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통과시 2개 회사서 물러나야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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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금융전문회사(여전사)의 임직원 겸직 제한법 추진 움직임이 감지되면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겸직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관련 법안이 입법되면 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 등 3개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정 부회장은 2개 회사의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카드업계에선 “여전사 대표 가운데 여러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인물은 정 부회장이 유일하기 때문에 여전사 임직원 겸직 제한법은 사실상 정 부회장 저격 법안”이란 평가다.카드업계 등에 따르면 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 노동조합은 지난 3월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과 정책 간담회를 갖고 정 부회장의 3사 겸직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 노조는 “정 부회장의 대표이사 겸직이 이해상충 및 경영 건전성을 저해한다”며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법 시행령 제10조의 여신전문금융회사 겸직 허용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 부회장 등 금융회사의 겸직 임원의 보수 체계를 점검하고, 정 부회장의 국정감사 증인 신청 등도 요구했다.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0조에는 여신전문금융회사인 금융회사는 고객과 이해가 상충되지 않고 금융회사의 건전한 경영을 저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로 겸직이 허용된다고 명시돼있다.박 의원실 관계자는 “이르면 4월 임시국회에서 여신전문금융회사의 임직원 겸직 제한에 대한 법안을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열릴 것”이라며 “4월 초까지 금융위원회, 관련 업계, 학계 등의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여신전문금융회사 임직원 겸직 제한법 추진을 서두를 것”이라면서도 “여신전문금융회사 겸직 허용 조항을 삭제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긴 하지만, 법으로 정하는 것은 신중하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여러 검토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정태영 ‘저격 법안’ 추진카드업계에선 여전사 임직원 겸직 제한법은 사실상 정 부회장에 대한 이른바 ‘저격 법안’이라는 평가가 많다. 여전사 대표 가운데 오랜 기간 겸직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은 정 부회장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을 제외한 국내 여전사 대표들은 전문 경영인으로, 여러 회사에서 대표를 겸직하고 있는 인물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정치권에서 여전사 대표 겸직 제한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알지 못했고 관심 사항도 아니다”고 전했다. 정 부회장은 2003년부터 현재까지 현대카드·현대캐피탈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2007년부터 현재까지 현대커머셜 대표로 재직 중이다.정 부회장의 겸직 논란은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다. 정 부회장의 대표 겸직으로 3개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해상충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여전사 임직원 겸직을 제한하는 법안이 추진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은 다른 금융업법을 존중한다는 방향성 하에서 제정돼왔다”며 “여신전문금융업법에 임직원 겸직 제한에 대한 조항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여신전문금융회사의 임직원 겸직 허용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 노조 측은 “3개 회사의 취업규칙이 동일하고 한 팀에 3사 직원들이 함께 근무하는 등 사실상 한 회사처럼 운영되고 있다”며 “지난해에 현대캐피탈의 의료기 관련 사업이 현대커머셜로 이동했다가 다시 현대캐피탈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해당 사업부서의 직원들이 적절한 업무를 맡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한 회사처럼 움직이는 만큼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카드 측은 “의료기 관련 사업의 이동은 비즈니스 시너지를 감안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한 것”이라며 “관련 업무 대상자는 희망업무로의 재배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정 부회장은 3개 회사 대표를 겸직하면서 매년 고액의 연봉을 수령하고 있다. 2019년 3개 회사에서 약 40억원의 급여를 받아 카드업계 연봉 1위에 올랐다. 고액 연봉과 대조적으로 3개 회사의 이사회 의장인 정 부회장의 이사회 출석률은 저조하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정 부회장의 이사회 출석률은 현대카드 56%, 현대캐피탈 50%, 현대커머셜 50%에 그쳤다. 같은 기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현대자동차 이사회 의장)의 현대차 이사회 출석률이 83%라는 점을 감안하면 저조한 출석률이라는 지적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벌개혁운동본부장)는 “대표이사 과다 겸직에 따른 고액 연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의 동의를 얻어 급여 수준을 결정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사 갈등 불씨 겸직 문제로 번졌다카드업계 등에선 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 노사 갈등의 불씨가 정 부회장의 겸직 문제로 번졌다는 평가다. 이들 노조가 1년 넘게 사측과의 임단협이 진척을 보이지 않자 정 부회장의 겸직 문제 등을 통해 투쟁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조에선 “사측이 현대차그룹 방침을 이유로 노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며 “사측과의 임단협이 진척이 없을 경우, 정 부회장이 아닌 정의선 회장을 상대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다만 현대카드 일부 직원들 사이에선 “노조가 실현 불가능한 제안으로 노사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실제 이들 회사의 노사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노조는 최근 사측과의 임단협과 관련해 협상 결렬을 선언했고 지난 3월 22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조 관계자는 “사측이 어소시에이션 이하(대리급 이하) 직원들만 단협 적용이 가능하다는 안을 고수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며 “중노위 조정에서 임금 인상, 단협 조항 등과 관련해 합의를 도출하지 못해 조정이 중지되면 쟁의권(파업권)을 확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대커머셜 노사의 경우 3월 말까지 집중교섭을 이어갈 계획이지만, 노조 안팎에선 “사측과의 임단협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들 노조는 4월 초에 향후 투쟁 등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여전사 겸직 제한법 추진과 정태영 부회장의 이사회 출석률과 관련해 현대카드 측은 “별다른 입장은 없다”고 밝혔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