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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건의 투자 마인드 리셋] 코로나19發 ‘재정정책의 시대’ 자산운용은?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전환... 달러 베이스 자산 편입해야

1980년대 이후 20여 년간은 자유화, 작은 정부, 민영화 그리고 통화정책의 시대였다. 규제를 풀고,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민영화해 시장 기능에 경제를 맡기자는 패러다임이 지배했다. 정부의 양대 경제정책 중 재정보다는 통화정책의 영향력이 더 컸다. 위기 징후가 들어나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 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바뀌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모든 통화 정책의 ‘끝판왕’이었다. 금리는 제로, 아니 마이너스 금리까지 떨어졌고, 중앙은행은 무제한 돈을 풀었다. 심지어 일본중앙은행은 ETF(상장지수펀드)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직접 주식을 사들이기까지 했다. 이제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정부는 없다. 경제 교과서도 다시 써야 할 판이다. 일본이나 독일 등은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이다. 국채를 발행하는 순간 이자 부담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갚을 빚이 줄어든다는 얘기이다. 돈을 빌리면 빌릴수록 이자가 줄어드는 세상이 된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잠자던 재정정책을 다시 깨웠다. 대공황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경의 ‘경제가 어려울 땐 시장에 맡기지 말고 정부가 재정정책을 펼쳐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1970년대 이후 구닥다리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공격을 당하자 침체된 실물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직접 국민에게 현금을 꽂아주는(?) 정책이 등장했다. 자본주의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국민에게 현금을 주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조금 앞서갈 수도 있는 얘기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의 시대로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재정정책에는 늘 논란이 뒤따른다. 먼저 가치관의 대립이다. 국가 재정은 작을수록 좋다는 쪽과 이를 시대에 맞지 않는 교조적 주장이라는 쪽이 대립한다.

재정정책을 둘러싼 두 가지 시선

후자는 국가가 직접 나서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불을 지피지 않으면 경제는 더 침체되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의 끝에는 ‘기본소득’이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현재 우리나라의 재정은 비관론자들의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채무가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 일본 등에 비해 매우 건전하다는 것이다. 외환보유고도 2019년 말 기준으로 4000억 달러가 넘어설 정도로 튼실해 외환위기도 발발하기 어렵다고 얘기한다.

반론도 거세다. 현재 시점이 아니라 미래 시점에서 보면, 그렇게 안심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저출산·고령화가 가장 심각하다. 이런 추세라면 2040년에는 복지 지출이 GDP 대비 22.6%로 확대된다. 국민연금은 적자로 전환되고 건강보험은 고갈될 것이 자명하다. 일본도 고령화 사회 이전에는 정부 재정이 나쁘지 않았지만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복지 부담으로 정부 재정이 급속히 악화된 바 있다.

부채 비율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정부 부채 비율이 늘어나는 것은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 이제는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것이다. 모든 선진국에서 재정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고, 정부 부채도 늘어나고 있다. 국채 발행으로 정부 빚을 늘리는 것은 죄악이라는 인식이 퇴색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라는 초유의 현상도 국채 발행에는 오히려 유리한 조건이라고 여긴다.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선진국과 우리나라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달러, 유로화, 엔화는 기축통화의 성격을 갖는 중심부 통화이지만 원화는 주변부 통화라는 것을 지적한다. 미국이나 독일 혹은 일본이 부도나는 것과 한국 정부가 부도나는 것은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다르기 때문에 이들 나라와 수평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비관론자들은 최악의 경우, 재정이 나빠지면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금융시장을 떠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마저 내놓는다. 이렇게 되면 환율이 급등하면서 한국 자본시장은 요동을 칠 것이다.

여기에 더 필요한 논의도 있다. 부채비율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재정은 어떻게 쓰는 것이 효율적인가, 예를 들어 직접 현금을 주는 게 나은가, 아니면 정부가 투자를 하는 게 좋은가,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논점, 그 재원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등등.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사회는 이런 주제에 대한 깊은 논의가 부족한 듯하다. 경제학자, 정책 당국자들의 치열한 고민과 논의를 기대해 본다.

파스칼의 내기와 자산배분

우리의 관심은 투자 관점에서 재정정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자산을 배분할 것인가이다. 재정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있겠지만 지금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느낌이다. 좌든 우든 지금은 재정정책의 시대로 진입한 것 같다. 급한 불은 끄고 보자는 논리 앞에 어떤 반론도 힘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재정정책의 시대로의 진입은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상수로 본다면, 다음의 문제를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첫째, 재원 조달 문제이다. 재정정책은 공짜가 아니다. 무한정 빚을 늘려나갈 수는 없다. 우리나라가 감내할 수 있는 부채 비율이 얼마인지는 전문가들이 분석해야 할 것이다. 자산운용에 관점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영원히 부채를 늘려갈 수는 없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부채를 해결하는 방법은 경제가 성장해 돈을 버는 게 가장 좋다. 이게 안 되면 조세 부담률을 높여야 한다. 이것도 안 되면 그 때는 복지 등을 줄이게 될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져 조세 부담률이 높아지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조세효율적인 자산이나 수단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절세가 투자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우리나라가 선진국처럼 갈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고민이다. 국가 채무가 늘어나도 독일이나 일본처럼 국가부도나 금융시장 위기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냐, 아니면 외국인 투자가들이 떠나면서 위기가 올 것이냐. 지금으로서는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 투자 관점에서는 어느 주장에 옳은지 따지는 것보다 이 두 경우를 모두 대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는 철학자 파스칼의 ‘내기’ 문제와 비슷하다. “신의 존재를 믿는 쪽이 보다 나은 베팅(도박)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신의 존재를 믿는 쪽의 기대가치(확률에서의)가 안 믿는 쪽의 기대가치보다 언제나 크기 때문이다.” 신을 믿지 않았는데, 나중에 사후세계에 가서 보니 신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옥에 갈 것이다. 반대로 믿었는데 신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 문제가 없다. 그래서 파스칼은 신을 믿는 게 믿지 않는 것 보다 확률적으로 유리하다고 보았다.

정부 재정 문제도 위기가 오지 않는다고 믿는 것보다 온다고 믿고 자산배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안 오면 상관없고, 불행히도 온다고 해도 내 자산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원화 베이스가 아니라 달러 베이스의 자산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해 두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로벌 자산배분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다.

※ 필자는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로,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 겸 투자 콘텐트 전문다. 서민들의 행복한 노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은퇴 콘텐트를 개발하고 강연·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돈 버는 사람 분명 따로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1539호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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