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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코로나19와 세계 대전] 세계는 백신 선점 전쟁 중 

 

군사작전까지 펼치며 선구매... 한국도 개발·확보 발걸음 종종

▎12월 8일 영국에 이어 14일부터 미국에서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지난 17일 미국 캘리포니아 밀밸리에 있는 레드우즈 전문간호시설에서 의료진에게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을 투여하고 있다. / 사진:EPA=연합뉴스
2020년 12월은 인류가 백신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대적으로 반격을 가한 역사적인 시기로 기록될 전망이다. 백신을 우선 확보한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접종을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8일 영국을 시작으로 14일 미국과 캐나다, 20일 이스라엘이 각각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의 접종을 시작한다. 독일은 27일 같은 백신의 일반 접종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같은 백신을 확보해 12월 하순에 접종을 시작할 예정이다. 유럽연합(EU)은 12월 중에 같은 백신의 회원국 동시 접종을 시작할 방침이며 싱가포르도 연내 접종을 시작한다.

2일 영국, 14일 미국에서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은 국제 백신 경쟁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았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백신을 먼저 접종한 이들 나라는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한 나라가 접종을 먼저 한다는 이야기는 그렇지 못하는 다른 나라보다 코로나에 대한 집단 면역을 우선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의 정상화와 경제활동의 재개를 조기에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정상화를 위해선 우선 인구의 75~80%가 접종을 받아 국가나 지역 공동체가 집단면역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모임과 여행이 가능해지고, 경제활동도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백신 승인, 물량 확보, 전국적인 보관과 운송 시스템 확보와 함께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집단 면역을 확보해야 지금 접종을 시작해도 일러야 내년 하반기, 늦으면 내년 연말께나 집단 면역 확보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 가운데 가장 관건은 백신 확보다. 백신을 확보하지 못하면 국민에게 접종할 수 없고, 확보 시기가 늦을수록 국민의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백신 우선확보 국가는 어떤 노력을 했기에 조기 접종이 가능했을까.

미국의 경우 ‘통큰 조기 투자’가 주효했다. 미국 연방정부는 지난 5월 15일 ‘와프 스피드 작전(Operation Warp Speed·OWS)’이라는 이름의 코로나 대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국은 최근까지 확진자 1758만명, 사망자 31만70000명이라는 전 세계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데, 와프스피드 작전을 시작한 5월 15일 미국의 확진자는 150만명을 막 넘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 백신은 물론 치료약, 그리고 진단기기를 망라한 종합적인 대응 수단의 개발과 생산, 그리고 분배를 가속화하는 폭넓은 대응 프로젝트를 가동한 것이다.

미국은 3월부터 제약사들에 백신개발 거액 투자


▎한국은 외국 제약사 4곳에서 코로나19 백신 4400만명분을 선구매했다. 백신은 2021년 초부터 순차적으로 국내에 들어올 예정인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모더나, 존슨앤드존슨- 얀센의 백신. (왼쪽부터) / 사진:연합뉴스
주목할 점은 와프(Warp)라는 단어 자체가 기초·기반·토대라는 의미라는 사실이다. 연방정부 차원의 백신 확보 작업에 전쟁이나 전투에나 붙일 법한 작전명까지 붙인 것을 봐도 이 프로젝트에 대한 미국의 기대를 짐작할 수 있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백신 확보였다. 당시 미국은 일찌감치 코로나 대응의 토대를 백신으로 잡고 개발과 확보에서 접종에 이르는 전체 프로세스 확보에 들어갔다. 백신 확보 작전의 목적은 간명했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코로나 백신 3억 명분을 분량을 2021년 1월까지 확보하는 것이다. 3억3100만 명에 이르는 미국 국민 중 성인 모두에게 접종할 정도의 분량이다.

미국 연방정부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백신 개발사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백신 등의 안전성과 효과를 확보하며 수요자들에게 더욱 빨리 공급할 수 있도록 행정적으로 지원·조정하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 연방정부는 이 작전을 시작하기 전부터 백신에 거액을 투자해왔다. 가장 먼저 3월 30일 미국 연방 보건복지부가 민간 제약사인 존슨앤존슨에 4억56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존슨앤존슨은 당시 백신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으며, 올해 여름에 제1상 임상시험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었다. 이 자금은 이 업체의 백신 후보 개발을 돕는 용도였다.

미국 연방정부의 민간 제약사의 백신 개발에 대한 지원 규모는 갈수록 늘어갔다. 4월 16일에는 제약사 모더나에 4억83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모더나는 코로나 백신인 m-RNA-1273을 개발해 미국에서 가장 먼저인 3월 16일 제1상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이 백신은 FDA로부터 신속 허가 대상으로 선정됐다. 모더나 백신은 미국 연방기관의 자금과 행정 분야 지원을 동시에 받은 셈이다.

