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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의 IT 사회학] ‘배민’의 미스 커뮤니케이션 

 

‘힘든 시기’ 기업은 어떻게 소통해야 하나… 소비자와 공감대 형성에 초점 둬야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의장(왼쪽)과 김범준 대표
4월 초 배달앱 배달의민족은 수수료를 5.8% 정률로 개편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월 8만원씩 하는 광고를 10여 개씩 도배해서 노출을 독차지하는 일부의 ‘깃발 꽂기’가 영세 음식점들의 노출을 막는 상황은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개편이라고 주장했는데 오히려 정치권·지방자치단체·공정거래위원회까지 움직이게 했다. 기업으로서는 낭패가 따로 없다. 억울한 일일 것이다.

일방적인 규칙 재정의는 공정거래를 의심케 만들어

스타트업의 본질은 혼돈을 부르는 일에 있다. 혼돈은 다른 누군가에게, 특히 새로 시작하는 이에게 기회의 틈을 벌려 준다. 반지하 주방 하나에서 서너 개의 온라인 배달음식점을 동시에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권리금과 비싼 임대료를 내는 대형 노포와 ‘별점’만으로 승부하는 세상. 분명히 새로운 기회이자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모든 소비자가 스마트폰이라는 요물을 손에서 놓지 않게 된 시대에 신기술을 요리조리 잘 다룰 수 있는 기업은 시장에 혼돈을 불러올 수 있었고, 이 혼돈의 기회를 살리는 이가 생겨났다.

음식점 사장님치고 사거리 대로변에 가게를 내고 싶지 않은 이는 없다. 하지만 소비자가 고개를 폰에 묻고 사는 세상에서라면, 폰 속에서 새로운 상점가를 그리는 일이 가능해진다. 현실에서는 꿈도 못 꿨던 목 좋은 곳이 폰 속 가상 상점가에서는 남아 있을 수 있다. 배달앱은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가상 부동산 디벨로퍼였다. 버추얼 상점가를 만들고 현실의 계급장을 떼고 입점시킨다. 버추얼 상점가를 흥하게 하고 유지하고 운영하고 활성화하는 일은 비록 폰과 클라우드 안에서만 존재하는 허상이라고 하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번 소동은 이 상점가 운영자가 거리의 불합리를 발견하고, 이를 직접 개선하려고 시도했던 사안이었다. 그런데 판단하는 일도 개선을 시도하는 일도 모두 각각의 문제를 품고 있었다. 설령 버추얼(가상)이라고 하더라도 누구는 좋은 자리를 갖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지에 대한 결정을 누가 어떻게 내리는 것인지에 대해 모두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해서다. 도시 개발에서 볼 수 있듯 사람들은 자신의 입지를 쉽게 양보하지도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버추얼 상점가의 정책 변경조차 공공 영역에서나 할 수 있는 공적인 논의라고 생각하는 이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운영측의 고민 끝에 최적의 해법을 찾아냈다고 하더라도 이를 마음대로 적용하는 일이 가능하다는데 놀란 이들도 생긴다. 상점가의 룰을 마음껏 재정의할 수 있다는 뜻이 되고 이는 결국 공정거래상 괜찮은지 생각하게 한다. 이 버추얼 상점가가 소꿉장난이라면 들러 엎건 매치건 아무래도 좋지만, 사실상 전국민이 이 버추얼 상점가와 이와 합병한 상점가에만 몰리고 있다면 이제 그건 바로 버추얼 상점가의 권리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미 손에 쥔 것을 놓기 싫어한다.

