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6월8일은 대한제국을 포함한 근대 시기의 우리나라 외교사에 특별히 기록될 만한 날이다. 이 시기 최초이자 최고의 국빈방문이 있던 날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존망이 위태롭던 당시 고종은 국빈방문 같은 행사를 통해 국가의 독립과 권위를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 그러나 어렵게 만들어진 이 이벤트는 한·독 양국에서 모두 묻혀버리고 말았다. 하인리히 왕자의 국빈방문 과정을 추적했다.
1899년 6월8일, 이날은 우리 외교사에 굵은 한 획을 그은 날이다. 대한제국을 포함한 근대 시기 최초이자 최고의 국빈방문이 있었던 날이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하나뿐인 친동생 하인리히(Heinrich Prinz von Preußen·1862~1929) 왕자였다. 이 시기 하인리히 왕자보다 더 신분이 높은 손님이 찾아온 적이 없었고, 그 이후에도 국가원수의 방문 기록이 없다는 점에서 하인리히 왕자의 방한은 개화기 유일한 국빈방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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