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커버 스토리 | 현장취재] 뛰는 집값… 사면초가에 몰리는 청년들 

“발품 팔아도, 대출 받아도 내 집은 없네” 

LH 청년전세임대주택 등 정부 사업, 절차 복잡하고 제 기능 못 해
전셋집 계약은 ‘하늘의 별 따기’… 청년 주거빈곤율 급상승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인근 원룸 및 하숙집 공고가 붙어 있는 담벼락 앞을 한 청년이 지나가고 있다. / 사진:뉴시스
"서울엔 집이 이렇게 많은데 제가 살 집은 왜 없는 거죠.(LH 청년전세임대) 당첨되고 나서 집을 구하러 다닌 지 벌써 한 달 하고 보름이 지났는데 아직도 헤매고 있어요.”

장수연(24·여)씨는 서울 성북구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하소연했다. 장씨는 20살에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한 대학생이다. 서울살이를 시작한 초반에는 대학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1년 전 본인만의 주거 공간을 찾아 월세 주택을 구했다. 그러다 얼마 전 친구에게 LH 청년전세임대 제도를 접했다. 올해 초에 신청해 지난 5월 2순위 대상자에 선정됐다. 하지만 장씨는 8월 중순까지도 전셋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장씨가 신청한 LH 청년전세임대주택은 시세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저소득층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등 청년들이 전세 주택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세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전세금 지원 한도액은 수도권을 기준으로 최대 1억2000만원이며 광역시 9500만원, 기타지역 8500만원이다. 전세 매물은 대상자가 직접 찾아야 한다. 한도액을 초과하더라도 초과분을 입주자가 부담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상자는 소득분위에 따라 임대보증금 100만원(1, 2순위)~200만원(3순위)과 전세금 지원금의 이자(연간 1~3%)를 내면 된다. 쉽게 말해 전세금 1억2000만원 주택을 전세임대주택으로 임차한 경우 세입자는 보증금 100만원과 월 임대료 약 20만원만 내면 된다. 서울시 원룸 월세 평균이 50만원을 웃돈다는 것을 고려하면 비교적 저렴한 수치다.

다만 입주 매물을 대상자가 직접 찾아야 하는 단서가 붙는다. 현장에서는 실제 매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푸념이 쏟아진다. LH 청년전세임대주택 대상자들의 말에 따르면 현 제도로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새 전셋집을 찾던 취업준비생 이모(27)씨는 서울 시내 부동산 중개업소에 ‘LH 청년전세’ 매물을 문의했었다. 이씨는 “LH 청년전세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공인중개사들의 표정이 굳어지는가 하면, 번번이 돌아오는 답도 ‘모른다’ 일색”이라고 전했다.

기자가 다녀본 현장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하루는 전셋집을 구하는 대학생 장수연씨와 함께 서울 성북구 일대를 뒤졌다. 성북구 정릉동 A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한모(47)씨는 기자에게 “LH 매물은 집주인들이 선호하지 않아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도 한씨는 LH 청년전세임대주택 계약을 수십 건 성사시킨 이력이 있었다. 수소문 끝에 단독주택 2곳을 방문했다. 한 곳은 정릉동 재래시장 인근 반지하층이었고 다른 한 곳은 오래된 단독주택이었다.

전세 매물로 나온 집은 첫눈에 보기에도 열악했다. 15평 남짓한 집의 천장은 거의 주저앉기 직전에다 오랜 장마 탓인지 벽지 곳곳에 곰팡이가 슬어 누렇게 울어 있었다. 장씨는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며 “지금껏 매물을 보러 다닌 곳 중에는 그나마 좋은 환경”이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하지만 장수연씨는 계약에 성공하지 못했다. LH에 제출해야 할 서류들이 번거롭고 부담된다는 이유에서 집주인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임대사업자가 LH 청년전세임대주택 제도를 통해 집을 내놓으려면 LH 위임 법무사의 권리분석을 통과해야 한다. 여기서 일반 전세 계약과 비교하면 LH 청년임대 계약조건이 까다롭고 절차가 복잡하다는 측면이 있다. 권리분석 과정에서 임대사업자는 전셋집에 대한 가압류 여부와 토지대장 제출, 부채비율을 확인할 수 있는 중개대상물 확인 설명서 등을 법무사에게 제출해야 한다.

반지하층 매물과 오래된 단독주택이 대다수


▎전세 매물로 나온 단독주택 집의 천장이다. 비가 온 탓에 벽지에 곰팡이가 슬어 누렇게 울어 있다. / 사진:심민규 인턴기자
서울 영등포구에서 임대사업을 하는 조모(51·여)씨는 “LH 청년임대주택 매물로 내놓으려면 부채비율이 90% 이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조씨는 “권리분석을 통해 빌라의 월세나 보증금 현황을 정확하게 기재해 제출해야 하고 임대 소득 정보까지 공개해야 한다”며 복잡한 절차에 불만을 제기했다. 서류 준비가 복잡하고 집주인 설득이 어려워 LH 청년전세를 아예 취급하지 않겠다는 부동산도 적잖다는 전언이다.

