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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미얀마 유혈사태와 국제정세 갈등] 세계여 들리는가, 소녀의 피맺힌 절규가 

 

미얀마 군부독재의 국민 학살에 유엔은 뒷짐, 국민은 비통

▎한 미얀마 여성이 3월 4일 태국 방콕 유엔 건물 앞에서 미얀마를 구해달라고 촉구하는 집회에서 반 쿠데타 시위로 사망한 미얀마 국민을 애도하며 울고 있다. / 사진:REUTERS=연합뉴스
‘고요한 파고다의 나라’였던 미얀마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 2월 1일 쿠데타로 민주 정부를 무너뜨린 군부는 시민들이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자 무장 군경을 동원해 연일 유혈진압하고 있다. 일요일인 2월 28일 하루 18명의 사망자가 나온 데 이어 평일인 3월 4일에는 38명이 숨졌다고 유엔(UN)이 발표했을 정도다.

군경은 백주 대낮의 대도시 한복판에서 비무장 시민을 향해 마구 발포하는 것은 물론 치명적인 두부를 조준 사격하는 ‘헤드샷’ 저격도 서슴지 않고 있다. 유난히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지는 사람이 많이 나오는 이유를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군경이 시민을 향해 자동화기를 연발 사격했다는 증언, 기관총을 동원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시위가 벌어지는 도시 상공을 전투기들이 위력 비행을 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시위에 나선 젊은이나 심지어 지나가던 행인, 동네에서 놀던 어린이가 군경의 총을 맞고 죽어가는 유혈 현장이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 세계에 생생하게 전달됐다. 군경이 시민을 끔찍하게 구타하는 장면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SNS 중에서도 트위터는 미얀마 현장의 잔혹극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수많은 내외국인이 올리는 것은 물론 현재 독립 언론사들이 트위터를 창구로 활용하고 있어서다. 미얀마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트위터를 통해 현지 사정을 살펴봤다. 미얀마에서 올라온 트위터를 통해 살펴본 미얀마는 참혹했다.

미얀마 SNS엔 무장군경의 유혈진압 장면들로 도배

한 게시자가 올린 트윗에는 끔찍한 내용의 비디오가 올라있다. CCTV에 찍힌 장면으로 보인다. 왼쪽에 벽이 보이고 오른쪽에 정차되고 문이 열린 구급차량이 보인다. 그 사이에 헬멧을 쓰고 노란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꿇어 앉아있다. 앰뷸런스를 지원하는 구급대원으로 보인다. 그런데 경찰(POLICE) 표시가 있는 방패를 든 사람들이 거리에서 교대로 다가와 이들을 마구 때린다. 경찰은 차례로 다가와 발로 구급대원의 허리를 마구 차기도 하고 곤봉으로 팔과 몸을 때리기도 한다. 소총을 들고 와 개머리판으로 무지막지하게 구급대원들의 머리를 정면으로 내리치는 모습도 보인다. 게시자는 “이 파시스트 군부의 잔혹성과 야만성은 끝이 없다”고 적었다. 게시물을 읽지 않고 비디오만 봐도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잔혹극의 실체를 알 수 있을 정도다.

트위터에 오른 또 다른 비디오를 보면 2명의 군인이 축 늘어진 사람의 다리와 팔을 들어 옮기고 있다. 시위 도중 거리에서 희생된 사람의 시신을 숨기는 현장이다. 실제 알려진 숫자보다 더 많은 희생자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비디오다.

한 게시자는 시민을 유혈진압하고 체포자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하는 군경을 향해 이런 트윗을 올렸다. “그들은 군대가 아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간주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에 총을 맞고 있다. 군부의 폭력을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가급적 빨리 도와주세요.” 트윗에는 ‘미얀마 국민은 군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한다’는 게시물과 해시태그가 줄을 잇고 있다.

한 젊은 여성 게시자는 “그동안 K팝 아이돌을 응원하기 위해 트위터를 이용했지만 이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어 이를 사용한다”며 “우리는 정의가 필요하다. 미얀마를 구하자”라는 내용을 올렸다. 한 젊은 남성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우리는 결코 군화에 무릎 꿇지 않겠다”는 단호한 내용을 올렸다.

외국인도 동참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 동남아 에디터인 메슈 토스트빈은 에인절(천사)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19세 여성 키알 신 장례식 사진들을 올렸다. 키알 신은 만달레이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일하는 젊은이로 혈액형과 시위 도중 숨지면 장기를 기증한다는 내용의 글을 적어 목에 걸고 만달레이에서 시위를 벌였다. ‘다 잘 될 거야’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시위에 참가했다가 머리에 총격을 받고 숨졌다. 키알 신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시위에 나선 미얀마인의 상징이 되고 있다.

