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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선 심리학 공간] 내 고민을 남에게 털어놓아도 될까 

 

정서적 공감 얻기 위한 본능… 일시적으로 해소되나 본질적인 문제 해결 안돼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마음의 고통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끙끙 앓아야 한다면 얼마나 외로울까? 그 외로움에, 혼자 끌어안고 있는 상처가 더 깊어질 것이다. 가슴 바닥에 묵직하게 내려앉은 고민을 가족에게, 절친에게 말하고 난 후에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해방감을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깊은 시름까지 갈 것도 없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주변 사람들에게 일상에서 벌어진 시시콜콜한 사건들, 그로 인해 경험한 사소한 감정 변화에 대해서도 곧 잘 늘어놓곤 한다. ‘털어놓기’는 사람이 사회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그야말로 인간적인 행위다.

그렇다면 아무 생각 없이 마음속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도 괜찮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털어놓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내 안의 상처를 다독이고자 꺼내놓은 속생각이 도리어 나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심리학자 버나드 리메(Bernard Rime)는 누구나 털어놓기에 대한 욕구가 있을지 궁금했다. 털어놓기가 인간의 보편적인 경향성이라면 주로 어떤 종류의 괴로움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하고, 그 대상은 누구일지 말이다. 또 이렇게 속시원히 이야기하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행위인지 연구를 진행했다.

과도한 털어놓기는 소문과 가십을 낳을 뿐

마음이 힘들 땐,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다른 이에게 토로하고 싶어했다. 이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국적도 불문했다. 속마음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는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속성이다. 공유하는 감정의 종류도 다양하다. 두려울 때나 짜증날 때, 화가 나거나 불안할 때, 혹은 우울한 감정이 들면 내 맘을 알아줄 다른 사람을 찾는다. 그 괴로움이 클수록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은 욕구도 더 강해진다. 다만 한 가지 예외는 있다. 수치스러울 때는 입을 열지 않는다.

속을 터놓는 대상은 주로 배우자나 파트너, 친구들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여성과는 달리 남성의 경우에 성인이 되면 친구들에게는 더 이상 속마음을 꺼내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배우자나 파트너가 자신의 말에 귀기울여 주지 않으면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털어놓기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기대한 대로 마음 상태가 나아질까? 수많은 연구 결과를 비롯해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친한 동료가 내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것만으로 마음이 풀릴 때가 있다. ”아!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바로 이 점을 확인하고 싶어서 누군가를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걱정해주는 동료의 눈빛, 그것 하나면 충분할 때도 있다.

그러나 털어놓기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리메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예상하는 것과는 달리, 내 사정을 남에게 호소한다고 해서 부정적인 감정 상태가 호전되는 것은 아니다. 일시적으로 기분이 나아지긴 하지만 고달픔이 사라지진 않는다. 다음 날이 되면 괴로운 기억이 다시 올라오고 마음 속은 여전히 어지럽다.

고통이 지속되는 이유는 내가 처한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전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 혹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한 압박에서 벗어나는 길은 상황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전경(bird’s-eye view)’을 확보하는 것이다. 친구에게 아픔을 토로한다고 해서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 털어놓는 일에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있다. 미시간대학의 심리학자 에단 크로스(Ethan Kross)가 그의 저서 [내면의 소리(Chatter)]에서 소개한 바에 따르면 과도한 털어놓기는 사람들이 나에게서 더 멀어지도록 만든다. 수천 명의 중학생들을 7개월 동안 관찰한 결과, 속마음을 친구들에게 지나치게 털어놓게 되면 다양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상한 소문과 가십 거리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청소년에게만 해당되는 현상이 아니다. 자신의 괴로움을 줄곧 이야기하는 사람일수록 더 큰 심리적 고통을 느끼는 반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서적 위로와 사회적 지지를 얻어 내지는 못했다. 가까운 사람조차 나를 부담스러워 할 수 있다. 속상한 마음을 누구에게 주로 털어놓는지 떠올려보자. 혹시 가장 신뢰하는 어떤 이에게 지속적이고 일방적으로 괴로움을 토로하고 있는가? 그의 머릿속에서 나는 두려움·불안함·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개념들과 연합되어 있다. 우리 안엔 다른 사람의 털어놓기를 들어줄 수 있는 주머니가 있는데 그것이 넘치도록 남의 걱정거리를 듣게 되면 심리적 방전 상태가 된다.

그렇다고 입을 닫고 살 수는 없다. 털어놓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올바른 방법으로 적절하게 마음속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지 다음 여섯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자.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자극하는 상대에게 털어놔야

첫째,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내 속마음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둘째, 털어놓기로 무엇을 얻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내가 처한 상황도, 내 행동이나 감정 상태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동일한 방식을 고수해야 할까? 셋째, 일방적으로 한 사람에게 계속 기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자.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상호성’이다. 주거니 받거니, 털어놓기에도 균형이 요구된다.

넷째, 혹시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긴 세월동안 털어놓고 있는가? 이젠 마무리를 해야 할 시점이다. 다섯째,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에게 털어놓는 게 좋을지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사람은 내가 다른 시각을 갖도록 자극해주는 사람인가? 내 약점과 강점을 인식하게 해주고, 희망을 찾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인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에게 털어놓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

마지막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것보다 상담전문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들이 받는 훈련은 다양한 관점으로 사건과 상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충동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털어놓기를 하는 것보다는 하루나 이틀 정도 잠잠하고, 고요하게 자신을 지켜보면 어떨까?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감정이 달라질 때가 제법 있다. 현명한 털어놓기로 자신을 지키면서 실효성 있는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행복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 필자는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심리과학이노베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이다.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을,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학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아메리카 온라인(AOL)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Netscape)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유튜브 ‘한입심리학’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1576호 (202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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