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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화되는 ‘노동이사제’ 도입] 노사 갈등 기폭제일까, 신뢰 회복 주춧돌일까 

 

反 “이미 노조 권한 보장” vs 贊 “독단 경영 견제 수단”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들이 지난 11월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총파업 전개를 선언하고 있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노동(근로)이사제’는 노사 갈등 기폭제인가, 신뢰 회복 주춧돌인가.

정부가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노동이사제를 둘러싼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재계는 “대결 구도인 국내 노사관계 상황에서, 노동이사 선임은 이사회 내의 노사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노동계는 “대주주의 독단 경영을 견제하기 위해 노동이사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제조업 중심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단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노동이사를 선임해 의사결정 과정에 노동자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공공기관위원회는 11월 25일 1년간의 논의 끝에 ‘공공기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합의’를 도출했다며, 국회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 논의를 조속히 실시하라고 건의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국내에 산별노조(동일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전체에 의해 조직된 노동조합) 구조가 정착돼 대부분의 노조가 상급단체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은 궁극적으로 민간 부문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노동이사제 도입 등이 담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3건이 올해 발의돼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의 김경협·김주영·박주민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개정안으로, 세부 내용엔 차이가 있다. 박주민 의원의 개정안은 3건의 개정안 가운데 노동이사 권한이 상대적으로 많은 개정안으로 꼽힌다. 발의안에 따르면 근로자 500명 이상 공기업·준정부기관은 상임이사(사내이사) 가운데 노동이사 2인 이상을 포함해야 한다. 노동이사는 1년 이상 재직한 근로자 중 소속 근로자들의 보통·평등·직접·비밀투표로 선출한다. 500명 미만 기관은 1인 이상의 노동이사를 선임해야 한다.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고” 노골적 불만도


김주영 의원의 개정안은 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공공기관 등에서 1년 이상 재직한 근로자 가운데 근로자 대표의 추천이나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얻은 1인 이상을 노동이사(비상임 사내이사)로 선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근로자 과반의 노조가 있으면, 노조 대표가 근로자 대표가 된다. 김경협 의원의 개정안은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근로자 대표가 추천한 1인을 노동이사(비상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내용이다. 근로자 과반의 노조가 있으면 근로자 대표는 노조 대표이며, 과반 노조가 없으면 근로자의 과반을 대표하는 자가 근로자 대표로 규정된다. 3건의 개정안 가운데 김 의원의 개정안이 정부 입장과 유사하다는 평가다.

재계에선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이 대립적 노사 관계 불씨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노사 대립의 상황에서 노동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하면, 이사회에서조차 노사 갈등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단체교섭이나 노사협의회 등을 통해 노동자의 목소리가 경영에 충분히 반영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 제4조(노사협의회의 설치)에 따라 30명 이상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노사협의회를 설치해야 한다”며 “노동이사 선임은 이미 비대한 노조 권한을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주민 의원 개정안의 경우 노동이사에게만 특혜로 작용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노동이사는 상임이사지만 해당 기관과의 근로관계는 유지하며, 노동이사 임기에 휴직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임원 신분인 상임이사는 경영성과에 따라 평가를 받는 직책인데 반해, 이 개정안의 노동이사는 실적에 대한 평가를 받지 않는다. 또 이 개정안은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임원은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는 반면, 노동이사는 3년 단위로 연임이 가능하다.

일각에선 한국처럼 주주자본주의 체제인 미국, 영국 등이 노동이사제를 도입하지 않은 데다, 노동이사제를 시행해온 일부 유럽 국가들이 노동이사제를 축소하고 있는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의 상위 30개(시가총액 기준) 기업 중 알리안츠그룹·바스프그룹 등이 노조의 경영 참여, 노동이사제의 비효율성 등을 이유로 독일 국적을 포기한 사례도 거론된다.

노동계 “사외이사는 거수기, 대주주 견제장치 전무”

반론도 만만치 않다. 노동계 등에서는 대주주의 독단 경영을 견제하기 위해 노동이사가 선임돼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외이사 거수기’ 논란이다. 대주주 등에 대한 감시·견제 역할을 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박상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은 “주주총회 과반 동의로 사외이사를 선임하다 보니, 지배주주 입맛에 맞는 사람만 뽑고 있다”며 “말만 사외이사고 사실상 거수기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가 12월 9일 발표한 ‘2020년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을 보면, 공시 대상 기업집단 상장사 266개에서 2019년 5월 15일부터 2020년 5월 1일까지 상정된 이사회 안건 중 무려 99.51%가 원안대로 가결됐다. 사외이사 반대 등으로 원안 통과되지 못한 안건은 전체의 0.49%(부결 8건, 기타 23건 등 총 31건)에 불과했다. 계열사 간 대규모 내부거래 안건(692건)의 경우 1건을 제외한 모든 안건이 원안 가결됐으며,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인 32개의 상장회사의 이사회 원안 가결률은 100%로 집계됐다. 이사회 내 설치된 내부거래위원회·감사위원회 등 내부위원회 역시 원안 가결률이 99.40%에 달했다.

266개 상장회사의 사외이사는 864명으로, 전체 이사(1696명) 중 50.9%를 차지했다. 이들 상장회사가 현행법에 따라 선임해야하는 사외이사 수(745명)보다 119명 많은 숫자다. 여기에 사외이사의 올해 이사회 참석률은 96.5%에 달해 최근 5년간 가장 높았다. 사외이사의 수와 이사회 참석률은 증가하고 있지만, 이사회 의사결정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외이사가 대주주 거수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센 이유다.

-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1566호 (202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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