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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美의 새로운 핵 억제력 수단, ‘저위력 핵무기’ 

동북아 안보 ‘게임 체인저’에 北·中 초긴장 

기존 핵무기보다 사용 가능성 높아 핵전쟁 위협, 핵 도발 억제에 도움
미국, INF 조약 탈퇴와 중거리 미사일 실험으로 중국 견제… 日 류큐제도 배치?


▎올 6월, 미 공군의 F-15E 스트라이크 이글 전투기가 B61-12 투하 최종 성능시험을 하고 있다. / 사진:샌디아 국립연구소
'B61-12’는 미국이 핵무기 현대화 계획의 핵심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양산을 추진 중인 개량형 저위력((Low Yield) 전술 핵폭탄이다. B61-12는 0.3, 1.5, 10, 50㏏(킬로톤, 1㏏은 TNT 1000t의 폭발력) 등 여러 단계로 폭발력을 조절할 수 있다. 최대인 50kt의 B61-12가 땅속을 깊이 파고들어가 터질 경우 실제로는 750㏏∼1.25 Mt(메가톤, 1Mt는 TNT 100만t 폭발력)의 효과를 낸다. B61-12는 낙하산 대신 꼬리 날개가 부착되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 내부 유도체계가 장착돼 있어 목표물을 30~60m 오차범위로 정밀 타격할 수 있다.

특히 B61-12는 지하 100~150m 이상 되는 목표물을 타격 가능해 ‘핵 벙커버스터’로 불린다. B61-12는 북한의 지하벙커뿐 아니라 중국 비밀 핵시설인 지하 만리장성, 러시아의 지하 지휘소까지 모두 손쉽게 파괴할 수 있다. 북한의 핵 공격 대피소로 알려진 평양 지하철은 지하 100~150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쟁지휘소인 ‘철봉각’은 이보다 수십m 더 깊은 지하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브루스 베넷 미국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B61-12는 낙진 피해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적국의 지하 핵무기 시설과 지하 벙커를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최근 들어 B61-12의 성능 시험을 완료하는 등 저위력 핵무기들을 속속 개발하는 것은 물론 실전 배치까지 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전술핵무기 위협에 대한 대응 전략이자 북한·이란 등 핵무기를 보유했거나 개발하려는 국가들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는 2018년 2월 발표한 핵 태세 검토 보고서(NPR, Nuclear Posture Review)에서 기존 핵무기보다 실제 사용 가능성이 높은 저위력 핵무기를 적극 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미 국방부는 적대 세력의 각종 안보위협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국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맞춤형 핵전력’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었다. 실제로 미국은 B61-12 성능시험 평가를 마치고 2021회계연도(2020년 10월~2021년 9월 30일)에 생산을 시작한다.

미국의 3대 핵무기 개발 기관 중 하나인 샌디아 국립연구소는 올 6월 29일, B61-12의 운용성과 안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시험하는 기술평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발표했다. 샌디아 국립연구소는 “이번 기술평가는 B61-12에 충격, 진동, 낙하, 극심한 온도, 대량의 전자파 등의 물리적 실험을 실시했다”면서 “이번 실험은 B61-12의 성능이 의도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이정표”라고 강조했다. 특히 샌디아 국립연구소는 비행시험을 포함한 고도의 컴퓨터 알고리즘 기반 성능실험을 동반했으며 핵무기 부품과 체계, 탄두의 통합성을 검증함으로써 의도하지 않는 폭발이나 허가되지 않는 무기사용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샌디아 국립연구소는 이에 앞서 올 6월 8일 F-15E 스트라이크 이글 전투기의 B61-12 투하 최종 성능시험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실험은 네바다주 토노파 시험장에서 F-15E 2대를 동원해 핵탄두를 제거한 B61-12를 실제 고고도와 저고도에서 각각 투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고고도 실험의 경우 해발고도 7.62㎞ 상공에서 모형 B61-12를 투하한 후 55초 만에 호수 바닥에 꽂히며 12~15m 높이의 사막 먼지를 일으켰다. 저고도 투하 실험은 F-15E가 해발고도 304m 상공에서 음속에 근접한 속도로 비행하면서 모형 B61-12를 투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사막 표면에 도달하는 데는 35초가 걸렸다. 샌디아 국립연구소는 당시 실험이 F-15E와 B61-12간 호환성을 입증하는 마지막 단계로서 완벽한 무기체계 성능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며 B61-12가 F-15E에서 탄도비행 방식이나 유도중력 낙하용으로 모두 수행 가능한 것이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북·중·러 핵 위협에 강력한 억지력 발휘할 듯


