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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블록체인 사업, 14개 중 8개 중단정부가 준비 중인 백신여권은 블록체인 기술의 일종인 분산 신원인증(DID·Decentralized IDentify) 기술이 근간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얹어 효율성과 보안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 지는 미지수다. 그간 정부 주도로 진행했던 블록체인 실증사업들이 대부분 중단되거나 사용자 부족으로 ‘개점휴업’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대표적인 예가 2018년 국토교통부가 추진했던 ‘블록체인 부동산 거래 시범사업 시스템 구축 사업’이다. “종이 서류 없이 편리하게 부동산 거래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매년 1억3600만 건에 달하는 종이의 양도 문제지만, 종이 서류는 위·변조도 쉽다. 이런 문제를 타개할 열쇠로 국토부는 블록체인을 꼽았다. 당시 추산한 개발 비용은 2022년까지 4년간 300억원이었다. 하지만 국토부는 1년 만에 사업을 중단했다. ‘블록체인 공공선도 시범사업’을 운영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하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지원이 끊기면서다.그런데 지난해 6월 국토부는 다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부동산 거래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도입 시점은 2024년으로, 앞선 사업에 비해 2년 미뤄졌다. 사업 내용은 대동소이한데 지원하는 기관만 달라졌다. 해당 사업 관계자는 “(행정안전부 산하)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전자정부지원사업 지원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지방자치단체의 블록체인 사업들도 지지부진하긴 마찬가지다. 2018년 서울시는 블록체인을 활용해 행정서비스를 혁신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재까지 진행 중인 사업은 14개 중 6개에 그친다. 서울시 관계자는 “나머지 8개 중 4개는 중단, 4개는 (사업 진행 여부를)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 2018년 10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스위스 취리히까지 가서 ‘블록체인 도시 서울 추진계획’을 밝혔던 것을 상기하면 초라한 실적이다. 당시 박 전 시장이 밝힌 사업 규모는 2022년까지 5년간 1233억원에 달했다.2018년 기초 지자체 중 처음으로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 ‘노원(NW)’를 선보였던 서울 노원구의 실적도 그리 좋지 못하다. 노원구 관계자에 따르면, 4월13일 기준으로 ‘노원’의 회원 가입자는 8904명으로, 노원구 인구(51만8278명)의 1.7% 수준이다. 주무관 1명이 해당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사용자들 민원에 대응하는 데도 역부족인 실정이다.
기술 실증보다 일자리 실적 등에만 관심정부 사업이 연이어 초라한 결말을 맞는 이유로 보안기술업계 관계자들은 “공무원들이 시장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보여주는 데만 급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에도 분명히 기회비용이 있는데, 실증사업을 할 때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블록체인에선 주고받는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데 이용자 모두가 조금씩 컴퓨터 자원을 부담해야 한다. 쉽게 말해 중앙 서버에 의존할 때보다 정보처리 속도가 크게 느리다”며 “이런 단점을 감수하고서라도 필요한 사업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없었다”고 꼬집었다.정부가 기술 실증보다 일자리 창출 등 ‘잿밥’에 관심이 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명 블록체인 기술업체 대표 A씨는 2019년 7월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정한 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중기부와 부산시는 특구 지정 당시 “세계 최초의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라며 “산업 유발 효과 895억원, 고용 유발 효과 681명, 기업 유치 창업은 250개사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그러나 A씨가 말하는 실상은 부산시의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상당수 기업이 부산에 사무실만 열고 사업은 서울에서 한다”며 “‘우리 이렇게 정부 말 잘 듣습니다’라고 보여주는 용도다. 기술자들이 서울에만 있으니 어쩌겠나”라고 토로했다.백신여권을 둘러싼 전망도 마냥 낙관적이진 않다. 백신접종 여부 등 의료데이터의 공개를 두고 질병관리청과 과기부 산하 한국인터넷진흥원 등 관계 기관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서다. 백신여권이 정부 블록체인 사업 잔혹사를 끊는 첫 사례가 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