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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취미생활, 조용한 성향의 무파벌 정치인그런 스가는 정치인으로서 무미건조한 편에 속한다. 그는 우선 술을 마시지 않는다. 주량이란 게 있을 수 없다. 요정에서 정치인이나 경제인과 어울려 술을 함께 마시며 서로 결속하고 보스를 받들며 부하를 만드는 일과는 거리가 있다. 일본의 일상적인 정치인과 다른 셈이다. 정말 다른 건지,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는지, 다른 방식으로 정치적인 목표를 추구했는지는 스가만이 알 것이다. 취미로는 계곡 낚시와 걷기를 들었다. 모두 조용히 혼자서 하는 것들이다. 스가는 총리에 오른 날에도 걷기를 즐겼다. 좋아하는 음식은 팬케이크 등 달콤한 것을 즐긴다고 말했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단 걸로 해소한다는 이야기다.자신의 세대에선 비교적 큰 편인 171㎝의 키에 혈액형은 O형이다. 즐기거나 해본 적이 있는 스포츠는 호세이 대학시절 심신을 단련할 때 했던 공수도를 꼽았다. 특이한 것은 아침과 밤에 윗몸 일으키기를 100회씩 한다는 사실이다. 간단하지만 매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스가는 파벌정치가 판치는 자민당에서 드물게 무파벌 정치인이다. 보스가 정치자금을 대주고, 정치적 기회와 경력을 만들어주면서 이끌어주는 파벌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총리에 올랐다. 그의 삶과 정치적 이력을 보면 그 비결이 드러난다. 그는 1948년 일본 동북지역의 아키타(秋田)현에서 태어났다. 동북 지역은 개발이 덜 된 낙후지역이다.스가는 1967년 고교 졸업 뒤 도쿄로 옮겨 2년간 종이박스 제조업체에 다니다 1969년 호세이(法政)대 법학부에 들어갔다. 주목할 점은 스가가 대학에 입학하던 시기가 일본에서 폭력적인 학생운동이 절정에 이르렀던 때라는 사실이다. 대학마다 전학공투회의(全学共闘会議·약칭 全共闘) 운동이 활발해 화염병과 각목을 든 학생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점거 농성이 이어졌다. 특히 도쿄대에선 1969년 1월 18일~19일 전공투 학생 2000여 명이 야스다(安田) 강당을 점거하자 경찰이 이를 봉쇄한 사건이 애스다 강당 사건이 발생했다. 진압 과정에서 경찰 710명과 학생 47명이 다치고 457명에 체포됐다. 일본의 폭력 학생 운동의 상징적인 사건이다.이런 시대에 대학을 다녔지만 학생운동에 휩쓸리지 않고 1973년 대학을 졸업한 스가는 민간기업에 다니다 1975년 호세이대 취업상담실을 통해 자민당 소속 대학 선배 의원의 국회 보좌관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2년이 지난 1987년 고향도 아닌 수도권 대도시인 요코하마의 시의원에 당선하면서 선출직에 입문했다. 9년간의 시의원 생활 끝에 1996년 처음으로 중의원에 당선했다. 시의원을 지낸 요코하마를 지역구로 했다. 지역구 의원이 은퇴하면서 물러난 자리에 들어갔다. 의원 보좌관 12년, 시의원 9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거쳐 국회에 입성한 것이다.
