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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희의 테크&라이프] 애플과 구글을 손잡게 만든 코로나19 

 

블루투스 기반 감염자 추적 앱 출시… 시민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충돌

코로나19로 세계가 자가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에 들어간 전례 없는 상황에서, 테크업계에도 좀처럼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겼다. 구글과 애플이 손잡고 스마트폰으로 코로나19 감염자를 추적하는 기능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모바일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모든 면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두 회사가 공통 기능을 함께 개발한다는 이례적 결정을 내렸다.

두 회사는 우선 보건당국이 만드는 코로나19 관련 앱이 사용하는 API를 공동 개발한다. API란 외부 프로그램이 컴퓨터 운용체계(OS)나 데이터베이스 등과 통신하는 접점 역할을 한다. 애플 아이폰 OS인 iOS와 구글 모바일 OS인 안드로이드에 함께 쓸 수 있는 API가 있으면 두 번 일할 필요 없이 감염자 추적 앱을 쉽게 만들 수 있다.

이에 더해 블루투스 기반으로 감염자를 추적하는 기능도 함께 준비해 5월 중 내놓는다. 확진자의 스마트폰과 블루투스 신호를 주고받은 적 있는 스마트폰 사용자에게 접촉 사실을 알려 자가격리를 하거나 검사를 받도록 할 수 있다. 두 회사는 모바일 OS 수준에서 이 기능을 포함시킬 계획이다.

30여개 국가에서 시민 추적 기술 활용 중

구글과 애플의 발표에 앞서 영국 보건당국 국민보건서비스(NHS)도 코로나19 감염자 접촉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블루투스 기반 모바일 앱 개발 계획을 밝혔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미 블루투스 신호를 활용해 감염자 접촉 여부를 알려주는 ‘트레이스 투게더’라는 앱을 내놓았다. 앱의 소스코드도 공개해 다른 나라 보건당국도 자유롭게 쓰게 했다.

사실 이런 식의 대규모 사용자 추적은 지금까지 대부분의 서구화된 민주사회에서는 거의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시민의 프라이버시를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국가 감시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처음 돌기 시작했을 때, 국민 감시 기술과 인프라가 있고, 그것을 전면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서구 사회에선 경악했다.

하지만 뚜렷한 치료법이 아직 없는 상태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코로나19를 막기 위해서는 감염자 추적과 진단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다. 코로나19가 우한과 중국을 넘어 유럽과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이들 국가에서도 기류가 달라졌다. 프라이버시 논란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이 스마트폰을 활용한 감염자 추적에 나섰다.

이스라엘에선 정보기관이 코로나19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의 휴대폰 위치정보를 법원 영장 없이 추적할 수 있도록 했다. 독일은 이동통신 사용자 위치정보를 정부의 질병관리 담당기관에 제공한다. 싱가포르와 비슷한 블루투스 기반 추적 앱도 개발 중이다. 벨기에 역시 휴대폰 위치정보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고 있다. 드론을 띄워 사회적 거리두기를 안내하는데, 감시 영상을 찍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정부 기관들은 모바일 광고 기업들의 협조를 얻어 스마트폰 사용자 위치정보 데이터를 제공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500개 도시 주민들의 움직임을 모니터링하는 포털을 만든다는 목표다. 홍콩은 자가격리 대상자에 추적 팔찌를 차게 하며, 대만은 스마트폰 지오펜싱 기술을 사용해 자가격리 중인 사람이 집밖으로 나오면 경고를 보낸다. 대략 30개 이상의 국가가 여러 형태의 시민 추적 기술을 활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지의 바이러스를 막아야 한다는 최우선 과제가 시민의 프라이버시와 충돌하는 상황이다. 방역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한편으로는, 방역 활동이 시민의 생활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형태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정부는 팬데믹 기간 중 일시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겠다고 약속하지만, 과연 유행병이 진정된 후에도 시민 감시 기술을 사용하려는 유혹을 이길 수 있을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9.11 테러 이후 일시적으로 도입된 시민 감시 조치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구글와 애플은 블루투스 추적 기술에서 사용자 프라이버시 침해 요소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마트폰은 사용자 정보를 익명화한 식별 키를 블루투스로 주변에 뿌린다. 이 키는 수시로 바뀌어 사용자 식별이 더 어렵다. 사용자가 코로나19 확진을 받으면, 사용자 동의하에 최근 14일 간의 키를 클라우드에 올리고 이 키를 받은 적 있는 다른 사용자에게 알림이 가는 방식이다. 서로 접촉한 적 있는 키의 정보만 공유되며, 키 해독은 개별 스마트폰에서 이뤄진다.

유럽연합은 최근 코로나19 감염자 추적 앱은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정부 보건당국의허가를 허가를 받아야 하며,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유행병이 진정되면 바로 파기한다 등의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이 같은 모바일 기반 추적 기술의 실효성이다. 블루투스는 특정 사용자와 근접했던 사람을 추리는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한계도 있다.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신 사람과 조깅하며 스쳐 지나간 사람을 구분하지 못 한다. 필요 이상 경고를 남발해 도리어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 앱은 사용자가 동의해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확산이 어렵고, 사용자가 적을수록 접촉자 확인 효과도 떨어진다.(아이폰과 안드로이드 폰의 OS에 기술이 적용되면 이런 문제는 조금이나마 개선될 전망이다.)

기존 가치관과 사회적합의 재검토 필요

이런 추적 기술이 보다 효과를 보려면 사용자의 여러 다른 정보와 결합해야 한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감염자의 휴대폰 위치 정보, 신용카드 결제 정보, CCTV 영상 등을 활용해 동선을 거의 정확하게 재구성한다. 그리고 성별, 나이, 거주지, 방문지 등을 재난문자처럼 뿌린다. 사람들은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며칠 전 어느 동네 모텔을 간 적 있는 n번 환자’가 누구인지 추적한다.

우리나라의 빠르고 효과적인 대처의 배후에는 이 같은 광범위한 시민 감시 기술과 사생활 침해 요소가 큰 몫을 차지하는 것도 현실이다. 정부는 스마트시티 기술을 더해 감염자 파악을 위한 정보 활용을 더욱 빠르게 처리할 방침이다.

추적과 진단이 강력하게 이뤄질수록 방역 효과는 커지지만, 어디까지 국가의 사생활 침입을 허용해야 하는지 세계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세계적 감염병 유행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선 기존의 가치관과 사회적 합의를 재검토할 필요가 커진다.

그러나 이 상황이 우리의 모든 것을 바꿔야할 만큼 영속적 영향을 미칠지, 일시적 혼란으로 끝날지 아직 알지 못 한다. 그래서 프라이버시를 어느 정도의 절대적 권리로 간주해야 하는 지도 합의하기 어렵다. 아마 이 ‘알지 못함’이 백신이나 치료약이 없다는 사실보다 우리를 더 당황하게 만드는 것일 터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1532호 (20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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