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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신뢰의 결과는 ‘공동체의 가해자’신뢰와 불신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뭐가 틀렸는지를 알아야 뭐가 맞는지 변별할 수 있다. 이 세상 모두를 신뢰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신뢰가 뭔지도 모르는 셈이다. 어쨌든 이 신뢰 대 불신은 우리가 이 세상에 첫발을 내딛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발판, 세상을 이해하는 첫 단추라 할 수 있다.우리가 살면서 믿음의 뿌리를 두는 대표 영역이 과학과 종교다. 그런데 과학과 종교는 신뢰와 불신을 결정하는 방식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과학은 신뢰의 조건만이 아니라 불신의 조건도 명시한다. 모든 과학 연구는 특정한 결과가 나오면 연구자의 가설이 틀리고, 다른 결과가 나오면 맞는 것이라고 미리 정해놓고 시작한다. 신뢰와 불신을 명확히 가리지 않으면 그 다음단계로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종교는 그렇지 않다. 종교적 믿음은 검증이 불가능하다. 신의 존재 혹은 부재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라. 어떤 사건이든 그것이 신이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신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증거를 보고 스승의 부활을 믿을지 말지 결정하겠다던 예수의 제자 도마는 종교인이 아니라 과학자의 자세를 가졌던 셈이다.이렇게 신뢰와 불신을 결정하는 원칙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과학과 종교의 담당 영역은 구별된다. 개인의 자유인 태도나 가치관은 증명과 무관한 종교의 영역이었다. 종교는 이 영역에서 공동체의 번영과 안녕에 큰 기여를 해 왔다. 특히 “신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사랑 한다”는 태도는 많은 이들을 어둠에서 구해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자선과 봉사활동의 많은 부분은 헌신적인 종교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반면에 사실(fact)은 증명 전담인 과학의 영역이다. 일정한 조건을 통해 증명이 된 다음엔 모두가 인정을 해야 소통이나 합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은 사실을 확인하는 모든 곳에 필요하다.문제는 종교가 과학의 영역까지 끼어들 때다. 예를 들어, 정부의 정책이나 철학을 싫어하거나 비판하는 건 종교가 개입할 수 있는 가치관이나 태도의 영역이다. 하지만 그 정부가 북한(혹은 중국)에 나라를 갖다 바치려 한다거나, 지난 번 총선 혹은 그 전의 대선은 모두 북한(혹은 중국)에 의해 조작되었다거나,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특정 종교를 탄압하고 제거하려 드는데 왜냐하면 그 종교야 말로 이 나라의 적화통일을 막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라거나, 우리 목사님이 이런 ‘사실’을 아는 것은 모두 신의 계시 덕분이라는 식의 논리는 검증의 대상인 사실을 검증 불가능한 종교적 명제로 바꾼다.신뢰와 불신의 첫 단추를 이렇게 끼우면 그 다음이 문제다. 불신해야 할 대상을 신뢰하니 신뢰해야 할 것들을 오히려 못 믿고 신뢰와 불신의 체계가 완전히 거꾸로 뒤집힌다. 그러면 남들과 공유하는 사실이 없으니 소통이 불가능해진다. 다음으로 소통을 통해 유지되어 온 관계들이 망가지며, 결국 사회와 공동체가 타격을 받는다. 공동체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종교가 오히려 공동체의 가해자가 된다. 우리는 지금 그런 잘못된 신뢰의 결과를 체험하는 중이다.
대다수의 상식에서 벗어난 특정 교회의 행동한동안 아슬아슬한 통제의 영역에 있던 코로나19가 다시 위험 수준으로 커지고 있다. 물론 근본적인 이유는 무증상 감염자다. 정부가 경제활동을 활성화하려는 시도를 할 때마다 소위 말하는 ‘깜깜이 감염’이 늘어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에도 시작은 그런 깜깜이 감염이었다. 하지만 이를 대확산으로 키우는데 가장 많이 기여(?)한 곳은 다들 아시듯 특정 교회다. 놀라운 건 그 교회 구성원들의 행동이 대다수의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점이다. 근원은 신뢰 대 불신의 첫 단추에 있다.그냥 정부를 비판하는 태도를 가진 종교인이라면 방역당국에는 당연히 협조할 것이다. 정부는 미워도 방역수칙을 따르는 게 공동체와 이웃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 테니까. 하지만 뒤집힌 세계관을 가진 종교인들은 ‘정부가 해당교회에 바이러스를 뿌렸다’거나, ‘현재 바이러스 검사는 종교탄압의 목적으로 모두 조작 된다’는 주장을 ‘사실’로 믿는다. 이들은 당연히 정부의 방역망으로부터 도피하고 저항하며 우리 사회를 더 큰 위험에 빠트린다.우리만 이 꼴은 아니라는 사실이 위안이 될까. 미국에서는 각종 코로나19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이 방역수칙에 저항하면서 매일 수만 명대 확진자를 배출하고 있고, 유럽에서는 난데없이 5G 통신 중계기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증상의 원인이라고 믿는 이들이 중계기를 파괴하는 중이다. 이들도 어린아이 시절에는 틀린 버튼이 뭔지 감별할 수 있었을 텐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험인간],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