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 갈등’에 거대 노조 독식 문제도 불거져
▎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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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노동(근로)이사제 도입 등이 담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공운법)을 추진하면서, 노동이사제를 두고 재계·노동계·지방자치단체 등 곳곳서 찬반으로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지난 2016년 국내 최초로 노동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서울시의 산하기관들은 최근 두 번째 노동이사를 선임하는 등 노동이사 2기에 접어들었다. 이들 기관 안팎에선 “노동이사제 도입 후 경영 투명성 향상 등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는 평가와 함께 노동이사 선출 과정에서의 노노 갈등이나 거대 노동조합의 노동이사 독식구조 등의 한계도 거론되고 있다.
서울시 산하 18개 기관서 노동이사제 시행서울시 등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 산하 18개 기관에서 노동이사가 선임돼 활동 중이다. 서울시 노동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노동이사는 공사 등의 소속 근로자 가운데 서울시장이나 기관장이 임명하는 비상임이사를 말한다. 공사는 서울시가 지방공기업법에 따라 설립한 공기업과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설립한 출연기관 등을 의미한다. 이들 기관 중 근로자 100명 이상인 경우 이사회에 노동이사를 포함시켜야 하며, 100명 미만인 기관도 이사회 의결을 거쳐 노동이사를 선임할 수 있다. 근로자가 300명 이상인 기관은 노동이사 2명을, 300명 미만인 기관은 노동이사 1명을 각각 임명하는 구조다.서울시뿐만 아니라 인천시·경기도·경상남도·광주시·부산시·울산시·전라남도·충청남도와 경기도 부천시·이천시 등도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면서 지자체 중심으로 노동이사제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이사제 도입을 두고 갈등을 겪는 곳도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부산교통공사 이사회는 지난 9월 노동이사제 도입을 보류한다고 밝혔다가 노조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10월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정관을 개정하면서 한발 물러났다.인천문화재단은 재단 노사협의회 운영규칙에 정의된 사용자(2급 이상의 보직자 및 인사·노무·회계 부서장)를 제외하면 노동이사에 지원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가 노사갈등을 겪었다. 인천문화재단 노조 측이 “재단에 3급 보직자가 많은 데다, 주요 간부인 창작지원부장과 시민문화부장 등도 3급이라 사용자 측에 가까운 이들이 노동이사에 선임되면 노동자를 대표할 수 없다”며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에 인천문화재단 측은 11월 사용자의 범위를 위임 전결권을 가진 보직자로 한정하고, 이를 제외한 이들을 대상으로 노동이사 모집을 재공고했다. 인천문화재단 관계자는 “보직자를 제외한 인원만 노동이사에 지원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그러나 실제 노동이사제를 운영 중인 기관들 안팎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서울시 노동이사제 운영 실태와 쟁점’에 따르면,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서울시 산하 16개 기관의 이사 49명(상임·사외·노동·당연직)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노동이사제 도입 이후 경영 투명성이 제고됐냐는 질문에 동의(매우 동의 포함)한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의 67%였다. 공익성이 제고됐다고 답한 비율은 55%, 이사회 운영의 민주성이 제고됐다고 답한 비율은 69%로 조사됐다. 반면 노동이사제 시행으로 이사회 의사 결정이 지연됐다고 답한 비율은 4%에 불과했다.문제는 노동이사의 대표성 문제, 노동이사 선임 과정에서의 노노 갈등 등 한계점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서울시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서울시설공단의 경우 직종별로 노조가 있어 이들 중 조합원이 많은 직종의 인사가 노동이사를 독식할 확률이 높다”며 “노동이사가 전체 노동자의 의사를 대변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라고 밝혔다. 서울시설공단에선 직종별로 이해관계가 다른 만큼, 노동이사 선임이 적기에 이뤄지지 않기도 했다. 지난해 서울시설공단 노동이사 1명이 중도 사퇴했으나 약 1년 동안 공석 상태였다.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는 “서울시설공단은 다른 기관과 달리 노조 추천 인사가 아니라 모든 임직원을 대상으로 노동이사를 공개 모집하기 때문에 시일이 걸린 것”이라고 해명했다.서울교통공사는 첫 노동이사 2명이 모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의 제1노조 소속 인사로 채워져 거대 노조가 노동이사를 독식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서울교통공사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서울교통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으로 노조에 유입된 인원들이 대부분 1노조에 흡수되면서 1노조와 2노조(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의 격차가 8대 2 정도까지 벌어졌다”며 “수적으로 우위에 있는 1노조가 노동이사를 독점하면서 적잖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다만 지난 9월 진행된 서울교통공사의 두 번째 노동이사 선거에서는 2노조 소속 후보도 당선됐다. 이 관계자는 “이번에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균형을 맞추는 차원에서 전략적인 투표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감사 의뢰권·청구권 부여해야” 지적도노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다소 제한적인 노동이사 권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시 노동이사제 실험, 성과와 과제’에서 노동이사 활동 지원을 위해 노동이사에 이사회 안건 부의권, 경영 사항에 대한 감사 의뢰권·청구권, 정보 열람권 및 자료 제공 요구권 등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귀천 이화여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노동이사제 조례의 쟁점과 개선 방향’에서 “다른 비상임이사와의 형평을 고려해 노동이사를 포함한 모든 비상임이사에게 감사 의뢰권·청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서울시는 노동이사 권한 확대 등과 관련해 노동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마련해 지난 4월 서울시의회에 상정했다가 철회했다. 개정조례안에는 노동이사에 이사회 안건 제출과 정보 열람 권한을 부여함과 동시에 중징계를 받은 노동이사를 직권면직하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동이사의 정보 접근 강화 등을 위해 조례 개정을 추진했으나 서울시의회가 각 기관의 정관 변경을 통해 노동이사의 권한을 강화하라는 의견을 전달해 철회했다”고 설명했다.현행 조례에 노동이사 선임 후 노조를 탈퇴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 노동이사가 회사와 노조 사이에서 고립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서울시 산하 기관의 한 노동이사는 “노조 탈퇴 후 오랫동안 활동해온 노조가 거리감을 표출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며 “사측에서는 노조 사람, 노조에선 사측 사람으로 인식되면서 고립감을 느끼는 노동이사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박귀천 교수는 “임기 동안에만 조합원 자격을 정지시키고 임기가 종료되면 조합원 자격이 복권되도록 하는 것도 대안”이라고 말했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