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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10년] 종합적 개선 없이 툭하면 특별법부터 발의 

 

갈수록 증가해 20대 국회서 1275건… 땜질식 처방, 포퓰리즘 부작용 우려

▎지난 3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공주택 특별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통과됐다. / 사진:연합뉴스
#. 제41조(소멸시효에 관한 특례)

가습기살균제 건강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민법 제766조제2항에도 불구하고 그 피해가 발생한 날부터 3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한다.[개정 2018년 8월 14일]

2018년 8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이 개정안에서 특별한 부분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를 30년까지 늘려 잡았다는 것이다. 민법에 따르면 손해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까지 행사할 수 있지만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한해 예외를 인정했다.

쏟아지는 특별법…근본 해결책 고민 아쉬워


전문가들은 화학 물질에 의한 피해의 경우 단기간에 증세가 나타나지 않고, 원인 규명이 어려워 이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특별법 제정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법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으로는 또 다른 유해 화학물질 관련 문제를 해결하거나 피해자를 구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성구 기업소비자전문가협회 이사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유해 화학물질이나 방사선처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문제가 발현하는 사건들이 있다. 이런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할 일반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특별법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성격이 짙다”며 “모든 문제를 특별법에만 의존해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실제 유해 화학물질로 인한 문제는 꾸준히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이랜드월드가 수입해 판매하는 뉴발란스의 초등학생 책가방에서 환경호르몬이 기준치 이상 검출돼 리콜이 결정됐다. 2020년 12월에는 영유아용 아기 욕조 제품에서 기준치의 600배가 넘는 유해 화학물질이 검출되기도 했다. 당시 욕조 배수구 마개에서 검출된 화학물질은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다.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들 때 쓰이는 화학 첨가제인데, 간 손상과 생식 기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는 ‘사용 중단과 환불 조치’를 내렸지만, 유해성과 인체에 미치는 피해 등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에는 국내에 유통된 생리대 전체 품목 중 97%가 넘는 제품에서 발암 물질이 검출돼 안전성 문제가 불거졌다. 시민단체 소비자와함께의 박명희 대표는 “수십년 뒤 이런 사건에서 문제가 파생돼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생겨도 현행법으로 해결하기 쉽지 않다”며 “소비자 안전에 관한 종합적이고 기본적인 법을 만든 뒤에 부족한 부분을 특별법으로 보완해야 하는데, 국회는 문제가 터지면특별법만 만드는 데 그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지적에도 국회에서는 특별법 발의 건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 통계를 보면 18대 국회에서 발의한 특별법 관련 법안(개정안 포함)은 733건, 19대 832건, 20대 국회에서는 1275건으로 집계됐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특별법을 남발하면 기존 법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 현재 법률에 한계가 있다면 종합적인 개선을 고민해야지 땜질식 처방만 내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문제만 불거지면 20~30개씩 특별법 발의가 쏟아지는데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기존 법체계 위협, 포퓰리즘 변질 우려도

일각에서는 ‘특별법’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회가 포퓰리즘 성격의 특별법을 제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12년 추진됐던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 지원 특별조치법안(저축은행 특별법안)’이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이 특별법은 부실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면서 돈을 맡긴 사람들이 원금 손실 위기에 처하자 세금으로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1인당 5000만원(원리금 기준)까지만 보호받을 수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려 하자 여론의 반발에 부딪혔다가 결국 무산됐다.

당시 전국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종합금융협회 등 5개 금융단체는 저축은행 특별법에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금융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현행 예금자보호법상 보호 대상이 아닌 5000만원 초과 예금과 후순위 채권을 보상해주는 것은 예금자보호제도의 근간과 법치주의의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가덕도신공항특별법(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은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 특별법은 부산 가덕도에 신공항을 건설하면서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면제할 수 있는 특례 조항을 담고 있다. 국가재정법 38조 1항에 따르면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신규 사업은 예타 조사를 받아야 한다. 국토부가 추산하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비용이 최대 28조6000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예타 조사를 면제하는 것이 특혜라는 지적도 받았다.

국토교통부도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에 반대 입장을 내놨다. 국토부는 ‘가덕도 신공항 검토 보고서’를 통해 항공 안전사고 위험성이 증가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국제선만 이전할 경우 항공기 운영 효율성이 떨어지고 환승객 동선 등이 증가해 어렵다고 밝혔다. 또 대규모 산악 절취, 해양매립, 환경 보호구역 훼손 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를 근거로 가덕도 신공항 추진에 반대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국회의원 181명의 찬성으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어섰다. 최준선 교수는 “해외에서는 새로운 법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년 간 토론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거친다”며 “무턱대고 특별법을 쏟아내기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1579호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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