미얀마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가 2015년 국민민주연맹(NLD)을 이끌고 치른 선거에서 승리해 2016년 3월 집권하고 지난해 총선에서도 압승해 올해 3월 재집권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다. 5년간 민주 정권이 집권하고 문민통치가 이뤄졌다. 그런 나라에서 언제 그랬다는 듯이 군경이 시민을 학살하는 백주의 비극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사회는 21세기 백주 대낮에 벌어지는 이런 광기 어린 학살극과 인권 탄압이 언제까지 이어지고, 희생자가 얼마나 더 발생할 것인지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에 유혈 진압이라는 야만적인 반인권·반인륜적인 행동을 하면 국제사회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는 것일까. 하지만 실제로 국제사회는 이런 상황을 맞이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의 뒷짐 속에 극악무도해진 군부 횡포


▎3월 3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반 쿠데타 시위에 참가한 19살 소녀 키알 신(왼쪽 검은 티셔츠)이 무장 군경이 쏜 총격을 피해 숨던 모습. 소녀는 이날 시위 중 총을 맞고 사망했다. / 사진:REUTERS=연합뉴스
미얀마 군경의 시위대 학살을 눈앞에 보고도 미국도 중국도 아세안도 말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미얀마 군부를 강하게 압박하면 그 반작용으로 중국에 다가서면서 친중 정책을 펼까봐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미국 상무부가 3월 4일 쿠데타와 평화시위 유혈진압을 이유로 미얀마의 국방부·내무부 소유의 미얀마경제기업·미얀마경제지주회사 등 4곳을 수출규제 명단에 올린 정도다. 이에 따라 미국 기업이 이들 4곳과 거래하려면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상무부는 미국 기업들이 군사 목적으로 쓸 수 있는 물품을 미얀마에 수출할 때도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가 미국과 거래해 얼마나 이익을 보는지는 알 수 없다. 미얀마는 1962년 군사 쿠데타 이후 워낙 폐쇄 경제를 운용해 미국과의 거래를 막는다고 행동을 바꿀 것으로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제재가 미얀마 군부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 이란에 대해 금융 제재를 하는 수준으로, 미얀마와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은행은 미국과 거래할 수 없게 해도 워낙 폐쇄 경제 전통이 강한 미얀마에선 군부가 고통을 받을 가능성이 작다.

중국은 그런 미얀마 군부를 자국 편으로 포섭할 생각에 미얀마 군부에 강하게 나설 수가 없다. 게다가 국민이 시위로 권력에 항의하는 것은 중국에선 금기가 되어가고 있다. 위구르족 같은 소수민족이나 홍콩 같은 특구에서 주민 저항이 확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중국은 석유·가스관 등 일대일로와 관련한 프로젝트가 많은 미얀마의 실권을 장악한 군부를 거스를 생각이 없다. 어차피 민주주의나 국민의 자유, 인권은 중국이 지향하는 가치가 아니다.

미얀마 군부 편 드는 중국의 비토에 목소리 못 내는 유엔


▎태국에 거주하는 미얀마 이주민들이 3월 4일 방콕에서 반 쿠데타 시위 중 숨진 미얀마 국민의 사진들을 걸고 추모하고 있다. / 사진:AFP-=연합뉴스
미얀마가 가입한 아세안은 코로나와 자국 정치 등으로 ‘제코가 석자’인 상황이다. 베트남 같은 일당독재 국가나, 군부가 쿠데타로 집권한 태국에선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가 이 문제를 거론하는 정도다. 아세안은 전반적으로 타 회원국의 국내 문제는 ‘내정 간섭’이라는 이유로 따지지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의 대대적인 국민 학살을 방관할 경우 아세안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회의론이 나올 수도 있다.

쿠데타 전인 1월부터 미얀마에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무료 제공해온 이웃 인도가 군부를 설득할 가능성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도는 미얀마에 그 정도 영향력은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누구의 압박이나 간섭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가운데 자신감을 얻은 군부가 학살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군부는 국민 경제 투자·성장·생활 악화는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다. 오랫동안 워낙 폐쇄 경제라 제재도 효과가 없다.

가장 큰 다자외교의 무대인 유엔을 보자. 영국이 현재 순번제 의장인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쿠데타 직후 규탄 성명을 내려고 했지만 상임이사국으로 비토권을 쥐고 있는 중국이 ‘내정 간섭’이라고 반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가 4일 성명을 내고 “미얀마에서 2월 1일 쿠데타 이후 군경에 의해 최소 54명이 숨지고 1700명 이상이 구금됐다”며 미얀마 군부에 “살인을 중단하라”고 촉구한 것이 가장 큰 목소리다. 이 숫자는 유엔인권사무소가 확인한 것으로 실제 사망자가 더 많을 수 있다. 아울러 수백 명이 부상하고 언론인 29명을 포함해 최소 1700명이 구금됐다고 밝혔다.

