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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새 대통령이 1년 내 해결해야 할 7대 난제] 5. 통합 가로막는 갈등현안 처리는? 

문 대통령, 자유한국당에 대한 생각 정리해야 

고성국 정치평론가·정치학 박사
차이 인정하고 아우르는 통합정치를 국정운영 기조로 만들어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특사, 원칙에 입각해 시기와 절차 검토 필요


▎지난 4월 국가혁신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악수를 나누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대한민국은 5월 9일 새 대통령을 뽑고 마침내 기나긴 탄핵정국의 터널에서 빠져나왔다.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된 탄핵정국을 마감하고 들어선 문재인 대통령 정부이므로 새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가 국민통합정치로 잡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문 대통령이 취임 일성으로 “저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도 섬기겠다”며 국민통합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통합정치의 성패 유무에 문 대통령과 새 정부의 명운이 걸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문 대통령과 새 정부가 직면한 국민통합정치라는 과제를 제대로 풀자면 시간적으로 서로 다른 두 차원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첫째는 5·9 대선의 직접적 출발점인 탄핵정국에서 노출된 심각한 사회적, 정치적, 이념적 갈등과 대결 양상을 극복하는 단기적 역사의 맥락이다. 둘째는 김대중·노무현 10년과 이명박·박근혜 9년간 쌓이고 쌓인 적대구조와 적개심을 근원적으로 극복하는 중장기적 역사의 맥락이다.

사회적 대타협은 사회·경제적 국민통합

문 대통령이 이 네 정권의 20년을 성찰하겠다고 한 것은 그가 단기적 맥락뿐만 아니라 중·장기적 역사의 맥락의 위에서 국민통합을 바라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있다. 문 대통령의 국민통합정치에 대한 중·장기적, 역사적 맥락의 이해가 의미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민통합은 국가와 정치의 1차적 과제다. 다원화·다층화가 경향적으로 가속되는 현대사회에서 국민을 국가라는 틀 속으로 통합하는 일은 현대국가의 1차적 의무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현대사처럼 이념·지역·세대·문화·계층·젠더적으로 분열과 갈등이 심하고, 이들 갈등이 중첩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에서 국민통합이라는 국가적, 정치적 과제는 더욱 중요하고 절박하다.

문제는 국민통합을 이뤄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분열과 갈등을 부추겨왔다는 것이다. 국민을 지역과 이념, 세대로 분열시키고 문화적, 젠더적으로 대립시켜온 우리 정치권의 부끄러운 모습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도 그대로 노정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국민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이 같은 정치권의 구태와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국민통합은 대통령 직속으로 국민통합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통합 담론을 애써 강조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국민통합정치는 국민이 공감하고 통합의 방향으로 국민이 함께 나아갈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정치권은 국민이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줄 수 있을 뿐이다. 문 대통령과 새 정부가 국민통합적 국정운영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천착해야 할 대목이 바로 여기다.

국민에 의한 국민통합정치는 세 가지 수준에서 기획돼야 한다. 첫째는 정치적, 법적 수준이다. 통합이 차이를 없애 똑같은 하나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전제로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라면 국민통합은 정치적 수준에서는 다당제 정착을 위한 선거구제 개편과 결선투표제 도입, 그리고 교섭단체 구성 요건의 완화와 협치, 연정의 제도화로 분권형 권력구조로의 개헌이라는 정치 의제를 중심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둘째는 사회·경제적 수준이다. 양극화로부터 자유로운 국민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사회·경제적 수준의 국민통합은 양극화의 근원적 해소를 지향할 때 비로소 현실적 의미를 갖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 심화, 일자리, 연금 등 영역에서 청년과 노인층 간 제로섬게임 양상으로 전개되는 소모적 경쟁을 내버려두고 국민통합을 말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사회적 대타협이 사회·경제적 국민통합의 대안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노르딕 모델이든 한국형 모델이든 경제와 복지 간의 사회적 갈등 양상을 넘어서는 진정한 국민통합형 사회·경제 모델을 만들어 내려면 사회구성원이나 국민의 합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다만 그 합의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대타협, 이른바 역사적 대타협(historical compromise)이지 않으면 안 된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추진되던 노사정위원회의 실패 원인을 엄밀하게 분석하고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도 중요하다. 역사적 대타협을 이루기 위해서는 타협의 주체들이 자기 세력, 자기 진영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를 상대로 행동하고 설득하는 정치적 성숙함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이 문제에 대해 어떤 해법을 갖고 있는지 눈여겨볼 대목이다.

