지면 줏대 없이 휘둘리거나, 틀린 줄 알면서도 파국을 향해 달려가게 된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1532호 (20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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