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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교황의 세계평화 순례와 남북 평화] 이라크 찾아간 교황… 다음 방문지는 북한으로 

 

교황청의 중재외교책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물꼬 터보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3월 6일 이라크 나자프를 방문해 이슬람 시아파 최고 성직자,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와 만나 종교간 공존을 논의했다 / 사진:바티칸뉴스=AFP=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의 3월 5~8일 이라크 방문은 많은 우려에도 성공적이었다. 교황청의 공보를 담당하는 공식 매체인 바티칸 뉴스에 따르면 교황은 3월 10일 수요일 일반 알현 행사에서 이라크 내 이슬람 시아파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티니를 만난 것과 관련해 “잊을 수 없는 만남이었다”고 말했다.

교황은 84세라는 고령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테러 우려와 치안 불안이라는 3중 악재를 뚫고 나흘간의 이라크 방문을 무사히 마쳤다. 그는 예수의 사도인 성 베드로에서 시작해 지난 2000년 동안 266대까지 이어진 교황 가운데 처음으로 메소포타미아 땅을 밟았다.

이라크는 인구의 99%가 무슬림이고 기독교도가 1%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라크는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의 유일신 사상이 시작된 곳이다. ‘믿음의 조상’으로 존경 받는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 문명 초기 국가인 수메르의 우르 출신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종교·문화적 뿌리가 같아 ‘아브라함 종교’로 불리는 이 세 종교의 근원지다. 이라크는 ‘역사와 종교의 땅’인 셈이다.

이라크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고대 바빌로니아와 신바빌로니아, 그리고 아시리아가 명멸했으며 페르시아의 지배 지역이기도 했다. 신바빌로니아에 점령당한 유대민족이 바빌론에 끌려와 유배 생활을 하다 이를 정복한 페르시아에 의해 가나안으로 귀향하기도 한 지역이다. 622년 이슬람이 등장한 뒤에도 다양한 기독교 분파가 신앙을 지켜온 지역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독교 공동체로 평가 받는다. 북부 모술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요나와 다니엘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교황은 10일 행사에서 “주님이 내게 이라크 방문을 허락해 요한 바오로 2세의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전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년, 재임 1978~2005년) 당시 이라크 방문을 추진했으나 안전 문제로 무산됐음을 지적한 것이다. 전쟁과 테러의 땅인 이라크 방문은 교황청의 오랜 숙제였음을 재확인한 발언이다. 교황은 이라크 방문 기간 중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많은 박해를 받은 이라크 기독교 공동체를 위로하고 종교간 대화와 공존, 그리고 평화를 강조했다.

3월 5일 이라크의 바그다드 국제공항에 도착해 무스타파 알카드히미 총리의 영접을 받은 교황은 이날 바흐람 살레 대통령을 만나는 등 바티칸 국가원수로서 일정을 가장 먼저 소화했다. 이어 바그다드에 있는 동방 가톨릭 교회를 방문했다. 2003년만 해도 약 150만 명에 이르던 이라크의 기독교인은 내전과 테러 속에서 최근 약 40만 명 수준으로 줄었다. 해외로 떠난 사람이 많다. 교황은 이들을 위로하고 고난 속에서 지켜온 신앙에 경의를 표했다.

타 종교 지도자들 만나 “우린 같은 뿌리 한 형제”

다음날인 3월 6일은 종교간 대화와 공존을 모색한 날이었다. 이라크 남부의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를 방문해 이슬람 시아파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와 만났다. 역사적인 회동이었다. 교황은 알시스타니에게 ‘평화로운 공존’을 강조했다. 나자프는 시아파에서 첫 이맘(이슬람 지도자)으로 여기는 알리의 무덤이 있는 도시다. 알리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이며 시아파 신앙의 핵심인 후세인의 부친이다. 시아파가 무함마드의 유일 합법 후계자로 여기는 인물인데 우마이야 왕조 4대 칼리프를 지내다 암살됐다.

교황은 이날 근처에 있는 고대 수메르의 도시 우르의 유적지를 찾았다. 우르는 기원전 3800년쯤에 처음 건설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도시로 아브라함이 기원전 2166년쯤에 태어난 도시다. 우르 유적에 있는 텔엘무카야르라는 언덕을 아브라함이 태어난 생가로 생각한다. 아브라함의 이름은 구약성서와 쿠란에 이름과 신앙이 기록됐다. 유대인과 아랍인 모두 그를 조상으로 여긴다.

유대교에선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유일신을 믿은 인물로 본다. 기독교에서도 같은 이유로 ‘믿음의 조상’으로 여긴다. 이슬람에선 이브라힘으로 부르는 그를 아담에서 무함마드에 이르는 25명의 예언자의 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특히 진실한 믿음의 상징으로 여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을 아브라함을 기원으로 하는 유일신 사상을 바탕으로 서로 공통적인 신앙과 철학을 공유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세 종교를 중심으로 여기에서 파생된 다른 종교들을 합쳐 ‘아브라함 종교’로 부른다.