미국 보건복지부는 5월 21일에는 아스트라제네카에 무려 12억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이 백신은 지난 8월 미국에서 약 3만 명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제3상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11월 2일의 미국 대선을 맞춰 개발 일정을 조정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미국 보건당국은 100종이 넘는 백신 후보 물질 중에서 14종 정도가 유망한 것으로 평가한다. 14종 중 7종은 기술 조건 등이 양호해 가능성이 더욱 높은 것으로 분류된다.

이런 지원 관계를 바탕으로 미국은 이미 7월에 화이자와 1억 회분, 8월엔 모더나와 2억 회분의 백신 구매 계약을 맺었다. 사전 투자와 연방정부가 총력을 다한 와프 스피드 작전으로 일찌감치 백신 물량을 확보한 것이다.

美, 국방부 동원해 백신 생산에서 공급까지 비상관리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0월 15일 국내 코로나19 백신 개발 점검차 SK바이오사이언스를 방문했다. / 사진:연합뉴스
백신 개발과 함께 생산 시설 증설에 대한 미국 연방정부의 지원도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개발이 불확실한 가운데 시설을 미리 증설하는 것은 기업으로선 상당한 손실 위기를 떠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된 다음에 재빨리 다량의 백신을 생산해 미국 전역에 공급하려면 생산 시설의 사전 증설이 필수적이다. 미국 연방정부가 민간기업의 생산시설까지 지원한 이유다. 미국 연방 보건복지부는 3월 30일에는 존슨앤존슨, 4월 16일엔 모더나, 5월 21일엔 아스트라제네카와 각각 생산 시설 증설 지원에 합의했다.

와프 스피드 작전은 연방기관의 행정 협업체계도 조직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게 거미줄 같은 협업 체계다. 이 작전은 질병통제예방센터(CDC)·식품의약국(FDA)·국립보건원(NIH)·생물의약품연구개발국(BARDA) 등 연방 보건복지부(HHS) 산하 각 조직과 국방부와 함께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수많은 민간 기업은 물론 농무부·에너지부·보훈부와 같은 다른 연방기관들끼리도 협업할 수 있도록 했다. 군사작전을 연상케 할 정도로 광범위하고 조직적이다. 이 작전에는 군이 직접적으로 개입하기도 했다.

심지어 백신을 담을 유리 용기 생산까지 관리했다. 개발과 생산이 완료된 백신의 신속하게 공급하기 위해 국방부도 지원하기로 했다. 백신의 개발, 허가, 생산, 공급에 이르는 거대한 과정 전체를 연방 기관이 관리해 효율을 극대화하기로 한 셈이다.

연방 보건복지부는 6월 1일엔 미국 내에서 백신은 물론 치료제 생산 능력도 함께 끌어올리는 ‘긴급 바이오솔루션스(Emergent BioSolutions)’ 명령을 발동하고 6억2800만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미국 국민에 대한 코로나 백신의 확실한 개발과 공급을 위해 모든 행정력과 자금을 쏟아 부은 것이다.

와프 스피드 작전은 공무원의 책상에서 마련되지 않았다. 기존의 인플루엔자 백신 공급 노하우에 코로나19의 확산 초기부터 수집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수립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먹구구가 아닌 과학과 기술에 기반했다. 미국이 과학기술력과 행정력, 그리고 자금을 백신 개발에 온통 쏟은 결과가 백신 확보와 조기 접종이다. 미국은 이를 통해 세계 백신 개발 경쟁에서 패권을 거머쥔 것이다.

백신 물량의 과반은 부유 국가들이 여름에 선점

이번에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공급된 화이자·바이오엔테크백신은 이미 지난 3월부터 두 회사가 공동으로 개발에 들어갔다. 독일 국제방송 DW는 미국 제약 기업인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 기업인 바이오엔테크가 백신 플랫폼 공동개발 계약을 3월에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양측은 중국 외의 지역에 백신을 공급하기로 하고 재정·생산·상업화에 대한 상세한 계약을 맺었다. 양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플루엔자 백신을 공동 개발하면서 협력체계를 구축해왔다. 공동 개발한 코로나 백신이 12월에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공급된 배경에는 이처럼 오랜 연구·개발 협력관계와 이미 지난 3월에 맺은 공공개발 계약이 자리잡고 있었던 셈이다. 일찍 준비하고 계획하며 실행했던 결과인 셈이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독일의 바이오 업체를 구입하겠다. 백신을 개발하면 미국 국민에게만 접종하도록 하겠다’는 발언을 계속했다. 발언은 논란을 불렀지만 트럼프 대통령도 백신의 가치는 일찌감치 인식했던 셈이다. 이와 관련해 바이오엔테크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우구르 사힌은 “지금은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상황이고 이는 국제적 협력을 요구한다”며 “동반자인 화이자와 힘을 합치면 백신이 필요한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노력을 더 빨리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을 미국 국민에게만 공급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요구를 완곡하게 거절하는 발언이다. 과학자의 자존심과 인도주의 정신이 묻어 나온다.

