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요금 부과 기준, ‘월분’ 공지 15일 만에 ‘일자’로 변경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한걸음 물러섰다. 한전은 전기자동차 민간 충전사업자들이 정부와 구축한 전국 4만여기 충전기에 돌연 부과했던 ‘7월분(6월 사용기간에 대한 청구)’ 기본요금을 ‘7월부터’로 원상 복구했다. 지난해 말 ‘6개월 유예 후 7월부터 시행’이라 밝혔던 한전이 7월분이라는 이름으로 6월 사용기간에 기본요금을 부과, 사실상 5개월 유예에 그쳤다는 꼼수 지적이 불거진 데 따른 대응이다[8월 3일 발행한 이코노미스트 ‘단독-한전 꼼수에 전기차 충전 인프라 방전 위기’ 기사 참조]. 그러나 민간 충전사업자들은 “아직까지 개별 공지는 없었고, 기본요금 부과 방식 등의 일방통행은 여전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전기차 충전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 7월 30일 ‘기본공급약관 시행세칙 개정 안내’를 내고 ‘월분’ 기준이었던 기본요금 부과를 ‘일자’로 변경했다. 7월분 청구라는 말로 6월 사용기간에 대해 부과했던 기본요금을 ‘7월 1일부터’로 돌린 것이다. 기본요금은 송배전망 증설과 전력 부하 관리 대가로 한전이 받는 일종의 수수료다. 한전 관계자는 “지난해 말 이사회에서 적자에 따른 기본요금 부과를 의결할 때부터 한전은 월분 계산 방식을 생각했다. 요금 산정 방식이 일반 인식과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면서도 “시행세칙을 변경해 정상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7월부터는 오기” 명시 15일 만에 세칙 변경한전의 기본요금 부과 시행세칙 변경은 빠르게 진행됐다. 한전은 지난 7월 15일 ‘전기사용계약 정정사항 알림’을 낼 때까지만 해도 “7월 1일부터 전기차 기본요금 적용은 오기”라고 밝혔다. 한전이 지난 7월 30일 기본공급약관 시행세칙 개정 안내를 공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약 15일 만에 기존 입장을 철회한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취재 결과 한전은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에 기본공급약관 시행세칙 변경인가 신청을 지난 7월 28일 진행, 29일 인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전은 약관 및 시행세칙 변경시 산업부 인가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1개월 앞선 기본요금 부과가 전기차 보급 인프라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한전의 빠른 대응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전기차 민간 충전 사업자들은 전기차 보급의 선제 조건으로 꼽히는 충전 인프라 구축을 정부와 함께 주도해왔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4만469기 전기차 완·급속 충전기 중 74.4%를 민간 충전사업자들이 설치·운영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한전이 지난 7월, 충전기 각각에 1만원씩 가업자당 최소 1000만원에서 최대 1억원 넘는 기본 요금을 부과하면서 민간 충전사업자들은 충전기 운영 일시 중단 및 구조조정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정부의 충전기 보급 사업에 발맞춰 전국에 가장 많은 전기차 충전기를 구축한 민간 충전사업자 파워큐브는 “충전기에 들어가는 유지·관리비를 빼고 나면 1기당 5000~6000원가량 적자가 난다”면서 “선점 효과를 노렸지만, 지난 7월 갑자기 1억1000만원의 기본요금이 가중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민간 충전사업자 A사는 “한전의 갑작스런 기본요금 부과로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했다”고 토로했다.당장 한전은 7월분 청구에서 거둔 기본요금을 8월분 청구에서 감액키로 했다. 한전은 기본공급약관 시행세칙 개정 안내에서 “변경되는 기준은 2020년 7월분부터 소급적용하며, 개정전·후의 기본요금을 재계산해 차액을 2020년 8월분에서 감액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6개월 유예를 어긴 것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한전 관계자는 “기본요금 부과 자체는 이미 결정돼 있던 사항이었고 시행 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있었지만 바로잡았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절차상의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고 인정했다.하지만 민간 충전사업자들은 한전의 기준 변경에도 사업 확장을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전의 방침 변경에 민간 충전사업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됐기 때문이다. 실제 한전은 지난 7월 30일 기본공급약관 시행세칙 개정 안내를 사이버지점 공지사항에 띄운 것 외에 개별 안내 등은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기차 충전업계 한 관계자는 “충전기당 월 1만원으로 사업자 부담이 커진 데다 준비도 못 한 상태에서 부과된 기본요금은 부당하다고 주장했지만, 한전은 약관이 그렇다고만 말했다”면서 “논란이 커지자 손쉽게 슬쩍 바꿔버렸다”고 토로했다.한전의 발 빠른 세칙 변경에 전기차 민간 충전사업자들의 불신은 더 커지고 있다. 민간 충전사업자 B사는 최근 일부 전기차 충전기의 운영정지 신청을 진행하고 있다. B사 대표 C씨는 “한전이 최근 전기차 충전요금 할인내용 및 적용기간 변경 재안내라는 공문을 내고 전기차 충전기의 사용량이 없는 월에는 기본요금을 25%까지만 청구하겠다고 했는데, 사용정지 신청을 할 경우에만 사용량이 없는 월로 취급한다고 하는 등 말이 바뀐다”면서 “기준도 방식도 정해진 게 없고 매번 바뀐다”고 했다. 그는 “운영정지 신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부 전기차 보급 목표 달성에도 빨간불문제는 민간 충전사업자들의 부담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라는 데 있다. 한전은 지난 6월 부과한 1만원 기본요금은 50% 할인을 적용한 것으로, 2022년 7월부터 7㎾급 완속 충전기 1기당 2만534원(부가세·전력발전기금 포함)의 기본요금을 100%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지난 한 해 영업손실 1조2765억원을 기록, 전기차 충전 전력요금 할인 등 환경과 미래 산업 관련 할인 혜택을 폐지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게 한전의 설명이다. 한전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 기본요금 특례할인 등으로 지난해 333억원을 포함 총 595억3000만원이 지출됐다”고 했다.일각에선 기본요금 부과로 불거진 민간 충전사업자의 사업 중단 및 요금 인상이 전기차 보급 둔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충전 인프라가 탄탄하지 않으면 전기차 시장이 커지기 어려워서다. 정부는 지난해 보급 목표(4만대)도 달성하지 못했다. 2025년까지 목표(113만대)를 이루려면 앞으로 5년간 해마다 20만대 이상 총 104만대를 보급해야 한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자동차학)는 “연간 333억원 한전 적자를 막기 위해 전기차 보급에 필수적인 민간 충전사업자들을 사지로 몰고 있다”면서 “최소 3년은 더 기본요금을 지원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