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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의 ‘승부수’ 혹은 ‘야합’] 이동걸 회장 나서 설명해도 ‘재벌 특혜’ 시각 팽배 

 

“3자배정 유상증자 성사 위해 의도적으로 경영권 언급 회피” 지적도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11월 19일 진행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산업은행
국내 양대 대형항공사(FSC)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빅딜이 발표된 후 산업은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제3자배정 유상증자 형식으로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을 선택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 국책은행이 개입한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이 조원태 회장에 대한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는 비난도 나왔다. 이에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직접 간담회를 통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재벌 특혜’라는 세간의 시각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항공업계와 자본시장에서는 산업은행이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킬 기회는 충분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일단 주주배정 유상증자다. KCGI가 가처분신청에 나서면서 밝힌 대로 자본금이 필요하다면 먼저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시도하는 것이 순서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긴급한 자금 수요를 들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이동걸 회장은 지난 11월 19일 진행된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은 끝이 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태가 종결되기를 기다리다가는 두 회사가 모두 망한다”며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은행이 자금 지원의 시급성을 주장했지만 시장에서는 오히려 ‘급할수록 원칙대로 했어야 한다’는 반응이다. 당장 제3자배정 유상증자와 관련해 KCGI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한진칼 경영권 분쟁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반발이다. 법원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최악의 경우 제3자배정 유상증자는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KCGI는 경영권 분쟁상황에서 우호세력을 대상으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고 있다.

“급할수록 원칙대로 해야” 지적 많아


산업은행이 불필요한 ‘재벌 특혜’ 의혹을 피할 수단은 또 있었다. 제3자배정 유상증자로 직행하더라도 의결권에 제약을 거는 식이다.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총 8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5000억원은 제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한진칼의 보통주를 획득하는 식으로 투입되고, 3000억원은 대한항공의 보통주를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EB) 형식을 택했다. 여기서 한진칼에 투입될 5000억원을 우선주 형식으로 투자했다면 반발이 적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한진칼 정관에서는 의결권 없는 우선주 발행한도를 1500만주로 명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행한 한진칼 우선주는 53만6766주라 1440만주 이상 여유가 있다. 한진칼 우선주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증시가 회복된 이래 5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 가격을 중심으로 어림 계산해도 7200억원 어치는 발행할 수 있다. 산업은행이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자금 5000억원을 우선주로 투자해도 됐다는 이야기다.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은 이 같은 지적에 “단일 국적항공사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산업은행이 직접 주주로서 통합작업에 참여해야 하기에 의미 있는 규모로 의결권 있는 보통주 투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이 의결권 확보의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시장에서는 오히려 과도한 간섭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산업은행은 ‘7대 의무조항’을 공개한 바 있다. 7대 의무조항은 산업은행이 지명하는 사외이사 3인 및 감사위원회위원 선임과 주요경영사항에 대한 사전협의권, 대한항공에 경영평가 실시 등이 포함됐다. 조원태 회장을 포함한 한진칼 경영진은 의무 조항을 지키지 못하면 징계를 받거나 퇴진을 해야 한다. “산업은행이 5000억원을 들여 시가총액 4조3000억원 규모의 회사에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한진칼 정관에서 이사의 선임은 주총 출석 주주 과반의 동의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동걸 회장 “한국 주요 산업은 재벌 중심”

일각에서는 대한항공 경영평가와 주요경영사항에 대한 사전협의권 등을 들어 항공 산업이 사실상 국유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산업은행 역시 이 부분에서는 부인하지 않고 있다. 최대현 부행장은 “국유화와 관련해서는 유럽을 비롯해 해외에서도 사례가 많다”며 “경영정상화가 이뤄지면 지분 매각을 통해 해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양대 항공사의 통합 과정에서 산업은행의 참여 필요성 때문에 보통주를 확보했더라도 ‘재벌 특혜’ 의혹을 피할 방법은 남아 있다.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서는 어느 쪽에도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식이다. 일단 산업은행은 공식적으로는 조원태 회장 측을 지지하겠다고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이동걸 회장의 언급으로 미루어 볼 때 암묵적으로 조 회장 측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동걸 회장은 11월 19일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 주요 산업은 모두 재벌기업 중심으로 돌아간다”며 “재벌을 제외하면 산업 구조조정이 어렵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이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불분명한 입장을 보이자 경제개혁연대에서는 산업은행과 한진칼 사이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 여부 밝혀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또 실질적으로는 조원태 회장 측을 지지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언급을 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내놨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산업은행과 한진칼 측에서는 아시아나 인수합병 지원을 위한 것이라고만 설명하고 경영권에 대해서는 구속력 있는 어떠한 약속도 하지 않고 있다”며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3자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언급을 피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1561호 (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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