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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긴급진단] ‘이용수·정의연 갈등’ 둘러싼 세 가지 쟁점 

위안부 운동의 핵심 명분, ‘피해자 중심주의’가 흔들린다 

2007년 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 캠페인 관련 증언 새로 나와
국세청 공시 입력 누락, 윤미향 계좌로 기부금 모금 등 자금 유용 의혹도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5월 11일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 건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올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앞장섰던 시민단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가 출범 3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정대협은 2015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화를 기치로 설립된 정의기억재단과 2018년 통합했다. 정의기억연대(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이하 정의연)는 두 단체가 통합하며 내건 새 이름이다. 통합 당시 정의연 이사회는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를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지난 5월 7일 이용수(92)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지난 30년간의 행적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다. 쟁점은 ▷피해자 중심주의 훼손 ▷한·일 위안부 합의 관련(합의 내용 사전인지 및 피해자 할머니의 위로금 수령 방해) 의혹 ▷단체 회계 불투명성 논란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정의연은 5월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두 시간여에 걸쳐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해명했다. 그러나 처음 문제를 제기한 이 할머니는 5월 13일 월간중앙과 단독 인터뷰에서 윤 당선인과 정의연을 향해 “자기 욕심 차리는 사람들”이라며 비판의 날을 거두지 않았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을 쟁점별로 정리했다.

쟁점1. ‘피해자 중심주의’ 훼손 의혹


▎서울 남산자락에 조성된 ‘기억의 터’. 2016년 8월 조성 당시 위안부 피해자 247명의 이름을 새겼다.
이용순 할머니의 주장은 일관되게 그간의 정대협 활동이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이 아닌 단체 중심으로 돌아가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다. 이런 문제의식은 이 할머니가 자청한 기자회견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 내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이 할머니는 “피해자를 위해 데모를 시작했는데, 피해자를 위해 한 것이 거의 없다”, “어째서 거기(나눔의집) 있는 할머니만 피해자라고 하느냐”고 비판했다.

이 할머니는 5월 7일 기자회견에서 정대협이 피해자 지원 활동을 소홀히 한 근거로 2007년 6월께 미국 하원을 대상으로 한 위안부 결의안 캠페인 당시를 지목했다. 할머니는 당시 “결의안 통과시키려고 워싱턴에 다녔는데 (정대협에서)아무도, 돈 한 푼 보태준 사람 없다”며 “미국에 사는 교포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줬다)”고 주장했다.

2016년 8월 서울 남산에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기억의 터’를 조성할 때에도 당사자들의 뜻을 묻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기억의 터는 정의연과 여성계 등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추진위원회가 국민 성금을 모아 서울시와 함께 조성했다. 위안부 피해자 247명의 이름을 비석에 새겼다.

중앙일보 보도(5월 13일)에 따르면, 위안부 피해자 A할머니는 “나는 그거(피해자 이름 등재) 했는지도 몰랐다. 승낙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A할머니는 나중에서야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것을 알고서 ‘새벽에 망치와 끌을 들고 가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지웠다’고 했다. 추진위와 서울시 측은 피해자 247명의 명단을 정대협에서 받았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해 정의연은 보도가 나온 직후 배포한 설명 자료에서 “피해자로 등록되지 못한 분들을 포함한 인원”이라고 해명했다. 왜 당사자에게 비석 등재 여부를 직접 묻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동떨어진 답이다.

중앙일보 취재에 응한 A할머니는 또 화해·치유재단이 지급하려 한 1억원의 피해자 지원금을 정대협에서 받지 못하게 했다고도 했다. A할머니의 주장은 이렇다. “(정부가) 일본 돈 10억 엔을 받아와서 정신대 할머니들한테 1억원씩 줄 때 윤미향이 전화해서 ‘할머니 일본 돈 받지 마세요. 정대협에 돈 생기면 우리가 줄게요’ 하면서 절대 받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나는 억울해서 받아야 되겠다.” A할머니는 윤 당선인의 회유 정황이 담긴 서신을 공개하기도 했다.

쟁점2. 한·일 위안부 합의 막전 막후


▎5월 10일 중앙일보를 통해 공개한 위안부 피해자 A할머니의 친필 서신.
2015년 12·28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은 2016년 정부 예산으로 10억 엔을 거출했고, 한국은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해 피해자 지원을 시도한 바 있다. 당시 정대협 대표로 있던 윤 당선인은 일본 정부가 건넨 위로금 수령을 반대하면서 ‘백만 시민 모금’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때 모금 캠페인을 진행하기 위해 윤 당선인이 2016년 새로 설립한 단체가 정의기억재단이다. 정의연은 당시 캠페인을 통해 모금한 돈으로 “2017년 하반기 위로금 수령을 반대하며 싸웠던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 피해자 8명에게 1억원씩 여성인권상금으로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A할머니 주장대로라면 윤 당선인이 피해자들의 자발적 의사 표현을 가로막은 셈이 된다. 윤 당선인은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 중심주의에 어긋난다며 비판해왔다. 자가당착에 빠진 셈이다. 이같은 비판에 익명을 요구한 정의연 관계자는 “(일본의) 위로금 수령을 반대하며 싸워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성금을 전달한 것”이라며 “성금(1억원)을 받으려면 위로금을 받지 말라는 맥락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25년 전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1995년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겠다며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아시아국민기금)’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지원하려 하자, 정대협이 수령하지 못하도록 했던 일이다. 김정란 박사(여성학)가 쓴 박사 논문에 당시 피해자의 증언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정대협은 입에 담기 어려운 수치스러운 표현을 써가며 할머니들이 기금을 수령하지 못하도록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대협은 대신 직접 대국민 모금운동에 나서 일본측 기금을 수령하지 않은 할머니들에게 약 3000여만원씩 지급했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합의가 발표되기 전 윤 당선인이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도 쟁점이다. 이용수 할머니는 5월 7일 기자회견에서 “2015년 한·일 합의 때 10억 엔이 일본서 들어오는데 윤미향 대표만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정작 당사자인 피해자 할머니들에겐 알고 있는 내용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 측 해명에 따르면, 실제로 전날 외교부가 합의 내용 일부를 알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독소’로 여겨지는 민감한 내용은 모두 빠져 있었다는 것이 윤 당선인 측의 주장이다. 제윤경 더불어시민당 수석대변인은 “합의 일부 내용을 기밀유지 전제로 일방 통보한 것”이라며 “책임 통감, 사죄·반성, 일본 정부 국고 거출 등 내용이 있었고 불가역적 해결, 국제사회 비판 자제, 소녀상 철거 등 내용은 빠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도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 국제사회 비난·비판 자제 등 한국 쪽이 취해야 할 조치가 있다는 것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는 기존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의 결론이 맞다고 확인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설치된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는 2017년 12월 27일 31쪽 분량의 검토 결과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다만 이 할머니가 문제 제기한 10억 엔 부분, 즉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에 10억 엔을 출연키로 했다는 내용을 윤 당선인이 사전에 통보받았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명확한 내용은 민관합동 TF가 내놓은 보고서상에 나와 있지 않아 확인되지 않는다.