▎B61-12 전술 핵폭탄. / 사진:미 공군
미국이 저위력 전술 핵무기를 실전 배치할 경우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핵 위협에 강력한 억지력을 행사할 수 있다. 전략 핵무기가 적국의 대도시나 공업 중심지, 군사요충지 등을 초토화하는 동시에 엄청난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만, 전술 핵무기는 타격 범위와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한정된 지역과 표적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장거리 폭격기 등에 탑재되는 전략 핵무기는 100㏏ 이상인 핵폭탄을 의미한다. 반면 전술 핵무기는 100㏏ 미만의 핵폭탄을 지칭한다. 주한미군은 과거 전술 핵무기 950발을 한국에 배치했었다. 미국은 1991년 9월 당시 조지 H.W. 부시 대통령의 핵무기 감축 선언에 따라 주한 미군에 배치됐던 전술 핵무기를 철수시킨 바 있다. 저위력 핵무기는 전술 핵무기 중에서도 폭발력이 상당히 낮은 소형 핵폭탄을 말한다.

실제로 저위력 핵무기를 북한에 사용했을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나왔다. 핵무기 전문가인 키어 리버 미국 조지타운대 국제안보연구소 교수는 최근 발간한 저서 [핵 혁명의 신화(The Myth of the Nuclear Revolution)]에서 “북한 핵을 억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으로 덜 파괴적인 위협이 더 파괴적인 위협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은 정권은 미국이 평양을 파괴하고 수백만 명을 죽일 수 있는 고위력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면서 “반면 북한은 핵 시설과 같은 목표만 골라서 타격할 수 있는 저위력 핵무기가 실제 사용될 가능성 때문에 핵 위협을 고조시키기를 망설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버 교수는 미국 국방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인 ‘위험 예측 및 평가(HPAC)’를 사용해 고위력·저위력 핵무기를 북한의 다섯 개의 핵 시설에 사용했을 때 상황을 모의 실험한 결과를 밝혔다. 북한의 5대 핵시설은 평안북도 영변과 박천, 자강도 하갑, 평양 강선, 황해북도 평산 등에 있다.

고위력 핵무기인 W88 핵탄두 10발이 사용된 경우, 방사능 낙진이 평양 이남과 한국 남서부 일부 지방을 제외한 한반도의 전 지역 및 일본까지 영향을 미쳤고, 한반도에서만 최대 30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W88 핵탄두는 미국의 대표적 전략 핵무기로 위력이 475㏏에 달한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위력이 15㏏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30여 배의 위력인 셈이다. 반면 저위력 핵무기인 B61-12 20발을 같은 목표에 사용했을 경우, 목표 지역 주변에서만 낮은 수준의 낙진이 발생했으며 100명 미만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는 재래식 작전 수준의 인명 피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은 메가톤 규모의 전략 핵무기보다 낙진 효과를 최소화하면서 북한의 지하 핵시설을 원점 타격할 수 있도록 저위력 핵무기를 개발해왔다고 분석할 수 있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해 7월 상원 군사위 인준청문회에서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미군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시설을 재빨리 무력화시킬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 “북한 주민의 인명 피해가 없도록 하면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정부기관들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베넷 연구원도 “미국이 F-15E의 B61-12 투하실험을 실시한 것도 앞으로 북한의 지하 핵 시설을 타격하기 위한 전략 개발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지하 핵시설 원점 타격용 핵무기, 韓 F-15K 탑재?


▎중국 인민해방군이 중거리탄도미사일 DF-26을 실은 차들이 이동하고 있는 모습을 지난해 9월 공개했다. / 사진:웨이보
미국은 이와 함께 동맹국의 전투기들도 B61-12를 사용할 수 있는지를 실험할 계획이다. 미국은 나토의 5개 회원국들(독일·벨기에·네덜란드·이탈리아·터키)과 핵무기 공유협정을 맺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5개 회원국의 6개 기지에 150~180발의 B61 계열 핵폭탄을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평상시에는 핵무기를 관할하지만, 전시에는 5개 회원국이 보유한 전투기에 탑재해 핵 공격을 할 수 있도록 했다. 5개 회원국이 보유하고 있는 F-35를 비롯해 F-16과 토네이도 전투기 등의 호환성 실험이 성공하면 B61-12가 실전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5개 회원국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핵무기 공유협정을 체결한다면 B61-12를 보유할 수 있다. 한국 공군이 보유한 F-15K는 F-15E를 개량한 기종이고, 내년까지 40대의 F-35A 도입이 완료된다.

