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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윤 브랜드 스토리] 변하지 않되 변화하는 명품 브랜딩의 법칙 

 

구찌, 매출 절반 이상이 35세 이하 고객에서 창출... MZ세대 겨냥한 디지털 전략으로 부활한 버버리

▎ 사진:구찌
“It’s all Gucci!”

당신은 이 말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미국에서 이 문장을 ‘그거 전부 구찌네’라고 해석하면 ‘아재’가 된다. ‘걱정하지 마 문제 없어’라고 해석하면 MZ세대(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통칭)를 이해하는 쿨(cool)한 사람이다. 비슷한 말로 ‘It’s so Gucci’라고 하면 ‘멋지다’ ‘쿨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명품 브랜드의 소비자가 바뀌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전문회사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MZ세대의 등장 이후 이들이 명품소비의 30%를 구성한다. 2017년 한해 명품시장 성장의 85%가 MZ세대의 구매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세계적 컨설팅 그룹 맥킨지가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명품시장의 40%가 MZ세대에 의해 판매 될 것이며 명품 유통의 20% 가량이 매장이 아닌 온라인을 통해 일어 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명품 브랜드 최초로 밈(MEME) 도입 등 혁신 이끌어내


▎ 사진:버버리
마케팅에 있어 브랜드가 주는 가치의 비중이 가장 큰 럭셔리 브랜드들이 MZ세대에 집중 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MZ세대와 어떻게 소통 할 것인가는 비단 플랫폼 브랜드의 숙제가 아니라 럭셔리 브랜드의 생존과 연결된 절박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구찌의 전성기는 전설적 디자이너인 톰포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있을 당시다. 톰포드가 구찌를 떠나자 브랜드는 매출의 30%이상이 급감하며 무려 11년 동안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위기의 국면에서 2015년 구원투수로 등장한 CEO가 마르코 비자리다. 그는 컨설팅 그룹 ‘액센츄어’의 컨설턴트 출신으로 디자인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구찌의 모회사인 케링 그룹에 속해 있는 보테가 베네타를 장인의 브랜드로 포지셔닝하고, 매출을 2배로 끌어올린 마르코 비자리는 그룹 경영진의 신뢰를 바탕으로 케링그룹의 주력 브랜드인 구찌의 CEO로 등장한다. 여기서 그는 구찌의 액세서리를 담당했던 무명의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구찌의 디자인과 브랜드를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하는 승부수를 던진다.

미켈레는 괴짜스럽지만 세련된 ‘긱시크(geek chic)’와 애플이 주도하는 미니멀리즘이 풍미하는 시대에 과할 정도의 장식성을 강조하는 맥시멀리즘을 디자인 콘셉트로 디자인에 새로운 바람을 넣었다. 진이나 가죽 재킷 위에 자수를 과감하게 넣어 구찌의 컬렉션을 새롭게 해석하면서도 브랜드의 헤리티지(heritage, 유산)를 해치지 않는 미켈레식의 창조성 비젼을 제시했다. 그가 재해석한 ‘디오니소스 백’과 ‘프린스타운 로퍼’가 없어서 못 파는 대박 상품이 된 것은 유명하다.

이들 콤비는 명품시장의 고객들이 젊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비자리는 “MZ 세대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욕구가 있으며 콘텐트, 감정, 주위 사람과의 연결에 의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라고 갈파했다. 태어날 때부터 컴퓨터를 곁에 두고(M세대),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Z세대) 이들 디지털 네이티브를 잡기 위해 스냅챗을 명품 브랜드 중 가장 먼저 이용하고, 인스타그램을 주 매체로 활용하는 등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명품이 브랜드 이미지의 손상을 우려해 시도하지 않던 밈(meme, 이미지나 GIF에 자막을 입히는 형태의 짧은 동영상)을 시계 라인업 론칭에 도입, 1억2000만명에게 도달하기도 했다. 또한 새로운 MZ세대의 감성에 적응하기 위해 기성세대의 감성에 빠진 경영진들의 의식 혁신이 필요하다고 밀어붙여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을 도입한 것은 사내에 실질적인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임원회의 이후 30세 이하로 이뤄진 ‘섀도 커미티(shadow committee, 그림자 위원회)’에서 직원들의 관점으로 다양한 비판을 거침없이 내게 했다. 이를 통해 MZ세대에게 기업의 사회적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의견을 듣게 된다. 모피 사용제품의 명가 구찌가 모피사용 제품의 생산을 중단하는 혁신적 결정을 끌어내고, 구찌 플레이스(구찌브랜드와 연관된 지역에 가면 폰에 알람이 울리고 그곳에서만 판매하는 한정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앱) 같은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러한 새로운 경영진의 브랜드 전략에 힘입어 구찌는 2018년 세계 50대 혁신 기업에 선정되었고, 매출은 전년 대비 50% 가까운 성장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매출의 절반이상이 35세 이하의 MZ세대에 의해 만들어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젊은 명품 브랜드가 됐다. 물론 지난해엔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면세점 매출 비중이 큰 구찌의 매출이 급감하긴 했다.