‘레이와 시대’를 연 상징으로 떠오른 개혁주의자2002년 국토교통성과 2003년 경제산업성의 정무관(정무 차관에 해당)을 거쳐 2005년 총무부대신을 맡았다. 2006년 총무상을 맡아 처음으로 입각했다. 중의원이 된 지 10년 만에 각료를 맡은 것이다. 그에게 기회가 온 것은 2012년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다시 총리가 되면서 관방장관으로 발탁되면서다. 관방장관은 정부대변인과 총리 비서실장을 겸하는 자리다. 총리를 지근에서 모시며 일본의 정치와 정책을 조율하는 자리다. 2016년에는 관방장관 재임일수 1290일을 넘기면서 역대 최장수를 기록했다.이런 스가를 아베 다음의 총리에 올리는 작업은 이미 2019년 4월 1일에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바로 그날 일본의 새로운 연호인 ‘레이와(令和)’를 스가 당시 관방장관이 붓글씨로 적힌 패널을 들고 나와 발표했다. 스가는 레이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연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대중으로부터 ‘레이와 오지상(레이와 아저씨)’으로 불리며 대중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떠올랐다.관방장관으로 코로나 대책, 경제 정책 등 다양한 정부 발표를 담당했기에 스가를 모르는 일본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업무 성격상 원칙적인 이야기나 하는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레이와 발표로 대중에 친근한 이미지를 주면서 관심을 받고 인기까지 모으기 시작했다. 미디어에도 ‘의리와 인정이 두터운 정치가’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가 총리에 된 뒤 니혼게이자이에는 스가의 비서관으로 7년을 일했다는 가토 간(加藤元) 시나가와 현의원이 “과거 총무상으로 일하다 떠나게 되자 자신의 요코하마 자택을 경비하던 경찰관들을 불러 모아 감사의 회식을 함께했다”며 스가가 의외로 인정이 많은 성격이라고 전했다.스가는 지난해 5월 11일에는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마크 펜스 부통령과 회담했다. 관방장관이라는 직책은 총리가 해외에 나가면 도쿄를 지켜야 하는 자리다. 해외 출장이나 외교 업무의 기회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런 스가에게 아베 총리가 해외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엔 절친, 한·중엔 관망 이어나갈 아베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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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준 파벌에게 보은한 스가 내각 각료 인사9월 14일의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98명이 소속된 호소다파, 55명으로 이뤄진 아소파, 54명으로 구성된 다케시다파, 47명이 포함된 니카이파, 11명의 이시하라파가 스가를 지원했다. 스가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무파벌이다. 스가는 이들 다섯 파벌의 지원으로 총리에 오른 세이다. 스가와 함께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왔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는 47명이 따르는 기사다파의 수장이다. 아베의 정적으로 이번에 출마했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는 19명으로 이뤄진 이시바파의 보스다. 7년 8개월간 관방장관으로 운명을 같이 했던 아베는 가장 인원이 많은 호소다파에 속한다. 아베는 정적인 이시바가 자민당 총재와 초리에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과거 자신이 총리가 되는 것을 지원했던 파벌간 합종연횡을 뒤에서 조종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베의 이시바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기 때문이다.자민당에서 파벌간 권력 나눠먹기는 당 4역 인사에서 드러난다. 당 4역은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81) 간사장, 사토 쓰토무(佐藤勉·68) 총무회장,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66) 정무조사회장(정조회장·정책위원장에 해당), 야마구치 다이메이(山口泰明·71) 선거대책위원장으로 결정됐다. 니카이 간사장과 야마구치 선거대책위원장은 유임이고 나머지는 신임이다. 하지만 인물만 바뀌었지 소속 파벌은 그대로다. 니카이 간사장은 47명이 소속한 니카이파의 수장이며, 사토 총무회장은 54명을 거느린 아소파의 회원이다. 시모무라 정조회장은 98명이 속한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 소속이다. 야마구치 선대본부장은 54명이 속한 다케시다파다. 당 4역을 배출한 4개 파벌과 함께 11명이 소속한 군소 파벌인 이시하라파도 있다. 이 파벌 소속의 모리야마 히로시(森山裕)는 국회대책위원장이다. 이들 다섯 파벌이 힘을 합쳐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스가를 밀었다. 자민당 당 4역 인사는 이에 따른 철저히 보은 인사, 또는 권력 분할 인사인 셈이다. 자민당 총재인 스가가 실시한 당 인사라기보다 파벌이 세력에 따라 사람을 앉힌 인사나 다름없다. 스가는 파벌에 빚이 많다.파벌 분배는 스가 내각의 각료 인사에서도 드러난다. 각료의 파벌별 분포를 보면 호소다파 5명, 아소파 3명, 다케시타·니카이파 각 2명, 이시하라파 1명 및 무파벌 3명이다. 이들은 모두 스가를 지지한 그룹이다. 스가와 경쟁했던 기시다 후미오 전 정조회장의 기시다파에서 2명,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의 이시바파에서도 1명을 각각 기용했다.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이루는 공명당은 기존대로 한 자리(국토교통상)가 배정됐다. 경쟁 파벌과 연립정당에도 배정한 게 당직 배분과 다르다.주목되는 것은 스가 내각에서 스가의 색채를 보기가 힘들다는 사실이다. 아베 내각에 몸담았던 각료 중 8명이 원래 자리를 그대로 지켰고, 3명은 다른 자리를 갈아탔다. 20명으로 이뤄진 내각에서 11명의 아베 내각 사람이 그대로 자리를 지킨 셈이다. 스가 정권이 ‘아베 시즌2’라는 소리를 듣고. 스가 총리가 ‘아베의 아바타’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근거다. 이렇게 시작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정권이 앞으로 어떤 정치와 정책을 펼칠 것인가. 파벌과 아베의 색채를 차례로 들어내고 의외로 자신만의 정치를 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한 둘이 아니다. 스가 시대 스가의 정치를 볼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