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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이동 1위 알뜰폰의 과제는] 이통 3사 시장 과점을 깨라 

 

MZ세대 트렌드로 부상했지만 한계 뚜렷… 5G 시장에서 존재감 드러내야

▎올해 알뜰폰의 1월 번호이동 수는 이동통신사보다 많았다. / 사진:연합뉴스
119만3017건. 지난해 알뜰폰으로 번호이동 한 숫자다. 2018년엔 99만9917건, 2019년엔 86만5696건으로 2년 연속 100만 건을 밑돌았는데, 2020년 들어 대폭 늘었다. 이동통신 3사와 견줘도 부끄럽지 않은 실적이다. SK텔레콤(167만3832건)·LG유플러스(131만6061건)보단 적지만, KT(117만6371건)를 앞질렀다.

알뜰폰의 성장세는 올해 들어 더 가파르다. 지난 1월엔 콧대 높은 이동통신 3사를 눌렀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이 각각 11만2153건·8만2098건·8만5344건의 번호이동 실적을 내는 동안 알뜰폰 사업자는 14만7644건의 번호이동 실적을 달성했다. 독점적 성격이 짙은 한국 이동통신 시장에서 거둔 유의미한 성적이다.

알뜰폰 업계의 몇 년 전 상황을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이다. 특히 2019년 4월 5G 이동통신을 상용화한 직후 알뜰폰 가입자가 대형 이동통신사로 옮겨가는 움직임이 거셌다. 당시 이동통신 3사는 5G 단말기에 막대한 보조금을 쏟았는데, 알뜰폰 사업자는 5G망을 빌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정부의 통신비 인하 압박으로 대기업 통신사가 ‘선택약정 할인 확대’, ‘중저가 LTE 요금제 출시’ 등의 마케팅을 펼치자 상황이 더 악화했다. 알뜰폰 업계의 핵심 경쟁력이 바로 ‘저렴한 요금제’였기 때문이다. 하창직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 사무국장은 “2019년만 해도 당장 사업을 접겠다고 고민하는 기업이 여럿이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반전의 기회는 금세 찾아왔다. 단초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아이러니하게도 알뜰폰 사업자의 생존을 위협하던 ‘5G’였다. 더 정확하겐 ‘5G의 부실한 품질’이었다. 서비스 초기 5G는 서울·수도권 지역이라도 해도 속도가 나오는 곳이 드물었고, 건물 내부에선 아예 먹통이기 일쑤였다. ‘비싸기만 할 뿐 잘 터지지 않는 서비스’란 인식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알뜰폰 흥행의 또 다른 배경은 스마트폰 제조사가 조성했다. 비싸 봐야 100만원 안팎이던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가격이 최근 들어 상승했다. 가령 지금 시장에 출시된 ‘아이폰12 프로맥스’의 출고가는 149만~190만원 수준이다. 그간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 시리즈 중 가장 고가다. 삼성전자 ‘갤럭시Z플립’의 출고가는 134만9700원, ‘갤럭시Z폴드2’는 239만8000원이다. 여기에 비싼 5G 요금제까지 더해지면 소비자 입장에선 선뜻 지갑을 열기 어렵다.

‘프리미엄 단말기알뜰폰 LTE 요금제’ 유행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신 단말기를 구입하되 요금제라도 아껴보자’란 수요가 생겼다. 이중 얼리어답터 성향이 강한 MZ세대가 꾀어낸 방법은 ‘자급제 프리미엄 스마트폰+알뜰폰 LTE 요금제’의 결합이었다. 자급제는 단말기를 제조사직영·인터넷매장·전자제품매장 등에서 사고, 요금제는 각각의 통신사와 계약하는 방식이다. 특히 자급제로 단말기를 사면, 5G 전용 단말기일지라도 LTE 요금제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렇게 MZ세대를 중심으로 ‘프리미엄 단말기+알뜰폰 LTE 요금제’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이런 유행은 통계로도 잘 드러난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2월 482만2000여 대로 추정되던 자급제 단말기 사용자 수는 2020년 7월 534만9000여 대로 급증했다. 알뜰폰의 번호이동 실적이 증가하는 시점과도 맞물린다. 그런데도 알뜰폰 업계는 “축배를 들기엔 이르다”고 자평한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정도로 사업 경쟁력을 갖춘 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5G 시장 점유율 확보’다. 품질 논란을 겪곤 있지만, 시장의 패러다임이 LTE에서 5G 중심으로 바뀌는 건 수순이다.

그런데 이 시장에선 알뜰폰이 좀처럼 힘을 못 내고 있다. 요금제의 경쟁력이 낮기 때문이다. 유플러스알뜰모바일의 5G 요금제를 보자. 6만800원(데이터 180GB 제공), 3만6950원(데이터 9GB의 경우)이다. 이에 비해 LG유플러스의 5G 요금제는 7만5000원(150GB), 4만7000원(6GB)으로 높지만, 대형 이동통신사 가입자만 누릴 수 있는 선택약정할인을 적용(월 요금 25% 할인)하면 알뜰폰보다 가격이 떨어진다. 알뜰폰이 유독 5G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알뜰폰 업체가 LTE나 5G 요금제를 팔면 망을 빌려준 통신사가 수익의 일정 퍼센트를 가져가는 구조로 돼 있다. 결국 요금제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알뜰폰 업계가 역마진을 감수하고서라도 출혈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아직 그런 비용을 감당할 만큼의 가입자를 확보하지 못했다.

‘효도폰’ 이미지 벗어야

올해 1월 기준 알뜰폰 5G 누적 가입자 수는 6680명에 그친다. 5G 시장 전체(1286만9930명)와 비교하면 0.05%에 불과하다. 더구나 최근 이동통신 3사는 5G 요금제를 더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미래 5G 시장에서 알뜰폰의 존재감이 지금보다 옅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알뜰폰 시장이 대기업 계열사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SK텔레콤은 SK텔링크, KT는 KT엠모바일과 KT스카이라이프, LG유플러스는 미디어로그와 LG헬로비전 등을 알뜰폰 계열사로 두고 있다. 이들 5개사는 올해 1월 알뜰폰 번호 이동 실적의 63.1%를 차지했다. 막강한 모 회사의 지원을 등에 업은 덕분이다.

하지만 이는 알뜰폰의 출범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알뜰폰은 정부가 이동통신사의 독과점을 깨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정책 사업이다. 이들 계열사가 알뜰폰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는 건, 이통사의 시장 권력만 커진 꼴이 된 셈이다.

‘알뜰폰’ 브랜드에 쌓인 케케묵은 이미지를 벗어나는 일도 시급하다. 최근의 알뜰폰 호실적을 이끈 건 젊은 세대인데, 알뜰폰 브랜드엔 어르신들이 사용하는 ‘효도폰’ 이미지가 너무 짙어졌다. 정부의 정책 사업으로 대국민 공모를 통해 알뜰폰이란 이름을 붙인 게 벌써 9년 전의 일이라서다.

이용구 전국통신소비자협동조합 이사는 “출범 10년을 앞둔 알뜰폰 시장은 투자나 고용을 늘리거나 신규 사업을 꾀할 만큼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지 못했다”면서 “자체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국민 불만이 높은 이동통신 시장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1577호 (2021.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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