사실 미국은 이미 저위력 핵무기를 실전 배치한 상태다. 미 국방부는 올 2월 4일 저위력 핵탄두인 W76-2를 장착한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인 트라이던트Ⅱ를 실은 오하이오급 전략 핵잠수함 테네시호(SSBN-734)가 대서양에 실전 배치돼 있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테네시호가 지난해 말께 모항인 조지아주 킹스 베이에서 출항해 대서양에서 ‘억지 순찰(deterrent patrol)’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민간연구기관인 미국과학자연맹(FAS)의 주장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NCND)’는 원칙을 들어 대응해오다 결국 공식 확인해줬다. FAS에 따르면 지난해 2월에 첫 제품이 완성된 W76-2 핵탄두 하나의 위력은 5~7㏏로,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⅓수준이다. 미 핵잠수함이 통상 탄도미사일에 장착하는 핵탄두의 위력은 90~455㏏에 달한다. 미 국방부는 테네시호에 탑재된 트라이던트Ⅱ 미사일 24기 가운데 몇 기에 W76-2를 장착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W76-2는 김정은과 북한군 지휘부가 숨는 지하 벙커나 지휘소 등을 공격할 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어왔다. FAS의 한스크리스텐슨핵 정보국장은 “W76-2는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지만 북한과 이란에 사용할 수도 있는 적절한 무기”라면서 “미국 정부가 W76-2를 실전 배치했다고 발표한 것은 사용할 의사가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테네시호뿐만 아니라 태평양에 배치된 미국의 핵 잠수함에도 W76-2가 이미 배치됐다”면서 “W76-2는 미국이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는데 이상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해군은 올 2월 12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인근 해상에서 오하이오급 전략 핵잠수함 메인호에서 트라이던트Ⅱ를 시험 발사한 바 있다. 당시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는 트라이던트Ⅱ의 시험 발사가 정기적인 평가 훈련이라고 밝혔지만, 오하이오급 전략 핵잠수함에 저위력 핵탄두가 장착된 SLBM을 사상 처음으로 실전 배치한 것은 핵전략에서 상당히 획기적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핵잠수함에 저위력 핵탄두 실전 배치


미국이 저위력 핵무기를 새로운 억제력 수단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제한적 핵 도발을 예방하려는 조치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압도적인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제한적인 핵 도발을 감행할 경우 이에 대처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ICBM을 사용하면 전면적인 핵전쟁으로 번질 위험이 있다. 하지만 저위력 핵무기를 보유하면 전면적인 핵전쟁 위협은 감소하고, 적국의 핵 도발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저위력 핵탄두를 탑재한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실은 핵잠수함이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작전을 벌이면 북한 전역은 물론 베이징 등 중국 내륙 일부도 사정권에 들어간다.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은 1600~2500㎞ 떨어진 목표물을 3m 이내의 정확도로 타격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저위력 핵무기는 김정은 정권이 핵 도발을 감행하거나 핵 위협을 시도했을 경우 이를 억제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미사일 전력 강화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을 압도하는 중국의 중거리 미사일 전력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그동안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을 비롯해 미국령 괌과 주일미군 기지 등을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 탄도 미사일 전력을 강화하는 데 박차를 가해왔다. 미 국방부가 지난해 5월 의회에 제출한 ‘중국의 군사와 안보 발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사거리 1000~5500㎞의 지상 발사형 중거리 및 준(準)중거리 탄도와 크루즈 미사일 1150기를 보유하고 있다. 종류별로 사거리가 3000~5500㎞인 중거리 탄도 미사일(IRBM)은 160기, 사거리 1000~3000㎞인 준중거리 탄도 미사일(MRBM)은 450기, 지상형 순항미사일(GLCM) 540기 등을 갖고 있다. 사거리가 1000㎞인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은 1500기나 보유 중이다. 중국이 보유한 사거리 1000㎞의 미사일 정도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사거리 3000㎞ 이상이면 미국령 괌을 타격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은 사거리 1500㎞인 ‘DF(東風·둥펑)-21D’와 사거리 4000㎞인 ‘DF-26’을 개발해 실전 배치했다. ‘항모 킬러’라고 불리는 DF-21D는 항모 등 미군 함정들뿐만 아니라 일본 열도 전역은 물론 오키나와 등에 있는 주일 미군기지까지 공격할 수 있다. ‘괌 킬러’로 불리는 DF-26도 미군 항모와 일본 열도 전역과 주일 미군기지 및 괌까지도 충분히 타격할 수 있다.