재난 시에는 모든 변화가 힘겹다. 하기로 했던 일조차 해내기가 힘들다. 플랫폼 기업은 수시로 변화를 초래하고, 참여자들은 계속 참여하기 위에 그 개선점을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플랫폼들은 개편 시기를 미루고 있다. 코로나 사태 속에 어떤 부담도 주기 싫어서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는 플랫폼 보안을 더 강화하기 위해 올해 안에 앱들이 로그온 수정을 했어야 하나 적용 마감을 내년으로 미뤘다. 플랫폼 기업들은 한시적이나마 유료를 무료로 공개한다거나, 구글처럼 광고 인벤토리를 소기업에게 나눠준다거나, 혹은 트위터처럼 창업자가 사재를 출연한다거나 하는 훈훈한 뉴스 이외에는 홍보도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코로나로 경제가 극도로 위축된 지금은 100% 순도의 득템 메시지가 아니라면 고깝게 들리기 딱 좋다. 베풀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복지부동이 차라리 낫다. 배달의 민족은 이번 변경으로 52.8%(개업 1년 이하이거나 연매출 3억원 이하)가 부담이 줄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라 가정하더라도 무려 47.2%는 부담이 는다는 말로 들린다. 이미 배달앱 수수료를 ‘제2의 임대료’라 부르기 시작하는 이가 있다는 말은, 지금까지 버추얼 상점가에서 자리 잡기 위해 지불했던 금액을 일종의 권리금이라고 여긴다는 뜻이다. 이 권리의 균형이 깨지는 일은 당사자에게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5.8% 수수료라는 수치가 드러나자 누구나 주판알을 굴려본다. 카드 선결제 수수료까지 더해 9% 가까이 된다고? 숫자는 소비자 심리에 강한 기준점을 박는다. “어, 이 음식의 원가률이 얼마인데 수수료가 이 정도지?” 많으면 많고 적으면 적을 수치다. 많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얼마나 버추얼 상점가의 가치를 생각하느냐에 달렸다. 버추얼 상점가 없이도 현실 상점가에서도 장사 잘하던 곳이라면 아까울 것이다.

문제는 이 변경으로 배달의 민족의 수익이 늘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데 있다. 아니라면 이 점을 먼저 명시했어야 한다. 행여 과제해결을 핑계로 수익을 늘리려는 숨은 동기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면 사태가 커진다. 큰 과제의 해결은 일석이조로 할 수 없다.

이용자가 호감 갖고 응원하게 만드는 전제부터 제시를

스타트업에게 무서운 것은 경쟁자만이 아니다. 스타트업의 업의 본질을 회수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도처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혼돈과 교란이 거북한 이들은 늘 있다. 모든 것을 정부에 맡기고 싶은 나머지, 모든 민영화는 악이라는 믿는 이들도 많다. 실제로 이번에 경기도지사뿐만 아니라 여야 후보들 다수가 공공 배달앱 개발을 촉구하고 나섰다.

수수료와 광고료를 내지 않는 공공 배달앱은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버추얼 상점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마도 잘해야 현실의 복제판, 혹은 키오스크 같은 전자 팸플릿일 것이다. 왜냐하면, 잔인할 만큼 반복적인 실험과 도태를 거쳐 스타트업처럼 혼돈을 일으킬 어떠한 동기도 공공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버추얼 상점가 비슷한 것을 만들어도 여기에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까? 만약 그 버추얼 상점가가 소비자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기업이라면 VC만 타격을 입고 망해버리겠지만, 공공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니 망하기도 쉽지 않아 피해는 넓고 얇게 퍼진다. 소비자가 원치 않는다는 것마저 인정하기 쉽지 않아서다. 그리고 그렇게 직접 선수로 참여해버리면 심판으로서의 역할이나 자격에도 지장을 끼치게 된다. 공공은 시장에 문제가 있을 때 마지막 심판이 되어야 하기에 직접 뛰지 말라는 것이지만, 폼나고 재미있어 보이는지 너도나도 필드에서 뛰고 싶어한다.

배달의 민족이 이달 초에 해야 할 말이 있었다면 이런 것이었다. “어려운 시기,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 싶은 일이 있다.” 이것으로 충분했다. 대개의 소비자는 그런 고민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그 고민이란 이 플랫폼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소상공인이 더 득을 보는 일이라고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모든 대화는 전제와 분위기가 중요하다. 그리고 플랫폼은 그 플랫폼에 대한 호감, 응원하고 싶은 마음, 입소문만이 키울 수 있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1531호 (202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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