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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종교 지도자들 만나 “우린 같은 뿌리 한 형제”다음날인 3월 6일은 종교간 대화와 공존을 모색한 날이었다. 이라크 남부의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를 방문해 이슬람 시아파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와 만났다. 역사적인 회동이었다. 교황은 알시스타니에게 ‘평화로운 공존’을 강조했다. 나자프는 시아파에서 첫 이맘(이슬람 지도자)으로 여기는 알리의 무덤이 있는 도시다. 알리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이며 시아파 신앙의 핵심인 후세인의 부친이다. 시아파가 무함마드의 유일 합법 후계자로 여기는 인물인데 우마이야 왕조 4대 칼리프를 지내다 암살됐다.교황은 이날 근처에 있는 고대 수메르의 도시 우르의 유적지를 찾았다. 우르는 기원전 3800년쯤에 처음 건설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도시로 아브라함이 기원전 2166년쯤에 태어난 도시다. 우르 유적에 있는 텔엘무카야르라는 언덕을 아브라함이 태어난 생가로 생각한다. 아브라함의 이름은 구약성서와 쿠란에 이름과 신앙이 기록됐다. 유대인과 아랍인 모두 그를 조상으로 여긴다.유대교에선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유일신을 믿은 인물로 본다. 기독교에서도 같은 이유로 ‘믿음의 조상’으로 여긴다. 이슬람에선 이브라힘으로 부르는 그를 아담에서 무함마드에 이르는 25명의 예언자의 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특히 진실한 믿음의 상징으로 여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을 아브라함을 기원으로 하는 유일신 사상을 바탕으로 서로 공통적인 신앙과 철학을 공유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세 종교를 중심으로 여기에서 파생된 다른 종교들을 합쳐 ‘아브라함 종교’로 부른다.따라서 교황이 우르를 찾는 것은 가톨릭 수장으로서 신앙의 근원을 따져보는 의미가 있다. 뿌리가 같은 아브라함 종교끼리 서로 갈등하지 말고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서로 평화와 공존을 도모하자고 호소하는 의미가 크다. 교황은 우르 유적에 있는 아브라함의 생가 터(추정)에서 이슬람을 비롯한 이라크의 타종교 지도자들을 만났다. 교황은 이들과 만나 종교 화합을 강조하는 생사를 벌이며, 이라크에서 테러와 박해로 갈수록 줄어가는 기독교 공동체와 평화롭게 공존해줄 것을 당부한 셈이다.교황의 이라크 방문에서 하이라이트는 7일 이라크 북부 도시들을 찾아 미사를 집전하고 신앙을 지킨 교인들과 전쟁의 고통을 겪은 현지 주민을 위로한 행사일 것이다. 가톨릭 세계의 영적 지도자로서 활동에 무게를 실었기 때문이다.이날 아침 북부 쿠르드 자치구의 아르빌에서 헬기를 타고 니나와 주에 있는 이 나라 제2의 도시이자 북부 최대 도시인 모술에 도착했다. 니나와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고대국가 아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의 현대 발음이다. 모술의 구시가지 중심지인 모술 광장의 주변에는 중동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2015~2017년 이 도시를 점령하는 동안 파괴한 교회 4곳이 위치하고 있다. 당시 니나와 주에 살던 기독교도 수십만 명은 생존을 위해 이 도시를 떠나야 했다. 교황은 그런 비극의 현장을 찾아 생존 교인들과 현지 종교지도자들과 자리를 함께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호소했다.교황은 일부가 파괴된 모술의 알타헤라 가톨릭 성당 앞에서 “문명의 요람이었던 이 나라가 그토록 야만스러운 공격으로 고대 예배당이 파괴되고 수많은 무슬림과 기독교인, 야지디족 등이 강제 이주되고 살해됐다”고 지적하며 피해를 위로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는 형제애가 형제살해죄 보다 더 오래 가고, 희망이 증오보다 더 강력하며, 평화가 전쟁보다 더 위력적임을 재확인한다”고 희망을 강조했다.