INF 탈퇴한 미국, 중거리 미사일 전력 증강에 박차


▎1987년 12월 8일, 당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오른쪽)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중거리 핵미사일을 전량 폐기하는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 서명했다. 이 조약은 2019년 8월 2일까지 31년 동안 유지됐다. / 사진:EPA/연합뉴스
미국이 지난해 8월 2일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공식 탈퇴한 것도 중국의 중거리 미사일 전력 때문이다. INF 조약은 미국과 옛 소련이 냉전 시대를 종식하기 위해 합의한 첫 군축 협정으로, 1987년 12월 8일 당시 로널드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서명했었다. 이 조약은 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사거리 500~5500㎞ 중·단거리 탄도 및 크루즈 미사일의 생산·실험·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조약에 따라 미국은 846기, 소련은 1846기를 3년에 걸쳐 모두 폐기했다. 미국 정부는 INF 조약 탈퇴의 대의명분으로 러시아의 조약 위반을 내세웠지만, 대폭 강화된 중국의 중거리 미사일 전력이 자국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 진짜 이유였다.

ICBM 전력에선 중국을 압도하고 있지만 다른 미사일 전력에선 미국이 중국에 절대 열세다. 미국은 INF 조약에 얽매여 왔기 때문에 중거리 미사일을 1기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미 국방부가 INF 조약 탈퇴 16일 만인 지난해 8월 18일 캘리포니아주 샌니콜러스섬에서 재래식 지상 발사형 크루즈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500㎞를 날아간 이 미사일은 지상 공격형 토마호크의 개량형으로, MK-41 발사대를 통해 발사됐다. MK-41은 루마니아와 폴란드에도 배치됐는데, 러시아가 사거리 2400㎞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발사가 가능하다고 비난해온 발사대다. 미 국방부는 지난해 12월에는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지상발사형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당시 이 미사일은 500㎞ 정도 비행했다.

미 정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미사일 배치도 추진하고 있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지상 발사형 중거리미사일을 아시아 지역 동맹국 및 파트너국들과 협의를 거쳐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배치 후보지로는 한국·일본·호주·괌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미국 정부가 꼽고 있는 가장 적절한 후보지는 일본의 류큐제도(琉球諸島)와 팔라우제도다. 전체 인구 2만여 명밖에 안 되는 섬나라인 팔라우는 미국과 자유연합협정(Compact of Free Association)을 맺고 있어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기가 용이하다. 류큐제도는 일본 난세이 제도 중에 오키나와 현에 속하는 200여 개 섬을 말한다. 이 중 주일미군 기지가 있는 오키나와 섬이 가장 크다. 일본 남부 규슈와 대만 사이에 있는 류큐 제도의 섬들은 활처럼 호를 그리며 중국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 전략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적 기지 공격이란 북한이나 중국 등 적국이 핵과 대량살상 무기 등을 탑재한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조짐이 있을 때 적 기지를 선제 타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역대 정부는 불가피한 경우 적 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자위의 범위에 포함되기 때문에 헌법상 허용되지만, 정책상 적 기지 공격 능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실제로 일본 자위대는 외국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만 최소한의 방위력을 행사한다는 평화헌법 제9조의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과 미국의 일본 방어 의무를 규정한 미·일 안전보장조약 등에 따라 선제공격용 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

아베, 美 미사일 도입 만지작…中 “좌시할 수 없어”


▎미 국방부는 지난해 8월 중거리핵전력(INF)조약 탈퇴 16일 만에 캘리포니아주 샌니콜러스섬에서 지상 발사형 중거리 순항 미사일 시험발사에 나섰다. / 사진:미 국방부
일본 정부는 올 6월 2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개최하고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 등 장기적인 안보전략인 방위 계획대강 개정을 검토하기로 했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 왔지만,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확보하지 못해왔다. 때문에 아베 총리로선 개헌하지 않더라도 현행 헌법을 유지하면서 적 기지 공격 능력을 보유할 경우 개헌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적 기지를 공격한다는 것은 자위대가 전쟁할 수 있는 군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미사일 방어 대책 검토팀의 제안을 받아 이르면 오는 9월 중 새로운 억지 대책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일본 자위대가 적 기지 공격 수단으로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을 도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위대가 보유하고 있는 미사일들은 대부분 사거리가 100~20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자위대가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을 도입할 경우 북한 전역은 물론 중국의 미사일 기지들을 타격할 수 있다. 미국은 오키나와 등 류큐제도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강력하게 바라고 있지만, 일본이 자국의 중거리 미사일을 도입하는 것도 지지하는 입장이다. 미·일 양국은 일본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와 자위대의 중거리 미사일 보유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반면 중국 정부는 일본이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허용하거나 도입할 경우 보복 조치를 가하겠다는 입장이다. 우첸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만약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고집하면 중국은 결코 좌시할 수 없다”며 “일본은 자국 영토에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중국이 반발하는 이유는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이 자국 안보에 엄청난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미국의 저위력 핵무기와 중거리 미사일은 동북아와 아·태 지역 안보 질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2008호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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