DW는 이 계약이 체결되던 당시 전 세계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7만9000명이고 사망자는 7000명 수준이었다고 보도했다.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력과 국제 협력체계를 바탕으로 누구보다 발 빠른 공동 개발에 나선 것이다.

백신 개발이 가속화하면서 이미 지난 여름쯤 경제적 여력이 있는 부유한 나라들은 선구매를 통해 백신을 다량으로 확보했다. DW 보도에 따르면 빈곤 해결과 불공정 무역에 대항하는 국제기구인 옥스팜은 지난 8월 “전 세계에서 개발 중인 5개의 주도적인 백신의 생산 능력은 59억 회분으로 이는 30억 명에게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이라고 지적했다. 옥스팜은 이 물량의 51% 정도가 미국·영국·유럽연합(EU)·호주·홍콩·마카오·일본·스위스·이스라엘 등 부유한 국가와 지역에서 선구매했다고 보도했다. 주목할 점은 시기다. 일본은 8월 초 화이자 백신 1억2000만 회분을 계약했으며, EU는 8월 스웨덴·영국의 다국적 제약업체인 아스트라제네카와 4억 회분의 백신을 공급받기로 계약했다. 2회씩 맞는다고 했을 때 4억4000만 EU 인구의 절반에게 접종할 수 있는 물량이다.

이스라엘은 정보기관까지 동원 해외서 백신 확보

DW는 전 세계에서 남은 백신 물량인 26억 회분을 방글라데시·중국·브라질·인도네시아·멕시코 등 개도국에서 구매하거나 구매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자금력이 있는 부자 나라나 부족한 개도국을 망라해서 이미 여름부터 백신 확보 전쟁이 벌어진 셈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해외 정보·공작 기관인 모사드가 주도적으로 방역물자와 백신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스라엘 일간지 예루살렘 포스트는 모사드가 이미 해외에서 백신을 확보해 국내에 들여왔다고 10월 27일 보도했다. 모사드는 정보망을 동원해 임상시험 결과를 입수해 어떤 백신이 안전하고 효과가 큰지를 미리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쓸 만한 백신을 확보해 우선 반입했다는 것이다.

신문은 모사드가 올해 2~5월에 코로나 방역에 필요한 마스크·개인보호장구·검사키트·호흡기 등을 해외에서 확보해 이스라엘로 반입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 5월 모사드의 요시 코헨 국장에게 감사를 표시한 것은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사드는 코로나 백신과 관련한 사이버 공격과 스파이 활동에 대한 보안 대책에도 관여하고 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어떤 나라에서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보안과 관련해 세계적인 능력과 경험을 인정받고 있다. 이스라엘은 올해의 경우 12월 10~18일인 전통 명절 하누카가 끝난 직후인 20일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하게 된다.

백신 확보에는 방역 실패 국가 성공 국가 할 것 없이 모두 열성이다. 방역에 실패해 수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낸 미국이나 이스라엘은 물론 비교적 방역에 성공했다는 홍콩·마카오·일본·인도네시아도 일찍이 백신 확보를 서둘렀다. 현재까지 홍콩은 인구 750만에 확진자가 7900명이 발생해 인구 100만당 1050명, 마카오는 인구 65만에 46명의 확진자가 나와 100만당 70명을 기록하고 있다. 마카오의 경우 사망자가 아직 1명도 보고되지 않았다. 일본은 인구 1억2620만에 18만7000명의 확진자가 나와 100만당 1481명, 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7480만에 64만3500명의 확진자가 나와 100만당 2341명에 이른다. 한국은 인구 5120만에 4만6400명의 확진자가 나와 인구 100만당 906명이다.

초기 방역 성과에 자만한 때문인지, 정부의 까다로운 규제가 과감한 백신 확보 조치의 발목을 잡은 것인지, 구매자가 갑이므로 백신은 언제라도 구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은 때문인지, 한국이 백신이라는 최종병기 확보를 게을리한 이유를 찾고 해결책을 마련할 때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565호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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