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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 장기집권’] KB금융·하나금융, 누가 그들에게 권한을 주었나 

 

주인 없는 회사로 국민연금이 최대주주… 외풍 막고 지속성장 VS 소수 지분으로 ‘셀프 연임’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11월 20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 “탄생년 끝자리가 ‘5’보다 높으면 신한금융, ‘5’ 이하면 하나금융에 가야 한다.” 금융업계에 취업한 직장인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는 국내 은행계 금융그룹 회장들이 10년간 군림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다 보니 역대 회장들의 탄생년 끝자리가 비슷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실제로 국내 은행계 금융그룹에서는 유일하게 4연임에 성공했던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1938년생, 한동우 전 회장은 1948년생, 조용병 회장은 1957년생이다. 모두 취임 시기가 10년 정도 터울이 있다. 하나금융지주에서는 김승유 전 회장이 1943년생, 김정태 회장은 1952년생으로 ‘금융그룹 회장 10년 주기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2. 지난 11월 20일 KB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윤종규 회장의 3연임 안건이 통과되면서 ‘금융그룹 회장 10년 주기설’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1955년생인 윤 회장이 세 번째 임기를 무사히 마친다면 KB금융지주에서도 강산이 한 번 바뀌는 기간을 보낸 첫 수장이 된다. 공적자금 투입과 민영화 과정을 거치며 2019년에야 다시 금융지주 체제로 돌아온 우리금융그룹, 금융지주 회장 위에 농협중앙회장이 있는 농협금융지주를 제외한 국내 금융그룹 빅3 모두 회장 장기 집권 체제를 마련한 셈이다.

‘윤종규 장기 집권’ 들어간 KB금융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 성공에 국내 은행계 금융그룹이 주목받고 있다. 전임 회장 모두가 불명예 퇴진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는 KB금융그룹에서도 드디어 회장 장기집권 체제가 마련되어 지속성장의 기대와 함께 국내 금융지주사들의 3연임이 일반화됐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윤 회장의 3연임에 대한 금융업계의 기대감은 ‘외풍에서 자유로운 KB금융’이다. 2008년 지주사 체계를 갖춘 KB금융그룹에서는 역대 회장들이 진퇴 과정에서 항상 구설수에 올랐다. 황영기·어윤대 전 회장은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점에 ‘낙하산 인사’가 논란이었다. 임영록 전 회장은 재정경제부 제2차관 출신 관료라는 점에 ‘모피아’ 논란이 일었다.

KB금융그룹의 역대 회장들은 퇴진 과정에서도 불명예 기록을 갖고 있다. 황영기 전 회장은 우리은행 재직시절 1조원대의 파생상품 투자 손실 사태로 인해 1년 만에 직무 정지 상당의 징계를 받고 퇴진했다. 이어 회장 직무대행을 맡은 강정원 전 KB국민은행장도 부실대출과 투자손실 등의 이유로 금감원 경고를 받았고, 2010년 취임한 어윤대 전 회장은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에 미공개 정보를 건넨 혐의로 금융당국에서 주의를 받았다.

2013년 취임한 임영록 전 회장은 KB국민카드 고객정보 유출사고와 경영진간 내분을 겪은 탓에 2014년 이사회에서 해임안이 통과되면서 불명예 퇴진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윤 회장은 이미 두 차례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는 점만으로 KB금융지주 역사상 이름을 남긴 셈이다. 윤 회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단독 추천하면서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조직 안정’을 성과로 꼽은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선우석호 KB금융지주 회추위원장은 “윤종규 회장은 지난 6년간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KB를 리딩금융그룹으로 자리매김 시켰다”며 “KB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속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윤 회장이 조직을 3년간 더 이끌어야 한다는 데 회추위원들이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KB금융그룹의 전임 회장들에게서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로는 지배구조가 꼽힌다. 국내 금융지주 대부분이 외풍을 겪었지만, KB금융은 유독 외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라이센스 사업인 금융업은 태생부터가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며 “신한금융그룹에서 가장 먼저 강력한 회장 중심의 장기 집권 체제가 마련될 수 있었던 이유도 설립 단계부터 자본금을 투입한 일본계 주주들이 있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올 정도”라고 설명했다.

