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평범한 장면들의 총합“행복은 기쁨의 강도(intensity)가 아니라 빈도(frequency)다.”이는 행복의 진리를 담은 핵심 문장 중 하나다.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이라는 이름 아래 행복 연구를 주도한 심리학자 에드 디너(Ed Diener) 교수가 강조하는 행복의 법칙이다.큰 기쁨을 추구하는 행위는 행복에 여러모로 불리한 선택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우선, 엄청나게 기쁜 사건은 인생에서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맹렬하게 원한다고 해도 커다란 기쁨을 경험할 기회는 매우 드물다. 사람들이 매일 어떤 감정을 느끼고 사는지 추적한 연구들이 알아낸 바, 큰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3%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행복 연구가 밝힌 또 다른 사실은 큰 기쁨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강렬한 기쁨을 느낄수록, 시련이 닥쳤을 때 좌절이나 슬픔도 더 강렬하게 경험한다. 큰 기쁨을 추구할수록 깊은 절망의 늪에 빠질 위험도 커지는 것이다. 또한 큰 기쁨은 소소한 일에서 비롯되는 작은 즐거움을 반감시킨다. 이에 반해 사소한 불편함으로 인한 괴로움은 증폭시킨다. 친구와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는 일상의 만족감엔 무뎌지고 별것도 아닌 어려움엔 더 고통스럽게 반응하게 된다.심리학자 필립 브릭만(Philip Brickman) 연구팀은 미국 일리노이주에 사는 22명의 로또 당첨자들과 로또에 당첨된 적이 없는 22명의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비교해보았다. 예상과 달리, 로또 당첨자들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다. 미래에 더 행복할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일상적 활동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로또 당첨이라는 짜릿한 사건이 일상을 시시하게 만들어버린 까닭이다.큰 꿈을 안고 전력을 다하는 삶은 아름답다. 꿈을 이뤘을 때 느끼는 희열은 의심의 여지없이 소중한 경험이다. 그러나 인생의 행복은 짧고 강렬한 몇몇 하이라이트 장면들로 결정되지 않는다. 언급했듯이, 큰 기쁨은 어느새 우리를 배신한다. 행복은 특별할 게 없어 기억조차 못 하는, 모래알처럼 많아 셀 수도 없는, 평범한 장면들의 총합으로 결정된다.“큰 기쁨이 아니라 여러 번의 기쁨이 중요하다.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은 성취하는 순간 기쁨이 있어도, 그 후 소소한 즐거움을 지속해서 얻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디너 교수의 제자인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의 저서[행복의 기원] 중 일부분이다. 행복하기 원한다면 이 구절을 마음에 새길 만하다. 누가 더 행복한 삶을 살았는가? 이 철학적인 질문을 단순한 질문으로 바꿀 수 있다. 누가 더 자주 잔잔한 미소를 지었는가? 생을 마감하는 날 행복 결산을 한다면 훈훈하고 평안하고 유쾌하고 고마운 감정을 경험한 빈도가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것이다.한동안 왕래가 없었던 어린 시절 친구로부터 문자를 받고 반가움을 느꼈는가? 모처럼 한가했던 지난 주말, 책에서 읽은 어떤 구절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는가? 최근에 영화를 보면서 뭉클한 순간을 경험했는가? 곧 다가올 주말 약속 생각에 살짝 설레는가? 모두 행복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순간들이다.
중요 의사 결정, 행복 정의에 맞게 조정해야그래서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일상의 행복)은 학문적으로도 ‘말이 되는’ 주장이다. 어차피 실현되지 않을 헛된 꿈은 잊어버리고 분수에 맞게 작은 일에나 만족하며 살라는 부추김으로 이를 오해할 필요는 없다. 소확행은 행복 주식 시장에서 투자 대비, 가장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수익을 가져다줄 효자 종목이다. 커다란 한방, 큰 기쁨에 삶의 전부를 투자한 사람은 행복 결산에서 초라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 행복에서도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분산 투자의 규칙이 유효하다.행복하기 원한다면 이제부터 중요한 의사 결정의 기준을 행복의 정의에 맞게 조정해 보자. 나에게 잔잔한 기쁨을 가장 ‘빈번’하게 가져다줄 선택이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혹시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가? 그 선택으로 나의 ‘일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해 보자. 3년 혹은 7년 후 11월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이날, 나는 어디서 누구와 어떤 대화를 하고 있을까? 일할 때, 종일 내 머릿속을 채우는 주제는 무엇일까? 분석해야 하는 자료는 무엇인가? 영상 이미지인가? 혹은 재무제표인가? 종일 사무실에 있을까? 아님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날까? 주로 어떤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을까?놓치지 말아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이 일을 하게 되면 일상에서 긍정적인 정서를 자주 경험할 수 있을까?”[행복의 기원]의 내용 중 한 구절을 더 소개한다. “우리는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산다. 고등학생은 오직 대학을 가기 위해, 대학생은 직장을 얻기 위해, 중년은 노후 준비와 자식의 성공을 위해 산다. 많은 사람이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이렇게 ‘becoming’에 눈을 두고 살지만, 정작 행복이 담겨 있는 곳은 ‘being’이다.행복이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면 ‘훗날, 내가 무엇이 되는(becoming) 결정적 순간’이 아닌, 무엇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being)‘ 살펴야 한다.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의 소소한 행복을 위해 한 가지만 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내일을 위해 오늘의 감정을 방치하고 있다면 작은 변화를 시도할 시점이다.※ 필자는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심리과학이노베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이다.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을,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학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아메리카 온라인(AOL)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Netscape)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유튜브 ‘한입심리학’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