셋째는 문화적 수준이다. 역사적 집단경험, 세대적, 젠더적 차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분출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오해와 편견들이 세계 최고 속도를 자랑하는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되는 상황에서는 위의 두 수준, 즉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수준 못지않게 문화적 수준의 통합 노력이 중요하다.

‘1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3차 포럼’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실 문화적 격차와 이질감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아침부터 밤까지 가정·직장·친교집단·종교단체 등 모든 영역에서 일상적으로 겪고 있다. 청소년세대와 노인세대 간 정상적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워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각종 혐오범죄가 세대·젠더·다문화 간에 공포와 적개심을 퍼뜨리는 것 또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최초의 여성 인사수석인 조현옥 수석을 임명한 것은 이 셋째 수준의 문화적 국민통합이 매우 중요하다고 인식한다는 증거다.

문 대통령은 통합정치를 말할 때 한편에는 늘 개혁, 즉 적폐청산을 염두에 두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이해할 수 있다. 탄핵정국과 조기대선 국면에서 적폐청산을 주요 슬로건으로 해서 정권을 잡은 만큼 그에 상응하는 청산과 개혁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다. 더구나 대선에서의 지지를 국정운영 동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이들 지지자의 관심사를 계속 환기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선거 슬로건으로 청산과 개혁을 공언하는 것과 대통령으로서 권력을 통해 이를 실행하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사실 120석밖에 안 되는 집권당의 힘으로 청산과 개혁을 뒷받침하고 견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시 말해 청산과 개혁을 위해서라도 협치와 연대는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협치와 연대의 폭과 깊이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즉, 협치와 연대를 통해 이루어낼 청산과 개혁의 구체적 대상과 목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문 대통령이 통합과 개혁을 정치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구현하려면 먼저 이 어려운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문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다음의 두 가지를 제언하고 싶다. 첫째,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1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도 필요하고 ‘타초경사(打草驚蛇)’와 같은 위력시위도 필요하나 역시 핵심은 다수 국민과 함께하는 것이다. 41.1%의 국민이 아니라 75%의 국민, 더 나아가 99%의 국민의 지지와 동의를 받는 것이 개혁과 청산에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문제도 이 같은 원칙에 입각해 시기와 절차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 대한 생각의 정리 또한 같은 맥락에서 근원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적폐청산의 대상이라는 선거 때의 프레임을 계속 견지하는 것이 국정운영에 도움이 될 것인지, 나아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지 냉철하게 짚어 봐야 한다는 뜻이다.

자유한국당 의원이 새 정부에 입각한다면


▎헌재에 의해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이 3월 31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 사진제공·뉴시스
국민통합정치가 화두라는 것은 분열과 갈등의 수위가 위기 수준에 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상한 상황을 넘어설 때는 비상한 사고와 비상한 방책이 필요하다.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고, 파격적 상상력도 필요하다.

취임 당일 문 대통령이 한국당 당사를 전격 방문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당 소속 의원 한두 명을 입각시키는 파격적 용인술도 검토해볼 만한 일이다. 국민통합정치는 설명으로 체감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느껴야 되는 것이다. 국민으로 하여금 통합정치를 체감케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인사다. 이낙연 총리 지명으로 호남에 통합정치의 메시지를 주듯 말이다.

개혁은 긴장을 고조시키고 갈등을 유발한다. 반면 통합은 긴장을 완화하고 갈등을 치유한다. 개혁하고 통합하는 것은 통합이 개혁의 수단이 된다는 뜻인데, 이는 ‘개혁을 통한 통합’이라는 문 대통령의 담론과도 맞지 않는다. 선(先)개혁으로 긴장과 갈등을 유발하기에는 이미 쌓인 긴장과 갈등의 수준이 너무 높다. 다시 말해 지금은 역사적 맥락에서 그간 쌓인 긴장과 갈등을 풀어줄 통합정치를 우선해야 한다는 뜻이다.

차이를 인정하면서 이를 함께 아우르는 진정한 통합정치를 주요한 국정운영의 흐름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통합을 위해 필요한 개혁과 청산을 법·제도적 차원, 사회·경제적 차원, 그리고 문화적 차원에서 국민적 동의와 지지를 기반으로 차분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에도 부합하고,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경로다. 이를 위한 정치적 결단, 바로 그것이 국민통합정치시대를 열려는 문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바로 지금 해야 할 일이다.

- 고성국 정치평론가·정치학 박사

201706호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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