트렌치코트와 체크무늬로 유명한 영국의 럭셔리 브랜드 버버리 역시 고루하고 보수적인 브랜드 이미지로 수년간 경영적자에 시달리다 과감한 디지털 전환과 더불어 밀레니얼 세대와의 소통을 통해 젊은 명품으로 재탄생한 것으로 유명하다. 좌초 위기에 있던 2006년, 버버리는 새로운 CEO 안젤라 아렌츠를 영입하며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과거 도나카란 등에서 근무하면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던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크리에이티브 디랙터로 합류하면서 이들 둘은 환상의 호흡으로 버버리의 재탄생을 성공적으로 만들어갔다.

당시 버버리의 문제는 버버리가 지나치게 브랜드를 확장하면서 정체성 즉 ‘버버리다움’이 희석되어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아랜츠는 버버리의 자기다움은 트렌치코트에 있다고 파악하고, 모든 전략을 트렌치코트 중심으로 수립했다. 버버리는 ‘아트 오브 더 트렌치(Art of the trench)’라는 글로벌 켐페인을 만들어 전세계에 트렌치코트의 유행을 다시 불게 했다.

트렌치코트를 중심으로 재정의한 ‘버버리다움’

제품도 버버리의 헤리티지가 손상되지 않으면서 새로운 디자인을 가미한 수백 가지의 디자인 옵션을 만들었다. 사내의 보상시스템도 과거의 주력제품인 폴로 셔츠의 10배 이상이 돌아가도록 바꾸었다. 또한 직원들에 대한 내부 브랜딩을 강화했다. 역사와 전통을 가진 버버리의 트렌치코트가 한땀 한땀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전 직원이 이해하고,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고객의 구매경험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렌츠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는 작업과 더불어 그때까지 럭셔리 브랜드들이 외면하고 있던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할 수 있는 새로운 디지털 전략(Fully Digital Burberry)을 수립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해 수요 예측, 재고 최적화를 하는 것은 물론 모든 매장의 제품에 RFID칩을 내장해 제품의 정보와 피팅 등을 모든 직원들의 아이패드를 통해 보여줘 고객 경험을 이제까지의 명품 브랜드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바꿔 놓았다.

애플과의 협업이 브랜드 가치 제고에 큰 효과를 보이자 아렌츠에 이어 CEO가 된 크리에이티브 디랙터 크리스토퍼 베일리도 글로벌 SNS는 물론 한국의 카카오, 일본의 라인을 비롯해 유망 신예 아티스트, 드림웍스 등과의 콜라보를 통해 ‘명품 민주주의(Democratic Luxury)’를 실현했다. 이후 2018년 새롭게 버버리에 영입된 리카르도 티시 크리에이티브 디랙터와 마르코 고베티 CEO는 대대적인 브랜드 리뉴얼을 통해 버버리를 더욱 더 혁신적인 디지털 패션 브랜드로 전환시켰다.

버버리는 이를 통해 매출에서의 턴어라운드와 더불어 전 세계 SNS상 5000만 이상의 팔로어를 만들어냈다. 나아가 전체 매출의 50% 이상이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완벽한 디지털 브랜드로의 전환은 물론, 밀레니얼 세대 ‘최애템’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디지털 마케팅과 브랜드 전략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뉴욕대 스턴스쿨의 스콧 갤러웨이 교수가 이끄는 브랜드 싱크탱크인 L2가 버버리를 전 세계 82개 명품 패션브랜드 중 최고의 디지털 성공사례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명품 브랜드의 가치는 브랜드가 가진 변하지 않는 브랜드 헤리티지에 있다. 브랜드가 가진 철학과 그것을 반영한 제품의 물리적 가치가 변하지 않을 때 누구나 가질 수 없었던 명품이 빛을 발했다. 디지털 시대, 명품 브랜드를 지속시키는 가치는 변하지 않되, 소비자를 향한 ‘변화’가 없으면 그 헤리티지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이들 두 브랜드의 부활에서 배운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대학교수다. 제일기획과 공기업, 플랫폼과 스타트업에서 광고와 마케팅을 경험했다. 인도와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글로벌 마케팅에 관심을 가졌고, AR과 플랫폼 기업에 관여하면서 플랫폼 기업의 브랜딩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광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신대 평화교양대학 교수다.

1577호 (2021.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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