바첼레트 대표는 칠레 대통령과 유엔여성기구 대표를 지낸 인물로, 의대 재학 중이던 1973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를 겪었다. 당시 공군 장성인 아버지가 쿠데타에 반대해 바첼레트는 체포와 수감을 반복하다 호주와 동독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이 때문에 바첼레트는 누구보다 군부 독재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인물로 통한다.

미얀마에선 1988년 3월부터 9월까지 전국적으로 400만이 넘는 시민들이 군부독재와 일당독재, 경찰의 잔혹 행위, 부패와 경제난 등에 항의한 ‘8888 봉기’의 역사가 있다. 그 해 8월 8일 미얀마의 상징인 높이 98m의 불탑인 슈웨다곤 파고다(쉐다곤 파고다로도 알려짐) 주변에만 50만 명이 모이는 등 최대 도시 양곤(당시엔 수도)에 100만 명이 모여 시위를 벌여 8888봉기로 부른다. 당시 사망자는 350~1만 명까지 편차가 있지만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만은 분명하다. 미얀마에도 끈질긴 저항과 민주주의 추구의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2007년엔 군부의 석유와 가스 값 기습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반정부 투쟁으로 번진 ‘샤프론 혁명’이 벌어졌다. 당시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불교 승려들의 가사 색깔에서 기인하는 샤프론 혁명은 군부 발표 13명부터 민주단체 주장 200명까지 사망자의 편차가 크다. 당시에도 군경은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과 저격을 벌였다.

국민 탄압에 강제 개입 명시한 유엔 국제규범도 미작동

이번에도 군부라는 국가 권력에 의해 시위대가 사망했으니 바첼레트 유엔 인권대표가 관여하고 우려를 표하며 자제를 촉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월 28일 하루에 군경의 총격으로 18명이 숨진 ‘피의 일요일’에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이 성명을 내고 “국제사회가 함께 나서 군부를 향해 선거로 표출된 미얀마인의 뜻을 존중하고 억압을 멈춰야 한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엔 수장으로서 할 말은 했지만 행동은 할 수가 없었다. 안보리가 아무런 결의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얀마인들은 SNS에 ‘얼마나 더 죽어야 유엔이 나설 것인가’라는 해시태그를 붙이고 있다. 미얀마 국민이 유엔의 실질적인 행동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SNS에 이런 해시태그를 붙인 청년이 시위 도중 가슴에 총을 맞고 숨지는 일도 있었다.

이 해시태그를 구체화한 것이 국민을 대놓고 학살하는 군부에 대응해 유엔에 ‘보호책임(R2P·Resposibility to protect)’을 촉구하는 움직임이다. 트위터에는 시위대의 단호한 결의나 군경 유혈 진압의 폭력성과 잔혹성을 보여주는 비디오나 사진, 글에 게시물에 그치지 않고 ‘#R2P’ ‘#R2PMyanmar’ ‘#R2PforMyanmar’ 등 R2P를 요청하는 다양한 해시태그가 달리고 있다. 이 해시태그를 올리는 미얀마 시민은 유엔이 군부에 외교적·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것을 넘어 유엔군을 조직해 국민을 학살하는 군부를 눌러줄 것을 요구한다.

R2P 또는 RtoP는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하는 기본적 의무를 행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국제사회 전체가 해당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국민에 대해 보호의 의무를 진다는 새로운 국제정치 개념이다. 혼란에 빠진 실패국가나 국민을 탄압하는 독재국가에서 심각한 인권침해나 국민 학살이 이뤄지면 국제사회가 해당 국가의 주권을 일시적으로 무시하고 인도주의 확립을 위해 개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2005년 유엔정상회의에서 인정하고 2006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재확인을 거쳐 국제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국가가 집단학살·전쟁범죄·인종청소·반인륜범죄 등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면 국제사회가 강제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원칙이다. 2001년 캐나다가 주도한 ‘개입과 국가 주권에 관한 국제위원회(ICISS)’에서 제시한 논리로 이의 발동을 위한 조건으로 올바른 의도, 최후의 수단으로서 군사개입, 개입 기간의 최소화, 사태를 악화하지 않는다는 합리적 전망, 유엔안보리의 결의안을 비롯한 정당한 권위라는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이 개념은 실제로 사용된 전례가 있다. 2007~2008년 케냐에서 인종 학살이 벌어졌을 때, 2011년 코트디부아르의 혼란, 2011년 리비아 내전, 2013년 중앙아프리카 혼란 등에서 유엔이 나섰다. 시리아와 브룬디, 예멘의 인도주의적 위기에서도 개입을 선언했다. 하지만 효과는 부분적이었다. 2014년엔 유엔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가 북한 정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데 대한 국제사회의 보호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현재로선 R2P가 미얀마의 비극을 끝낼 거의 유일한 출구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결국 조속한 해결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미얀마의 비극이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575호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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