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확한 상황·역량 판단이 위기 대응 첫걸음세상 모든 게 마찬가지다. 경기에 나선 격투기 선수는 실력이 좋아야 이길 수 있고, 요즘 같은 위기 상황을 맞은 리더 역시 능력이 있어야 거친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있다. 위기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일을 잘해 그 자리에 올랐든, 굵은 동아줄을 잡은 덕분에 그 자리에 앉았든 위기는 그 사람의 진면목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태풍이 튼튼하지 못한 것들을 남김없이 골라내듯 위기 역시 리더의 약점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리더들의 불안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이전 회에서 말했듯 불안은 생존에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본능이지만 임계점을 넘으면 되레 생존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가는 이중적인 특성이 있다. 리더가 불안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휘둘리게 되면 불안은 바이러스처럼 조직 속으로 퍼져 나가 소리 없이 조직을 흔든다. 그렇게 조직의 마음을 흔들어 파국으로 몰고 간다. 세상의 불확실성이 불안을 만들고, 불안이 다시 더 큰 불확실성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을 시작한다. 이런 소용돌이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올 수 없다. 리더들이 자신과 조직의 마음에 스며드는 불안의 실체를 좀 더 깊이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그러면 요즘과 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 리더는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각 집단마다 처한 상황이 천차만별이라 해결책도 그렇겠지만 어느 조직이든 리더가 가져야 할 공통적인 조건들이 몇 가지 있다. 특히 위기 대처에 실패하는 리더들의 특징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 지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런 이들은 대체로 세 가지 특징이 있다.우선 상황 판단에 실패한다. 이 상황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른다. 상황을 모르니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 자신이 하려고 하거나 해야 하는 일이 자신의 역량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른다. 한 마디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고, 해야 하니까, 또는 하라고 하니까 한다. 할 수 없는 일이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 손실을 막대하게 키운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흔드는 불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거나 실패에 지나치게 예민한 상태가 되어, 자신의 간을 콩알만 하게 만들거나 스스로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소심한 마음을 만들어 실패 가능성을 높인다.이런 이들은 대체로 ‘남들보다 더 열심히’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 앞으로 나아간다는 생각이 들고, 마음속 불안 또한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 속 불안은 해소해야 하는 것이지 외면하는 게 아닌데 이렇게 하다 보니 갈수록 자신의 무능과 구성원들의 불만을 키운다. 문제의 핵심을 모르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개선에 집중하기에 바라는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하듯 상황 판단에 실패하는 리더들도 마찬가지다.여기에 기름을 붓는 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고, 불을 지르는 게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거나 불안에 휘둘려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다.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는 건 능력의 부족에서 오는 불안을 지위, 그러니까 ‘내가 위고 너는 내 밑’이라는 상하 개념으로 막으려는 방어심리에서 나온다. 급변하는 상황일수록 리더는 위에 있는 사람이기보다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반대로 하다 보니 이 역시 상황을 악화시킨다.이랬다저랬다 하는 이들은 갈피를 잡지 못해서 그렇게 되는데 이런 이들은 대체로 주변의 성공 사례를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 따라 하기 위해서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역량도 다른데 그걸 공식으로 여기고 무조건 도입하니 성과가 나올 리 없고, 또 다른 공식을 도입하려 하니 자신은 물론 조직도 헤매게 된다. 부모가 예측 불허의 행동을 계속하면 아이들의 정신 구조가 불안정해지듯 조직도 마찬가지다.
