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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소법’ 첫 시행 현장 가보니] “1호가 될 순 없어” 금융사 초긴장 

 

설명 의무 위반 시 최대 1억원 과태료… “금융당국, 분명한 가이드라인 제시해야”

▎ 사진:김하늬 기자
“고객님, 오늘부터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됩니다. 모든 상품 설명은 녹취를 해야하니 양해바랍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이 첫 시행된 3월 25일 서울 중구 모 시중은행의 오전 분위기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이날 첫 고객인 최군예(54)씨는 은행원 김모(35)씨에게 고위험 주가연계펀드(ELF) 상품에 가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금소법에 제시된 6대 판매 원칙(적합성·적정성·설명의무·불공정영업행위 금지·부당권유금지·광고 규제)을 설명하며 최씨의 투자성향을 분석했다. 상담은 1시간 가까이 걸렸지만 최씨는 원하는 금융상품을 소개받을 수 없었다. 금소법에 따르면 최씨가 원하는 상품은 그의 투자 성향에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최씨는 “모은 돈으로 이제야 재테크 좀 하려 했더니…섭섭하네”라며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다. 다른 증권사 영업점 분위기도 평소와 다를바 없었다. 모 증권사 사원 전모(32)씨는 고객이 상품과 적합하다고 판단되자 녹음 시스템을 이용해 상품 설명을 고지했다. 그는 “법 시행일이라고 딱히 혼란이 일어나진 않았다”면서도 “다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서 긴장은 늦추지 않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소비자보호 ‘취지’ 좋지만… “세부 규칙 미비해 혼란”


첫 시행일, 혼선을 빚을 것으로 예상됐던 금융사 현장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다만 금소법 위반 ‘1호’가 되지 않기 위한 직원들의 긴장한 표정들이 역력했다. 자칫 법을 위반한 ‘1호’로 낙인 될 경우 회사 이미지 타격은 물론 예금·펀드·카드 등의 상품에 대한 신뢰성을 잃을 수 있어서다.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의 불완전 판매를 차단하기 위해 3월 25일부터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금융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금융사와의 분쟁 시 보호장치를 마련하려는 취지다. 상품 판매자에 대한 책임도 대폭 강화했다.

주요 내용은 △기능별 규제 체계로의 전환 △6대 판매 원칙의 확대 적용 △금융소비자에 대한 청약철회권과 위법계약해지권 보장 △분쟁 조정 절차의 실효성 확보 △징벌적 과징금을 통한 사후 제재 조치 강화 △금융교육의 법제화 등이 있다.

구체적으로 위법계약해지권은 금융사가 6대 판매규제를 지키지 않을 경우 상품 계약일부터 5년 이내 또는 금융사의 위법 사실을 안 날부터 1년 이내에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금융회사에는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판매 직원도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물을 수 있다. 청약 철회권은 소비자가 원하면 일정 기간 안에 위약금 없이 계약을 깰 수 있는 권리다. 대출 상품은 14일, 보장성 보험은 15일 안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금융권은 금소법 시행의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준비시간이 촉박했다고 입을 모았다. 취지는 좋지만 감독규정이 두루뭉술하고 세부규칙은 제대로 제시돼 있지 않아 갈피를 못 잡겠단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자체기준 마련, 시스템 구축과 같이 준비기간이 필요한 일부 규정은 그 적용을 최대 6개월 유예키로 했다.

업계가 특히 문제를 삼고 있는 조항은 ‘청약 철회권’과 ‘위법계약해지권’이다. 우선 청약철회권은 행사 횟수 제한이 없어지는 만큼 대출에 악용하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우려다. 청약을 철회하면 이자를 물지만, 본인의 ‘대출 기록’이 삭제돼 신용점수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또 청약 철회 상품이 확대되다 보니 주가연계펀드(ELF), 주가연계증권(ELS)의 경우 목표 수익률 달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 A시중은행 관계자는 “일정 수익률을 추구하는 ELF나 ELS의 경우 모집기간에 청약철회 기간이 추가되면 15일 동안 투자를 못한다”며 “만일 소비자가 청약철회권을 주장하면 해당 상품의 이자 지급이나 고유 계정 처리 등과 같은 세부 규칙 등은 마련돼 있지 않아 혼란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일부 증권사들은 법적 컨설팅을 받아 ‘금소법 리스크’를 대비하고 있다. B증권사 관계자는 “감독 규정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세부 규칙이 없어 만약의 문제를 대비해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라 녹음과 메일뿐만 아니라 출력 서류도 준비해 보수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중”이라고 전했다.

은행들은 가뜩이나 위축된 펀드 판매가 금소법 시행으로 대폭 줄 것을 우려했다. 불완전 판매 상품의 판매 과정에서 이의제기가 없던 고객이 펀드 손실이 날 때 계약해지를 요구하는 식으로 악용 소지가 다분하단 지적이다. C시중은행 관계자는 “불완전 판매 입증 책임이 금융 기관으로 넘어오면, 판매과정부터 은행이 준비할 게 많아져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라고 토로했다.

