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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 부는 고급화 바람] ‘혜자로운’ 도시락은 옛말, ‘편리미엄’에 꽂힌 편의점 

 

전복 들어간 8900원짜리 김밥 화제... ‘긴급재난지원금 특수’에 맥주 대신 와인

▎ 사진:CU
직장인 고성훈(29)씨는 점심식사를 주로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운다. 한 끼에 1만원 수준인 회사 주변 식당의 가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편의점 도시락 가격도 만만치 않다. 고씨는 “예전엔 3000원대면 고기반찬이 들어간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지만 요즘엔 컵밥 하나도 4000원이 넘는다”며 “새로 출시되는 메뉴 대부분이 가격대가 높아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의 도시락 종류가 줄어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편리함’과 ‘가성비’를 내세우던 편의점에 고급화 바람이 불고 있다. 한 줄에 9000원에 달하는 김밥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4000원대 컵밥도 인기다. 편의점 CU가 지난 5월 내놓은 ‘완도전복감태김밥’은 8900원이라는 가격으로 화제를 모았다. 편의점 30년 역사상 최고가 김밥이다. 편의점 김밥 가격이 평균 2000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려 4배 이상 비싼 제품이다. 출시 직후 초도물량의 90%가 동나며 20여종 김밥제품 가운데 매출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CU 측은 “완도 전복과 서산 감태, 신동진 쌀 등 최고급 식재료로 김밥을 만들었다”며 “비싼 가격에도 한정판매 수량이 빠르게 완판됐다”고 설명했다.

4000원대 프리미엄 컵밥이 매출 견인


편의점 도시락은 2010년대 중반 인기 모델을 전면에 내세우며 편의점 전성기를 이끌었다. 당시 인기를 끌던 GS25 ‘김혜자 진수성찬 도시락’(3500원), 세븐일레븐 ‘혜리7찬도시락’(3900원), CU ‘백종원 매콤불고기정식’(3900원) 등 대표 제품의 출시 가격이 모두 최대 4000원을 넘지 않았다. 이들 도시락은 저렴한 가격에도 푸짐한 양을 자랑해 ‘혜자스럽다(가격대비 맛과 양이 훌륭하다)’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3000원대 도시락은 옛말이 됐다.

도시락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었던 컵밥도 고급화한 제품이 대세다. GS25의 베스트셀러는 4000원대 프리미엄 컵밥이다. 지난 4월 ‘공화춘유산슬덮밥’(4500원), ‘유어스황제컵밥’(4500원)을 출시한 GS25는 인기에 힘입어 불고기브라더스와 협업한 ‘불고기브라더스덮밥’(4500원)을 추가로 출시했다. GS25가 5월 1일~6월 10일 매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즉석 컵밥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36.1%나 늘었다. 특히 프리미엄 제품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 3000원대 컵밥 매출이 16.1% 증가한 반면 4000원대 프리미엄 제품은 51.5% 급증하며 전체 매출을 끌어올렸다.

업계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집콕족’이 늘면서 집 근처 편의점에서 한 끼를 해결하더라도 제대로 된 맛을 즐기고자 하는 소비자가 늘었다”며 “장어도시락이나 대게살삼각김밥처럼 프리미엄 제품의 인기가 높아져 지역 특산물을 활용하거나 유명 전문점과 협업을 확대해 라인업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가성비(2016년)→나홀로(2017년)→가심비(2018년)→편도족(2019년)으로 외식·소비 트렌드가 변화했다. 지난해엔 편의점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편도족’이 늘었다면, 올해는 간편한 도시락을 즐기면서도 프리미엄 제품에 기꺼이 더 비싼 값을 지불하는 ‘편리미엄(편리함+프리미엄)’ 현상이 두드러진다.

‘4캔에 만원’하는 캔맥주가 편의점 주류 매출을 견인하던 것과 달리 올해는 와인이 강세다.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와인 매출은 지난해 상반기 대비 32.2% 증가하며 유례없는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4월 중순 모바일 앱에 ‘와인예약주문 서비스’가 오픈된 이후로는 무려 60.3%의 신장률을 기록할 만큼 고객 수요가 날로 커지고 있다. 주 고객층은 경제력을 갖춘 3040세대 여성이다.

세븐일레븐이 모바일 와인예약주문 서비스 이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 40대 여성 구매 비중이 전체의 22.3%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30대 여성이 18.2%로 뒤를 잇는 등 3040 여성의 와인예약주문 비율이 전체의 40.5%를 차지했다. 전체 여성 구매 비중도 55.9%로 남성(44.1%)을 압도했다. 169만원의 고가 와인인 ‘샤또마고(750㎖)’의 주 구매고객도 40대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븐일레븐은 와인의 대중화 트렌드 속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급스럽고 여유 있는 생활문화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고, 특히 사회적 영향력과 경제력을 갖춘 3040세대가 핵심 고객층을 형성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남건우 세븐일레븐 음료주류팀 MD는 “와인은 홈술·홈파티나 생활 속 작은 사치 등의 트렌드와 맞물려 여성을 중심으로 그 소비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도 한몫을 했다. 대형마트에서 재난지원금 사용이 제한되면서 접근성이 좋은 편의점에 장보기 수요가 몰린 것이다. 편의점에선 잘 사지 않던 고가 상품도 재난지원금을 사용해 구입했다는 분석이다. GS25 관계자는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1인 가족 위주로 정육·양곡 등 편의점에서 장보기가 확대되고 있다”면서 “주류 중에서는 가격이 비싼 와인 매출이 23.3% 증가해 가장 높은 신장률을 보였고, 아이스크림도 1500원 이상 고가 제품이 잘 나갔다”고 말했다.

‘힘 세진’ 편의점, 프리미엄 제품 출시 잇달아

일각에선 편의점의 고급화 바람이 코로나19에 편승한 고도의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편의점 시장은 2015년 16조4500억원 규모에서 지난해 25조7000억원 규모로 커졌다. 유통업계의 후발주자였던 편의점 채널이 시장에 자리 잡으면서 저가상품 대신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을 내놓는 전략을 쓰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김경자 가톨릭대 교수(소비자주거학)는 “진출 초기에 편의점은 24시간 운영 방식으로 누구나 손쉽게 살 수 있는 제품을 파는 유통 채널로 자리 잡는데 공을 들였다”며 “편의점도 이제 PB상품이나 한정판 제품을 출시할 만큼 자체 브랜드 파워를 가지면서 더이상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인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문제는 가격을 올리긴 쉽지만 다시 내리긴 어렵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정판으로 내놓은 제품이 고가임에도 인기를 끌면서 업체 간 색다른 제품을 출시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프리미엄 제품 출시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편의점은 애초에 물건을 싸게 파는 유통 채널이 아니기 때문에 고가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저항감도 상대적으로 적다”고 덧붙였다.

-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1543호 (202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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