상황·원인 단순화해 구성원이 할 일 명확히 제시
|
애매한 상황에도 합리적·구체적으로 이해하도록 유도셋째는 구체성이다. 1964년 달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던 미국 항공우주국(NASA) 내에 달에서 쓸 차량을 만드는 팀이 있었다. 팀은 곧 곤란한 문제에 부딪쳤다. 달 표면 상태를 알아야 그에 맞는 차량을 만들 수 있는데 알 수가 없었다. 의견은 둘로 갈렸다. 수백만 년 동안 수많은 혜성에 부딪쳐서 사막의 모래처럼 부드러운 가루로 되어 있을 것이라는 주장과 날카로운 바위 및 골짜기로 돼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었다. 지금처럼 관측력이 좋지 않았기에 누구도 알 수 없었다.난관에 부딪쳐 오도가도 못 할 때 팀장이 과감하게 결정을 내렸다. 지구 황무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그에 맞게 차량을 제작하자고 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에 팀장은 “누구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 위험하지 않느냐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엔지니어는 명확한 상황이 주어져야 일을 할 수 있다. 합리적인 구체성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줘야 엔지니어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가보니 실제로 그가 추론한 것과 거의 같았다고 한다. 리더라는 자리는 이런 걸 하는 곳이다.몇 년 전 방한한 미국 UCLA대학 앤더슨 경영대학원 리처드 루멜트 교수는 이 사례를 말하며 자신이 바로 이 팀에서 그 상사와 일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어떻게든 갈 수 있게 만들라’라고 하는 건 제대로 된 리더십이 아니다. 어렵고 애매한 상황을 조금 더 명확하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리더십이다. 물론 100%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이 일어났을 때 책임을 지는 것도 리더십이다.”뭐 하나 쉬운 게 없지만 막상 해보면 쉽지 않은 게 이 구체성이다. 자신도 잘 알지 못하고 당황스러운데 어떻게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상황을 보는 눈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다. 알아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는 눈이 부족하다면 그런 사람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 고민해야 한다. 이런 고민은 팀원과 나눌 수도 없고 나눠서도 안 된다.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걸 나누는 순간 리더십이 구멍이 생긴다. 이런 고민은 리더에게 숙명 같은 것이기에 안고 갈 수밖에 없다.예를 들어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해야 한다는 걸 미리 고민해 적절한 시점에 알려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시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말보다 행동이 중요한 건 구성원들이 리더의 말보다 행동을 믿기 때문이다. 특히 얼굴 표정은 조직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알려주는 상황판이나 마찬가지여서 리더가 아무리 ‘괜찮다’ 해도 표정이 일그러져 있으면 조직은 표정을 믿는다. 자신도 모르는 표정이 조직에는 어떤 신호로 전달된다. 상황이 심각할수록 리더의 일거수일투족은 그 어떤 것도 사소하지 않다.조직의 불안을 줄이는 세 번째 조건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상황이 급박하고 어려울수록 리더는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가능한 한 구성원들이 보이는 곳에 있을수록 좋고, 구성원들이 예측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게 좋다.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맨 앞에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 리더를 기준점으로 삼아 허튼 곳에 힘을 쏟지 않을 수 있다. 내로라하는 세계적 기업의 CEO들이 웬만하면 자신들의 일정을 조직 내에 알리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자신들을 이끄는 리더가 뭘 하는지 알면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뭘 해야 할 지 더 잘 알게 된다.
소모적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방안 찾는데 집중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게 네 번째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요즘 위기는 복잡해서 혼자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 구성원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지시할 때와 의견을 물어야 할 때를 아는 것이다. 생각을 모아야 할 때는 자신의 하고 싶은 말의 절반 정도만 하는 게 좋다. 말할 때 모래시계나 시계를 놓고 시간을 재는 게 좋다.마지막으로 불안을 만들어내는 내부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이 상황이든 사람이든 제거해야 한다면 가차 없이 그렇게 해야 소모적인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다. 2009년 개봉한 영화 ‘디파이언스(Difiance)’는 2차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에 대항해 싸운 벨라루스 유태인 이야기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어디서나 그렇듯 이들 사이에서도 분열이 시작된다. 일단의 무리가 권력을 잡아 이익을 추구하려고 한 것이다.이때 주인공 투비아 비엘스키는 주동자가 공개적으로 도전하자, 고민 끝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살해버린 것이다. 그런 다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여길 책임지는 동안은 내 명령을 따르도록 한다. 불평한다거나 딴 마음 품을 생각은 하지도 마.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또 다른 데로 가고 싶은 사람 있으면 지금이 기회야. (누가 있겠는가? 이 추운 겨울에!) 이 놈 몸뚱이는 숲 속에 던져서 늑대 밥으로 줘버려. 지금 당장!”어떻게 됐을까? 분란은 총성과 함께 사라졌다. 물론 비엘스키가 한 행동이 최선은 아닐 수 있지만 때로는 차선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