따라서 교황이 우르를 찾는 것은 가톨릭 수장으로서 신앙의 근원을 따져보는 의미가 있다. 뿌리가 같은 아브라함 종교끼리 서로 갈등하지 말고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서로 평화와 공존을 도모하자고 호소하는 의미가 크다. 교황은 우르 유적에 있는 아브라함의 생가 터(추정)에서 이슬람을 비롯한 이라크의 타종교 지도자들을 만났다. 교황은 이들과 만나 종교 화합을 강조하는 생사를 벌이며, 이라크에서 테러와 박해로 갈수록 줄어가는 기독교 공동체와 평화롭게 공존해줄 것을 당부한 셈이다.

교황의 이라크 방문에서 하이라이트는 7일 이라크 북부 도시들을 찾아 미사를 집전하고 신앙을 지킨 교인들과 전쟁의 고통을 겪은 현지 주민을 위로한 행사일 것이다. 가톨릭 세계의 영적 지도자로서 활동에 무게를 실었기 때문이다.

이날 아침 북부 쿠르드 자치구의 아르빌에서 헬기를 타고 니나와 주에 있는 이 나라 제2의 도시이자 북부 최대 도시인 모술에 도착했다. 니나와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고대국가 아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의 현대 발음이다. 모술의 구시가지 중심지인 모술 광장의 주변에는 중동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2015~2017년 이 도시를 점령하는 동안 파괴한 교회 4곳이 위치하고 있다. 당시 니나와 주에 살던 기독교도 수십만 명은 생존을 위해 이 도시를 떠나야 했다. 교황은 그런 비극의 현장을 찾아 생존 교인들과 현지 종교지도자들과 자리를 함께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호소했다.

교황은 일부가 파괴된 모술의 알타헤라 가톨릭 성당 앞에서 “문명의 요람이었던 이 나라가 그토록 야만스러운 공격으로 고대 예배당이 파괴되고 수많은 무슬림과 기독교인, 야지디족 등이 강제 이주되고 살해됐다”고 지적하며 피해를 위로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는 형제애가 형제살해죄 보다 더 오래 가고, 희망이 증오보다 더 강력하며, 평화가 전쟁보다 더 위력적임을 재확인한다”고 희망을 강조했다.

종교 갈등 빚는 박해 지역 찾아가 희망 북돋아


▎프란치스코 교황이 3월 7일 시리아 난민 압둘라 쿠르디(왼쪽)를 위로하고 있다. 그는 시리나 내전을 피해 지중해를 건너다 익사한 어린이 알란 쿠르디의 아버지다. 그림엔 아들이 해안가에서 숨진 채 발견된 모습이 담겨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이 연설은 극단주의자의 타종교 박해는 기독교도나 야지디족에겐 물론이고 무슬림에게도 피해임을 강조했다. 야지디족은 2014년부터 IS로부터 박해 받고 학살됐으며 수많은 여성이 납치돼 성노예가 되는 고난을 겪었다.

교황은 모술의 교회 파괴 현장에서 30㎞쯤 떨어진 이라크 북부의 기독교 도시인 카라코시의 알타헤라 가톨릭 교회를 방문해 미사를 집전했다. 이곳은 이라크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기독교 마을이다. 역시 IS 점령 기간에 교회는 파괴되고 주민들은 박해를 받았다.

교황은 이어 아르빌의 축구 경기장에서 수천 명이 참석한 대규모 미사를 집전하고 “여러분과 함께하면서 슬픔과 상실의 목소리와 동시에 희망과 위로의 목소리도 들었다”며 “이라크는 나의 마음 속에 항상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아르빌 미사 뒤 2015년 9월 터키에서 작은 보트를 타고 그리스 코스 섬을 향해 지중해를 건너다 배가 뒤집히면서 익사한 시리아 난민 어린이 알란 쿠르디(당시 3세)의 부친 압둘라 쿠르디를 만나 위로했다. 교황은 이날 가족을 잃은 아버지의 고통과 슬픔에 귀를 기울였다고 바티칸 뉴스는 전했다. 교황은 이날 바그다드로 이동한 뒤 하루를 묵고 이튿날인 8일 바흐람 살레 이라크 대통령 내외의 환송 속에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떠나 로마로 향했다. 교황은 자신들을 환영하고 여행을 지원한 이라크에 대해 10일 “이라크인들을 통해 평화와 형제애의 지평이 열릴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며 “이라크 국민은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으며 자신들의 존엄을 재발견할 권리가 있다”고 덕담을 했다. 그러면서 그런 이라크가 겪어온 비극과 관련해 반전의 목소리를 높였다.

교황은 “무엇이 바그다드를 파괴했나. 그것은 전쟁”이라며 “전쟁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그 모습을 바꾸면서 지금도 계속 인간성을 말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에 대한 대답은 또 다른 전쟁이 아니며, 무기에 대한 대답은 또 다른 무기가 아니다”라며 “그 대답은 바로 형제애”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이라크는 물론 분쟁 중인 많은 지역,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가 직면한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이 이처럼 전쟁과 갈등의 현장을 찾아 증오를 거두고 평화와 공존을 추구할 것을 호소하는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이래 초지일관 추구해온 길이다. 그간 행적과 이번 일정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77세였던 2013년 3월 13일 즉위한 뒤로 전 세계를 다니며 사랑과 관용, 그리고 공존을 역설했다.

