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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SK 배터리 분쟁 극적 합의… 최태원·구광모 결단에 실익 챙겼다 

 

SK이노베이션 수익성 개선 ‘관건’

▎사진:연합뉴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분쟁이 양측의 극적 합의로 마무리됐다. 양사는 분쟁 713일 만에 2조원(현금 1조원+로열티 1조원) 합의금 지급에 합의하고 모든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다. 재계에선 “양사가 국내 기업 간 소송 역사상 최대 규모 합의금에 합의한 만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결단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11일 공동 입장문을 내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진행되고 있는 배터리 분쟁을 모두 종식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2019년 4월부터 진행된 모든 소송 절차도 마무리 됐다.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에 현재 가치 기준으로 총 2조원(현금 1조원+로열티 1조원)을 합의된 방법에 따라 지급하고, 배터리 분쟁과 관련된 국내외 쟁송을 모두 취하하기로 한 것. 향후 10년간 추가 쟁송도 하지 않기로 했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한미 양국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발전을 위해 건전한 경쟁과 우호적인 협력을 하기로 했다”며 “특히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배터리 공급망 강화 및 이를 통한 친환경 정책에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中 배터리 패권 속 미국 시장 지켰다


양사의 합의문에는 미국 바이든 정부가 추진 중인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를 두고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배터리 패권 정책 등이 양사 합의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배터리 분야에서 급성장 중인 중국을 견제할 필요가 있는 바이든 정부와 우리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라는 얘기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11일(현지시간) “이번 합의는 미국 노동자들과 미국 자동차 산업의 승리”라며 “미국 자동차 산업 강화 및 미래 전기차 시장에서의 승리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터리업계에선 양사의 이번 합의를 두고 “미국 배터리 시장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는 평가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이번 합의는 LG와 SK의 배터리 사업과 관련해 미국 시장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며 “자국 기업 우선 기조가 강한 중국 시장을 공략하긴 보단 미국 시장에서 배터리 사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고 진단했다.

실제 중국 배터리업체들은 자국 시장 중심으로 글로벌 배터리 시장 점유유을 대폭 끌어올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2월 글로벌 전기차 탑재 배터리 사용량 순위에서 중국 배터리업체인 CATL이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CATL의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은 1월과 2월에 각각 31.2%, 27.8%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의 점유율은 18.5%, 23.4%로 2위로 집계됐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 시장을 제외한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순위에선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기업이 점유율 상위권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시장을 뺀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에선 LG에너지솔루션이 33.1%로 1위를 차지했으며, 삼성SDI(10.1%), SK이노베이션(9.7%)은 각각 3, 4위를 기록했다. 반면 CATL은 점유율은 6.5%에 그쳐 5위에 머물렀다.

배터리 시장 성장성 재확인

재계에선 최태원 회장과 구광모 회장의 결단이 배터리 분쟁 합의를 이끌어냈을 것이란 분석이다. 최 회장과 구 회장이 지난달 31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등과 회동한 이후에 배터리 분쟁 합의도 급물살을 탔을 것이란 얘기다. 물론 일각에선 양사가 합의금 규모와 지급 방식 등 구체적인 합의 방안을 공개한 만큼 총수 회동 전에 분쟁 합의에 관한 윤곽을 잡았을 것이란 의견도 있지만, 이번 분쟁 결과의 여파 등을 감안하면 양사 총수의 결단이 주효하게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LG그룹과 SK그룹 모두에 배터리 사업이 갖는 의미는 크다는 게 중론이다. 그동안 공격적 인수합병으로 반도체 등 신(新)성장 동력을 확보해온 SK가 자체 육성한 미래 사업이 전기차 배터리이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인수합병을 통해 사세를 확장해온 SK그룹이 사실상 자체 육성한 신성장 동력은 전기차 배터리가 유일하다”며 “SK가 이번 분쟁으로 배터리 사업을 완전히 포기했다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꼴”이라고 평가했다.

일찌감치 신성장 동력으로 배터리 사업을 육성해온 LG 입장에서도 배터리 사업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LG그룹은 가전 분야 등에서 여전히 독보적인 시장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스마트폰 등의 사업 부진으로 배터리 사업의 비중도 지속 확대돼왔다. 지난 5일에는 스마트폰 사업을 영위하는 MC사업본부의 생산 및 판매를 종료한다고 선언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완전 철수를 결정한 바 있다. 배터리 사업이 LG그룹의 미래 성장과 직결된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양사는 이번 합의로 소송 등에 대한 불확실성을 말끔히 제거했지만, 증권업계 등에선 SK이노베이션이 짊어질 재무 부담과 관련해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유진투자증권은 12일 “기존 시장에서 예상하던 3조~5조원에 비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합의가 이뤄졌다고 판단한다”며 “로열티 1조원은 수주 잔고의 1.4% 수준으로, SK아이이테크놀로지 상장 및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 등으로 유입될 현금 약 3조원을 고려할 시 추가 차입 없이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하나금융투자는 SK이노베이션의 주가 상승 변수로 “SK이노베이션의 올해 추정 순차입금 12조원, 부채비율 160%의 재무적 부담 완화 여부”를 꼽았다. 하나금융투자는 “SK이노베이션의 정유·화학 업황이 모두 개선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향후 이들 사업 지분 매각 시 과거와 비교해 이익 체력이 떨어질 가능성을 경계한다”고 평가했다. 하나금융투자는 이익 체력 하락 국면에서 배터리 사업의 가파른 이익 개선 여부가 핵심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에서 흑자 전환을 이뤄내지 못한 만큼, 2조원 자체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금액일 것”이라면서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 같은 부담을 상쇄할 정도로 배터리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1581호 (202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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