종교 갈등 빚는 박해 지역 찾아가 희망 북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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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현장에서 인간성 말살 지적 평화·공존 호소교황의 주요 방문국을 살펴보면 가톨릭이나 기독교 국가는 물론 이슬람·불교 국가와 종교가 사실상 사라져가는 일당 독재 공산국가까지 찾았음을 알 수 있다. 교황은 가톨릭 지도자를 넘어 세계평화와 공존, 화해와 소통을 추구한 글로벌 지도자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교황의 첫 해외 방문은 전임 베네딕토 16세 시절에 약속이 됐던 브라질을 2013년 처음 방문한 것이 시작이었다. 2014년엔 이스라엘·요르단·팔레스타인을 찾았다. 기독교도가 소수인 지역이다. 그 해 한국에 이어 알바니아와 프랑스, 그리고 터키를 방문했다. 알바니아는 테레사 수녀를 배출했지만 무슬림이 다수이고 기독교도가 소수다. 터키는 동방정교 이스탄불 대주교가 자리 잡고 있지만 주민의 절대다수가 무슬림이다.교황의 종교간 대화와 공존 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5년엔 불교국가인 스리랑카와 가톨릭 국가(남부에는 무슬림 인구가 다수)인 필리핀에 이어, 무슬림인 보스니아인과 동방정교도인 세르비아인, 그리고 가톨릭인 크로아티아인이 1990년대에 내전을 벌였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찾았다. 미국을 찾으면서 공산국가인 쿠바도 방문했다. 쿠바는 2016년 다시 방문했으며, 그 해 카프카스 지역의 정교 국가 조지아와 무슬림 국가 아제르바이잔도 찾았다.2017년에는 다수 무슬림과 소수 곱트 기독교도가 공존하는 이집트에 이어 로힝야족 추방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미얀마와 70만 명 이상의 로힝야 난민을 받은 이웃 방글라데시를 찾았다. 정치적인 발언은 없었지만 방문 자체로 핍박 받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됐을 것이다. 교황의 방문 자체가 평화와 공존에 대한 강력한 압박이 되고 있다.2019년에는 무슬림 국가지만 수많은 다종교·다문화 외국인 이주민을 품고 있는 중동의 아랍에미리트(UAE)를 찾아 미사를 집전했다. UAE는 마침 2019년을 ‘관용의 해’로 선포하고 다종교·다문화의 공존을 강조했다. 교황은 그 해 또 다른 무슬림 국가인 모로코도 방문했다. 그 해 불교국가인 태국과 기독교 인구가 희박한 일본도 찾았다.이처럼 서로 다른 종교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서로 공존과 평화를 추구하자는 것이 바로 교황의 뜻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황의 북한 방문에 새로운 기대가 모아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8년 10월 교황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요청 의사를 전달받은 적이 있다. 당시 교황은 “공식적으로 초청하면 갈 수 있다”고 화답했다. 교황이 만일 방북을 한다면 한반도와 북한이 전 세계의 주목을 다시 한 번 받을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을 넘어서는 강력한 이미지의 이벤트가 될 수 있다. 북핵 문제도 해결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지난 3월 11일 이백만 전 주교황청 대사는 교황의 중재외교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에 기여할 수 있다며 교황의 방북 성사를 위해 정부가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전 대사는 이날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종교분과위원회 회의에 외부 발제자로 “교황은 한국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정책을 강력하게 지지하며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북미관계 개선에 많은 관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황청의 외교적 위상을 활용해 교황청의 중재외교 정책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에 접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교황의 북한 방문은 이를 위한 핵심 열쇠라는 이야기다.
교황의 북한 방문 추진하려는 물밑 외교 시동문제도 적지 않다. 교황청은 유엔 회원국 가운데 중국과 북한만 승인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과 함께 유엔의 옵저버 회원국인 바티칸은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다른 모든 회원국을 승인하고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이라크와도 1930년대에 대표를 파견해 관계를 유지했으며 이라크전 당시 유일하게 현지에 공관을 유지했다.바티칸은 중국 대신 종교 자유가 있는 대만을 승인하고 있으며,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과는 공식 관계가 없다. 하지만 공식 관계가 없다고 방문하지 않을 교황이 아니다. 보안문제에다 코로나19까지 겹쳐도 이라크까지 다녀온 교황이다. 명분만 있으면 얼마든지 북한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그 명분과 계기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마침 미국에도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서 새로운 대중·대북 정책의 가동을 시작하고 있어 시기적으로도 나쁘지 않다. 오는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이용해 교황청에 방북 의사를 타진할 수 있을 것이다. 백신의 위력으로 행사가 대면으로 이뤄지면 문 대통령이 교황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다. 코로나19를 이유로 외국의 원조물자도 받지 않겠다는 북한을 설득하는 게 가장 큰 관건이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