국내 은행계 금융그룹들 가운데 가장 먼저 금융지주사 체제를 만든 곳은 우리금융지주다. 그러나 당시 우리금융그룹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상태로 예금보험공사가 최대주주였다. 예금보험공사는 자금 회수를 위해 그룹 내 증권사·자산운용사·지방은행 등을 쪼개 팔다 보니 우리은행만 남게 됐고, 지주사는 지난 2014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어 2019년 다시 우리금융지주가 상장하면서 손태승 회장이 2019년 1월부터 회장에 취임했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에서는 이미 3연임 이상 성공한 회장을 배출했다. 신한금융그룹에서는 초대 회장인 라응찬 전 회장이 3연임을 넘어 4연임에 성공한 바 있다. 2005년 지주사가 출범한 하나금융그룹에서는 김승유 전 회장과 김정태 회장이 나란히 3연임에 성공했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국내 금융지주사 회장들의 장기 집권이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비판도 만만찮다. 일단 지분율 0.01~0.02% 수준에 불과한 회장들이 너도 나도 장기 집권 체제에 돌입한다는 비판이다. 여기서는 국내 금융업계 특유의 ‘주인 없는 회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회장 장기 집권 체제를 마련한 금융지주 3곳은 모두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다. 국민연금은 KB금융지주 지분 9.96%를 들고 있고 하나금융지주는 9.94%를 보유했다. 신한금융지주는 재일교포 지분 합계가 10~15%로 추정되지만, 단일주주로는 국민연금이 9.86%로 가장 많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주인 없는 회사라 현직 회장들이 연임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수기’ 사외이사들이 회장후보 추천

국내 금융지주사의 회장 선임 과정은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차기 회장 후보를 평가한 뒤 단독 후보를 선정하면 주주총회에서 해당 안건을 처리하는 식이다. KB금융과 신한금융, 하나금융 등에서는 모두 회장후보추천위원을 사외이사들이 맡고 있다. 문제는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지주회장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힘들다는 점이다.

국내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은 오래 전부터 ‘거수기’라는 불명예를 쓰고 있다. KB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은 올해 이사회에서 단 한건의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하나금융지주에서는 지난 4월 24일 이사회에서 백태승 사외이사가 그룹내부통제규정 개정안에 반대 의견을 낸 것이 유일하다.

회장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사외이사들이 회장후보추천위원이 되고, 그들이 다시 회장을 추천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현직 회장의 연임 때마다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실제로 윤 회장의 3연임을 앞두고 KB금융그룹 노동조합협의회에서는 회장 후보 선출과정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KB금융그룹 노동조합협의회 관계자는 “3년 전 윤 회장이 첫 연임에 나설 때도 윤 회장을 포함해 총 3명을 최종 후보자군을 구성했지만 윤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이 고사하면서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며 “이번 후보 선정 과정에서도 평가 점수를 공개하지 않는 등 투명성과는 거리가 먼 셀프 연임”이라고 지적했다.

연임 성공한 회장들은 재임기간 중 파벌 문제가 불거져 나오기도 했다. 최대주주인 오너가 회장 자리를 맡아 그룹 전반을 좌우하는 산업계와 달리 소액주주 수준의 지분으로 연임 체제를 이어가야 하는 금융지주 회장들은 내분에 취약한 상태다. 실제로 국내 금융권 첫 4연임 회장인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2인자였던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과의 내분이 벌어졌고, 일본 주주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며 서로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으나 결국 두 사람 모두 물러났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은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과 내분으로 동반 퇴진했다. 연임을 원하는 회장이라면 ‘내 사람 챙기기’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금융지주 회장들의 ‘내 사람 챙기기’는 계열사 대표 인사로 요약된다. 지주사 이사회 내에 그룹 계열사 인사를 좌우하는 위원회를 설치하고 여기에 회장이 참여하는 식이다. 실제로 KB금융에서는 윤 회장이 계열사대표이사후보 추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고, 하나금융지주에도 김정태 회장이 그룹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이름을 올렸다. KB금융 회추위에서 회장후보자 숏리스트 4명에는 윤 회장과 허인 KB국민은행장, 이동철 KB국민카드 사장 등 KB금융 그룹 계열사 수장을 포함했을 때 노조에서 ‘요식행위’라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연임 목표로 ‘내 사람 챙기기’ 공 들여

이번 회장후보자 숏리스트 4명에 포함된 허인 KB국민은행장과 이동철 KB국민카드 사장은 당시 연임을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이후 허인 행장은 윤 회장이 차기 회장 후보로 단독 추천받으며 사실상 3연임에 성공한지 한달 여 만인 지난 10월 20일 계열사대표이사추천위원회로부터 차기 행장 후보로 단독 추천을 받았다. 이어 윤 회장과 함께 11월 20일 이사회에서 확정됐다.

윤 회장이 첫 연임에 도전하던 2017년에도 회장후보 숏리스트 3인에는 윤 회장 외에 김옥찬 당시 KB금융지주 사장과 양종희 KB손해보험 사장 등이 포함됐다. 이 가운데 양종희 사장은 계열사 수장들이 한번만 연임했던 전례를 깨고 3연임에 성공해 지금도 KB손해보험을 이끌고 있다. 더구나 그룹 내에서도 윤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어 4연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KB 노동조합협의회 관계자는 “윤 회장의 첫 연임 당시 계열사 수장들은 모두 심층 평가를 위한 인터뷰를 고사하며 사실상 ‘기권’했기에 당시에도 요식행위 논란이 커졌다”며 “이렇게 구색 맞추기에 동원된 계열사 대표들 일부는 연임에 성공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회장 후보 추천 과정은 요식행위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1562호 (20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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