쟁점3. 정의연의 불투명한 회계 의혹


▎이용수 할머니(왼쪽)가 지난해 1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故 김복동 할머니의 입관을 지켜본 뒤 윤미향 당시 정대협 대표(오른쪽) 등과 함께 입관실을 나서고 있다. / 사진:뉴시스
정의연의 회계 처리가 불투명하다는 의혹은 단체의 도덕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가장 민감한 문제다.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모은 기부금이 피해자들에게 쓰이지 않았다”고 주장한 게 도화선이 됐다. 국세청 홈택스에 공시된 정의연의 2016~2019년 ‘연간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 실적 명세서’에 따르면, 4년간 모인 기부금 49억여원 중 피해자 지원사업에는 9억여원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기부금 가운데 5분의 1이 채 안 되는 금액이다. 정의연은 “피해자 지원 사업에는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건강 치료 지원, 정기 방문, 정서적 안정 지원, 쉼터 운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심을 잠재우기엔 석연치 않은 실수들이 잇따라 드러났다. 기부금 수혜 인원이 ‘99명’, ‘999명’ 등 임의로 기재돼 있거나, 한 맥줏집에 3300여만원을 지출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지난해에는 22억원의 공시가 누락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정의연은 공시 입력 과정에 일부 실수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국세청 재공시 명령에 따라 바로잡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보수 진영은 정의연의 회계 처리 불투명 의혹을 윤 당선인의 착복 의혹으로 연결지어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조해진 미래통합당 당선인은 5월 1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는 윤 당선인의 딸을 겨냥해 “연간 1억원이 들어가는 유학 생활을 어떻게 연 2500만원 정도되는 남편 수입으로 감당하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조 당선인의 이같은 주장은 윤 당선인에 대한 반감을 확산하는 도화선이 됐다.

윤 당선인은 “‘남매 간첩단 조작’ 사건으로 재심에서 일부 무죄를 받은 남편의 형사보상금 등으로 딸의 유학자금을 마련했다”고 해명했다. 딸이 유학 간 시점(2016년)과 남편 보상금이 나온 시점(2018년)이 맞지 않다는 지적이 다시 나오자 “(딸이) UCLA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 시카고에서 1년 공부를 할 때 전액 장학금으로 공부했다”고 다시 해명했다. 그 뒤로 딸의 유학자금 관련 의혹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딸 유학자금 관련 의혹이 잦아들자 이번에는 윤 당선인이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기부금을 모금하면서 개인 명의로 된 계좌를 이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2016년 정의기억재단이 설립된 뒤 SNS에서 개인 계좌 3개를 이용해 모금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지난해 1월 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하자 장례비와 조의금을 모금하면서 윤 당선인 개인 계좌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나영 현 정의연 이사장은 기부금 개인 계좌 모금을 두고 “정대협 시절부터 사용하던 통장을 정리하기 어려워 계속 사용 중일 것”이라고 서둘러 해명했다. 또 장례비 모금에 대해선 “윤 전 이사장이 당시 상주의 자격으로 장례를 치렀다. 조의금을 받기 위해 상주의 계좌를 공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장례 후 정의연이 발간한 기록집에는 김 할머니 장례를 치르면서 조의금 2200만원을 모았다고 기록돼 있다.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1000만원 이상의 기부금을 모을 땐 모집·사용계획서를 작성해 당국에 등록해야 한다. 2200만원에 윤 당선인 개인 계좌로 입금된 돈이 포함된 것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행정안전부는 정의연에 기부금 출납부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또 서울 서부지검은 보수 성향 시민단체가 윤 당선인을 횡령 및 사기 등의 혐의로 고발함에 따라 조만간 조사를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자 정의연은 5월 13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설명자료에서 “개인적인 자금 횡령이나 불법 유용은 절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윤 당선인과 정의연을 겨냥해 “돈을 빼먹었다”, “사리사욕을 채웠다”고 한 이용수 할머니는 자신의 발언이 개인적 착복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 할머니의 발언은 ▷(기부금 등이) 피해자들에게 온전히 쓰이지 않은 점과 ▷윤 당선인이 위안부 문제를 매듭짓지 않고 정치권으로 떠난 것을 두고 한 말로 풀이된다. 이 할머니는 언론을 통해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나도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202006호 (202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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