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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IT 사회학] 여성이 활약하는 사회, 그 희망은 디지털에서 

 

여성 중심 데이팅앱 상장 대박… 신작 게임 여성 캐릭터 비중도 증가

2월 11일 범블이 나스닥에 상장했다. 범블은 창업자 휘트니 울프 허드(31)가 인기 데이팅앱 틴더를 떠나 만든 데이팅앱이다. 허드는 틴더를 상대로 제기한 성추행 혐의 소송 합의금으로 여성 관점의 데이팅앱 범블을 만들었고 세계 최연소 자수성가 억만장자가 됐다. 지분 12%를 가진 창업자 휘트니 울프 허드(31)의 범블 지분 가치 2월 12일 기준 15억 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다.

일종의 복수극처럼도 보이지만, 고소전까지 치달았던 전 직장에서의 서러운 체험은 세상에 다른 관점을 주는 데 성공했다. 여성만이 먼저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는 단순 명쾌한 차별점은 남성 중심 데이팅앱에 지친 1억 명이 넘는 사용자에게 안도감을 줬다. 남성들에 의한 성희롱이 빈번하던 틴더와 달랐다. 상장 동시 주가는 80%가량 치솟았다.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by women, for women)” 캐치프레이즈는 명쾌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전 세계적으로도 예외적이라서 뉴스가 됐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인덱스에 따르면 자수성가한 남자와 여자의 비율은 20명당 1명뿐이었다. 단 500명이 1조8000억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91%가 남성에게 돌아갔다. 초격차 사회, 그 각각의 격차 안에서도 다시 남녀 차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빠른 변화를 추구하는 실리콘 밸리에서도 남녀 임금 격차는 예외가 아니다. 지난 2월 미국 노동부는 여성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만 저임금을 받고 있음을 발견했다. 미국 노동부는 심지어 구글조차 2014년부터 2017년까지 3000여 명 여성 엔지니어에게 낮은 급여를 지급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구글은 5500명 이상 직원과 구직자에게 25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구조적 차별에서 비롯한 남녀 임금 격차


한국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2019년 기준 3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다른 모든 남녀 차별 문제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공감을 충분히 얻고 있지도 않다. 차별이 아니라 차이라는 일부 주장도 나온다. 남녀 임금 격차는 곧 고액을 받을 수 있는 이공계 전공을 여성이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차별이 아니라 여성의 자발적 선택이 만든 차이일 뿐이라는 논리는 형태를 바꿔가며 반복된다. 여성은 일하는 시간이 더 짧다거나, 여성은 장기근속을 하지 않으려 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것이 설령 개인의 자발적 선택으로 보일지라도 왜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공감이 결핍돼 논의가 공회전한다. 여기에서 한 발만 헛디디면 여성은 다르게 태어났으니 결국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로 폭주하기도 한다. 유치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작년 기준 공공기관과 대기업의 여성 관리자 비율은 20%를 갓 넘었다. 이는 30~40%에 달하는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하면 월등히 낮은 수치지만, 여성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조차도 낮다. 여성은 어디서나 충분히 활약하고 있지 못하다. 왜 이런 것일까? 정말 모두 여성은 더 낮은 임금으로 가는 길을 스스로 선택한 것일까?

문제는 구조에 있다. 고용 관행이나 인사 구조 자체가 지금처럼 회사에 충성과 완전 몰입을 강요하고 있는 이상, 여성의 사회 진출은 여의치 않다. 가정을 유지하는 일을 여성의 책임이라고 떠넘기는 사회일수록 여성은 남성과의 경쟁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여성이 이미 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게임에서는 희생이 너무 크다.

이는 비단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치관이 다양해질수록 삶의 중심이 제각각일수록 개인이 회사에 기대하는 바는 천차만별이지만 총동원 문화의 성장기 기업은 이 다양성에 침묵한다. 사실 남성 중에도 관리직이나 리더로 승진하는 대신 자신의 직무에서 더 빛나기를 원하는 이도 있을 터다. 야근은 하지 못해도 아이디어로 차별화할 수 있다고 믿는 이도 있다. 삶의 다른 우선순위 때문에 풀타임은 힘들지만, 전문성으로 잠깐이라도 기여할 자신이 있는 이도 있을 터다.

디지털서 남녀차별 관념 철회 움직임 커져

이러한 이들의 자리가 늘 수 있다면 여성을 위한 자리도 늘 수 있다. 현대 사회의 모든 나라가 남녀 차별을 경계하는 이유는 더 좋은 세상을 위한 포용력과 다양성의 가장 기본이 남녀 성별, 즉 젠더라서다. 성 정체성, 인종, 장애 등 다양한 차별을 바로잡기 위한 첫걸음조차 쉽지는 않다.

2017년 유네스코의 조사에 의하면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학생의 단 35%만이 여성이었다. 미래의 직업을 만들어 내는 영역인 만큼 이는 각국에 경종을 울렸다. 특히 인공지능이 인간의 의사결정을 대신하기 시작하는 사회에 있어서 ‘편향’ 문제는 걱정되는 과제였다. 지금처럼 대부분 인공지능이 주로 백인 남자 개발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면,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정말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기에 아예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남자가 만든 시스템이 여성을 관리하는 디스토피아는 평등하기 쉽지 않다. 남성은 남성이 주인공인 세상에 길들어 있다. 성 역할 고정관념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뽀로로 등에서도 여성 캐릭터는 수동적 보조자로 그려지고만 있다.

최근 영국 정부는 ‘스테이 홈’이란 광고 하나를 철회했다. 집안에서 애를 보고, 청소하는 그림을 여성으로만 그렸기 때문이었다. 서울시 임신출산 정보센터는 임산부라면 입원 날짜에 맞춰 남편과 아이들의 속옷을 준비해 두고, 밑반찬을 챙겨두자는 게시물로 뭇매를 맞기도 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스스로 하고 싶은 소중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관이 당연하다는 듯 홍보하는 순간 세상은 벽을 느낀다.

다행은 새로운 롤모델을 찾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가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를 꾸밀 힘을 지닌 디지털은 좋은 도구가 된다. 작년 신작 게임의 18%가 여성 주인공이었다고 한다. 이는 전년도의 5%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이다.

게임 속 여성 캐릭터는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체험을 권한다.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게임은 도전과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획득하는 신체 감각을 가르쳐 준다. 이는 경영과 흡사하다. 성공한 많은 경영자에게서 승부사의 기질이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다. 문화 곳곳에 숨어들어 있던 고정 관념을 디지털은 하나하나 여성에게 해방해갈 수 있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1574호 (202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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