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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마음을 읽은 아버지의 대답 세 가지심리치료 전문가인 아버지 말에 실마리가 있다. “축하한다. 2년 차도 끝냈구나”라는 말이 그렇고, 몰리가 “가야 한다”고 했을 때 “반드시 물어야 한다”는 말을 두 번이나 한 것, 그리고 “왜 저를 동생들만큼 좋아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나왔구나” 하는 게 그것이다. 또 아버지가 이 말을 하게 한 몰리의 말에는 공통점이 있다. 꼭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베어도 베어도 계속 자라는 잡초를 완전히 제거하려면 땅속에 있는 뿌리를 뽑아야 하는데, 그녀가 질문을 통해 그렇게 했던 것이다.마음의 응어리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어디론가 이끌고 간다. 예를 들어 어릴 적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억압 때문에 내상을 입은 사람은 성인이 된 후 그걸 자신도 모르게 분출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저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정도로 해도 되는데 심하다 싶을 정도로 어깃장을 놓거나 하며 자신을 절벽 가까이 몰고 간다. 무의식이 감정을 충동질하는 까닭이다.우리가 여기서 눈여겨 봐야할 건 몰리의 아버지가 했던 ‘원래는 3년짜리이지만 3분 만에 할 수 있는 아주 비싼 심리 치료법’이다. 원활한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제거하는데, 아주 효과적이다.3년 전이었을 것이다. 하루에 은행을 세 번이나 갔던 날이 있었다. 갈 때마다 서류가 하나씩 빠졌다고 하는 바람에 다음날 네 번째 방문까지 해야 했다. 은행원이 보완해야 할 서류를 한 번에 다 말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한 번에 하나씩 말하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어 한 번만 더 그러면 참지 않을 작정이었다. 더구나 그날은 사람도 많아 한참을 기다린 끝에야 창구 앞에 앉을 수 있었는데, 서류를 죽 훑어보던 은행원이 세상에, 또 같은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뭐, 한 번 더 오라고?’ 더는 참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아니 참아서는 안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 화는커녕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했다.“감사합니다. 정말 이것만 가져오면 되는 거죠?”이유가 있었다. 그 은행원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라고 하니 짜증 나시죠? 아마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어쨌든 죄송하게 됐는데 이거 하나만 가져오시면 바로 해드리겠습니다. 번호표도 뽑지 마시고 바로 저에게 오세요. 제가 다 준비해 놓고 있다가 서류 가져오시면 5분 내로 처리해드리겠습니다.”생각지도 않은 그 말에 혹한 나는 화를 내기는커녕 “감사하다”는 말까지 하면서 기분 좋게 서류를 가져다주었고 그 또한 곧바로 처리해주었다. 일을 끝내고 나오면서 생각하니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 혼자 웃었다. 은행원이 내 마음을 알아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짜증 폭발 직전이라는 걸 알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번호표도 뽑지 말고 바로 오라는 ‘특혜’까지 주어서였을 것이다.
맞장구치며 상대방 존재를 인정우리가 흔히 접하는 불만, 짜증, 두려움 등 부정적인 감정이 우리 마음에 쌓이면 불이 돼 타오른다. 쌓일수록, 생각할수록 증폭되는 이런 감정들은 ‘전의’를 불타오르게 해 상대에게 불을 토해 내게 한다. 그렇게 상대를 태워버리려 하다 자신을 태워버리기도 한다.그런데 묘하게도 몰리의 아버지처럼 질문해주고 앞의 은행원이나 의사처럼 마음을 알아주면 마음속 불이 눈 녹듯 사라져버린다. 몰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누군가 알아주어 밖으로 나오면 아무리 강한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대체로 해소된다. 고장 난 차가 치워지면 막혔던 길이 뚫리듯 말이다.마음을 알아주는 힘은 이렇게 크다. 존재에 대한 위협과 달리 마음을 알아주는 건 존재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소통의 고수들이 가진 능력이기도 한데, 이들을 가만히 보면 질문도 잘하지만 맞장구를 참 잘 친다. 추임새처럼 맞장구를 치면 상대의 속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끌려 나오기 때문이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십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그렇게 일하면 아무도 모릅니다][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