복잡한 상품 설명에 대한 우려도 있다. 펀드·파생상품·신탁과 같은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할 때 평소보다 20~30분 가량 늘어서다. D증권사 관계자는 “주식투자자의 경우 성향 자체가 쉽고 빠른 설명을 원하는데 상품 철회 등 설명이 긴 부분까지 녹취하면서 고객을 응대해야 한다”며 “상품 설명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적합성 원칙에 어긋나면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 제공도 제한돼 소비자들의 불만도 높아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제시한 적합성, 적정성 등 6대 판매기준의 내용이 모호하다”며 “가이드 라인도 범위가 너무 넓다. 실제로 전화로 상품 설명 도중 비행기가 떠 녹음이 되지 않아 가입 동의를 했는지 안했는지에 대한 소송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금융위는 6개월의 유예기간을 줄 것이 아니라 금소법 세부 규칙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떨고 있니”… ‘1호’ 않기 위해 비대면 서비스 대거 ‘스톱’

금소법의 예기치않은 후폭풍도 나오고 있다. 당장 은행들은 비대면 상품 판매를 대거 중단했다. 펀드 등 고위험 금융상품 가입 ‘문턱’이 높아지면서 소비자가 큰 불편을 겪게 됐다. 주요 시중은행은 금소법 위반 ‘1호’가 되지 않기 위해 3월 25일부터 무인단말기, 키오스크 등을 통한 비대면 상품판매와 AI(인공지능) 서비스 등을 속속 중단했다. KB국민은행은 4월30일까지 스마트 텔러 머신(STM) 서비스를 중단했고, 신한은행도 STM과 같은 성격의 ‘유어 스마트 라운지’ 내 서비스 중 상품 판매 서비스를 중단했다. 우리은행 역시 예금과 펀드, 신용카드 신규 발급 등을 키오스크 등을 일부 이용을 못하도록 했다. 하나은행은 AI 로보 어드바이즈 서비스인 ‘하이로보’의 맞춤 펀드 추천 기능을 5월 9일까지 일시 중단했다. NH농협은행은 아예 비대면 일부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비대면 금융 상품의 경우 금소법을 대비한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에서다.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오프라인 금융사의 경우 그간 은행권 공동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소비자보호법상 ‘6대 판매원칙’과 같은 법상 준수사항이 차질 없이 시행될 수 있도록 대체로 잘 준비했다”면서 “다만 비대면이나 온라인 서비스 분야는 좀 더 들여다 볼 부분이 있는데 이번 법 시행을 계기로 금융소비자들이 강화될 권리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홍보를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금소법이 전체를 다 만족하진 못하지만 ‘반걸음’ 진보했다고 본다”라며 “위법 계약해지권을 처음부터 법으로 지켜줬다면 파생결합펀드(DLF), 라임자산운용 등과 같은 불완전판매 사태는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스기사] 금소법 Q&A

3월 25일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으로 금융 소비자는 위법계약해지권 등 금융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받지만, 해지 시점 이전에 이미 지급한 펀드 수수료나 대출 이자 등은 돌려받지 못한다. 또 현재 농협, 새마을금고 등에선 금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금소법 ‘10문10답’ 중 주요 내용을 간추렸다.

▶ 소비자가 위법계약해지권 행사 시 수수료, 위약금 내야 하나?

위법계약해지권이란, 금융사가 판매규제를 위반한 경우 소비자가 계약을 중도에 해지할 수 있는 권리다. 계약 해지 효과는 ‘해지 시점’ 이후부터 무효가 된다. 해지 시점 이전의 대출이자, 카드 연회비, 펀드수수료와 보수, 투자손실, 위험보험료 등은 돌려받을 수 없으나, 해지 시점 이후 비용은 물지 않아도 된다.

▶ 소액분쟁조정의 판단기준은 어떻게 되나?

금융사가 분쟁조정을 회피하려고 소를 제기해 금융소비자가 사후 구제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분쟁조정가액이 2000만 원 이하인 분쟁조정은 금융사가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분쟁조정가액은 소비자가 분쟁조정 신청시 주장하는 금액으로 판단한다.

▶ 설명서를 반드시 서면으로 제공해야 하는가?

상품 설명서 제공방법은 서면교부, 우편(전자우편 포함), 문자메시지 등 전자적 의사표시로 규정돼 있다. 전자적 의사표시에는 전자적 장치(모바일, 태블릿 등)의 화면도 포함된다. 소비자는 판매자 설명을 이해한 후 그 사실을 서명(전자서명 포함), 기명날인, 녹취를 통해 확인해줘야 한다.

▶ 적합성 원칙 관련 투자성향평가는?

판매자는 고객이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소비자의 손실감수능력 또는 대출 상환능력 등을 판단해 고객에 적합하지 않은 금융상품을 권유해서는 안 된다. 이 때 기준은 소비자가 제공한 정보(연령, 재산상황, 금융상품 이해도, 투자경험 등)를 종합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과태료·징벌적 과징금 부과 기준은?

6대 판매원칙 위반에 대해서는 과태로 최대 1억원 부과가 가능하며, 최대 수입 등의 50% 징벌적 과징금은 6대 판매원칙 중 적합성 원칙·적정성 원칙 외 4개 규제 위반에 한해 부과 가능하다. 이는 금융상품판매업자·자문업자에 적용되는 규제이므로 소속 임직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 새마을금고·농협·수협·산림조합에 대한 금소법 적용은?

농협·수협·산림조합·새마을금고 등의 상호금융은 현재는 금소법 적용범위에서 제외돼 있다. 관계부처 등 감독기관이 달라서다. 정부는 4월중 상호금융에 대해서도 금소법 적용을 조율 중이나 조율 여부에 따라 늦어질 수도 있다.

- 김하늬 기자 kim.honey@joongang.co.kr

1578호 (20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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