전쟁 현장에서 인간성 말살 지적 평화·공존 호소

교황의 주요 방문국을 살펴보면 가톨릭이나 기독교 국가는 물론 이슬람·불교 국가와 종교가 사실상 사라져가는 일당 독재 공산국가까지 찾았음을 알 수 있다. 교황은 가톨릭 지도자를 넘어 세계평화와 공존, 화해와 소통을 추구한 글로벌 지도자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교황의 첫 해외 방문은 전임 베네딕토 16세 시절에 약속이 됐던 브라질을 2013년 처음 방문한 것이 시작이었다. 2014년엔 이스라엘·요르단·팔레스타인을 찾았다. 기독교도가 소수인 지역이다. 그 해 한국에 이어 알바니아와 프랑스, 그리고 터키를 방문했다. 알바니아는 테레사 수녀를 배출했지만 무슬림이 다수이고 기독교도가 소수다. 터키는 동방정교 이스탄불 대주교가 자리 잡고 있지만 주민의 절대다수가 무슬림이다.

교황의 종교간 대화와 공존 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5년엔 불교국가인 스리랑카와 가톨릭 국가(남부에는 무슬림 인구가 다수)인 필리핀에 이어, 무슬림인 보스니아인과 동방정교도인 세르비아인, 그리고 가톨릭인 크로아티아인이 1990년대에 내전을 벌였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찾았다. 미국을 찾으면서 공산국가인 쿠바도 방문했다. 쿠바는 2016년 다시 방문했으며, 그 해 카프카스 지역의 정교 국가 조지아와 무슬림 국가 아제르바이잔도 찾았다.

2017년에는 다수 무슬림과 소수 곱트 기독교도가 공존하는 이집트에 이어 로힝야족 추방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미얀마와 70만 명 이상의 로힝야 난민을 받은 이웃 방글라데시를 찾았다. 정치적인 발언은 없었지만 방문 자체로 핍박 받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됐을 것이다. 교황의 방문 자체가 평화와 공존에 대한 강력한 압박이 되고 있다.

2019년에는 무슬림 국가지만 수많은 다종교·다문화 외국인 이주민을 품고 있는 중동의 아랍에미리트(UAE)를 찾아 미사를 집전했다. UAE는 마침 2019년을 ‘관용의 해’로 선포하고 다종교·다문화의 공존을 강조했다. 교황은 그 해 또 다른 무슬림 국가인 모로코도 방문했다. 그 해 불교국가인 태국과 기독교 인구가 희박한 일본도 찾았다.

이처럼 서로 다른 종교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서로 공존과 평화를 추구하자는 것이 바로 교황의 뜻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황의 북한 방문에 새로운 기대가 모아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8년 10월 교황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요청 의사를 전달받은 적이 있다. 당시 교황은 “공식적으로 초청하면 갈 수 있다”고 화답했다. 교황이 만일 방북을 한다면 한반도와 북한이 전 세계의 주목을 다시 한 번 받을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을 넘어서는 강력한 이미지의 이벤트가 될 수 있다. 북핵 문제도 해결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

지난 3월 11일 이백만 전 주교황청 대사는 교황의 중재외교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에 기여할 수 있다며 교황의 방북 성사를 위해 정부가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전 대사는 이날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종교분과위원회 회의에 외부 발제자로 “교황은 한국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정책을 강력하게 지지하며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북미관계 개선에 많은 관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황청의 외교적 위상을 활용해 교황청의 중재외교 정책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에 접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교황의 북한 방문은 이를 위한 핵심 열쇠라는 이야기다.

교황의 북한 방문 추진하려는 물밑 외교 시동

문제도 적지 않다. 교황청은 유엔 회원국 가운데 중국과 북한만 승인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과 함께 유엔의 옵저버 회원국인 바티칸은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다른 모든 회원국을 승인하고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이라크와도 1930년대에 대표를 파견해 관계를 유지했으며 이라크전 당시 유일하게 현지에 공관을 유지했다.

바티칸은 중국 대신 종교 자유가 있는 대만을 승인하고 있으며,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과는 공식 관계가 없다. 하지만 공식 관계가 없다고 방문하지 않을 교황이 아니다. 보안문제에다 코로나19까지 겹쳐도 이라크까지 다녀온 교황이다. 명분만 있으면 얼마든지 북한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그 명분과 계기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마침 미국에도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서 새로운 대중·대북 정책의 가동을 시작하고 있어 시기적으로도 나쁘지 않다. 오는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이용해 교황청에 방북 의사를 타진할 수 있을 것이다. 백신의 위력으로 행사가 대면으로 이뤄지면 문 대통령이 교황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다. 코로나19를 이유로 외국의 원조물자도 받지 않겠다는 북한을 설득하는 게 가장 큰 관건이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576호 (202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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