이로 인해 입주 계약까지 성공하는 경우는 입주대상자로 선정된 이들 중 절반 수준에 그친다. 이는 2018년도 국정감사에서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후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LH에서 받은 ‘청년전세임대주택 계약안내 통보 대비 계약률’ 자료를 분석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자료에 따르면 계약률은 2014년 58.3%, 2015년 55.0%, 2016년 46.6%, 2017년 50.0%였다. 해가 갈수록 계약률이 하락한 셈이다.

기자가 만나본 청년들은 LH 청년전세임대를 통해 집을 얻기까지 최소 2개월에서 최대 6개월 정도 부동산을 돌아다니면서 발품을 팔았다. 대학생 정원진(23·여)씨는 “지금 사는 집을 구하면서 내가 처한 팍팍한 현실을 절감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세 매물이 적으니 사람이 조급해지기 시작하더라. 낮에는 부동산을 돌아다녔고 저녁에는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매일 전셋집을 검색했다. 가격 조건이 맞으면 집이 유흥가에 있다거나 위치가 괜찮다 싶으면 반지하층 매물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나는 2개월 만에 집을 구해 다른 청년들에 비해서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심정이 참담했다.”

취업준비생 김영주(24·여)씨는 LH 청년전세임대주택에 살다가 일반 전셋집으로 갈아탄 케이스다. 그녀는 “부동산에서 LH 청년전세임대주택을 꺼렸기 때문에 은행 대출을 받아 새로운 전셋집을 구했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LH 청년전세임대로 얻은 전셋집에서 거주하던 김씨는 개인 사정으로 인해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LH 청년전세임대주택을 물색하다 지친 그녀는 개인적으로 은행 대출을 받아 전셋집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청년 주거 안정 지원을 위해 LH가 도입한 청년전세임대주택 제도가 갖는 한계는 LH 측도 익히 알고 있다. LH 관계자는 “청년전세임대주택 제도가 복잡한 권리분석 절차와 시세와 동떨어진 금액한도로 인해 많은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LH에서는 청년 매입주택과 행복주택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청년들의 주거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LH는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세금 대출 지원 정책뿐만 아니라 매입주택, 행복주택 명목으로 임대주택 공급사업도 진행 중이다. 매입주택이란 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주택사업자가 기존 주택을 사들여 시세의 40~50% 임대료로 청년층과 신혼부부에게 공급하는 임대주택을 말한다. 행복주택은 젊은 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곳에 건설해 주변 시세보다 20~40% 이상 저렴한 임대료로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이다.

이마저도 문이 좁기는 마찬가지다. 수요만큼의 공급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청년주택을 지원한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김보경(27)씨는 “역세권 청년주택이나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경쟁률이 매우 높아 ‘당첨되면 로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SH는 지난해 9월 17~19일 사흘간 서울시 일원에 청년주택 입주자를 모집했다. 강변역 청년주택 모집은 경쟁률 140 대 1을 기록했으며, 충정로역 인근 청년주택은 122 대 1을 기록했다.

140 대 1, 수요 흡수 못 한 임대주택 공급사업


▎지난해 8월 21일 국토부-서울시 구청장 간담회가 열린 서울 서대문구 기숙사형 청년주택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구청장들이 기숙사형 청년주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사진:뉴시스
LH뿐 아니라 다른 정부기관들도 청년 주거 지원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주택도시기금에서 지원하는 중소기업취업청년 전월세보증금대출,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청년 맞춤형 전세월세 대출보증, 버팀목 청년 전세대출 등이 대표적이며, 대부분이 전세보증금을 대출해준다.

이들 기관의 대출 정책도 청년들의 주택 갈증을 해소하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네이버 카페 ‘청년주택정보’에는 “중소기업취업청년 전월세보증금대출에 내야 하는 서류들이 복잡하고 전액 지원해주는 매물을 찾는 것은 정말 힘들다”는 하소연성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네이버 카페 ‘청년주택정보’는 청년(대학생,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들을 위한 다양한 주거 정책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다.

더군다나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쏟아지는 가운데서 나타난 전셋값 상승은 매물 부족 현상을 부추기는 악재로 작용한다. 서울의 경우 1억2000만원의 지원 한도액으로는 아파트는커녕 양질의 원룸 전세도 구하기 어렵다. 서울 외곽에서도 1억원 안팎의 전셋집을 가물에 콩 나듯 시장에 나온다.

한국감정원이 8월 6일에 발표한 ‘8월 1주(3일 기준)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0.17% 상승했다. 수도권 전역의 전셋값이 상승하며 수도권 전셋값 상승률은 4년 9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전셋값은 58주째 상승세를 유지했다.

이런 가운데 집주인들이 전세보다는 월세를 선호하는 최근의 기류가 청년들의 전세난을 더 가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인중개사 한씨는 “대학가 주변 집주인들은 전세 매물보다는 월세를 선호하고 있다”고 시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LH 청년전세임대주택 계약은 복잡하고 번거롭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고, 기존 전세금보다 더 높게 가격을 설정한 집주인들도 더러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기 없는 반지하층과 오래된 단독주택이 그나마 LH 청년전세임대주택 매물로 나온다. 한씨는 “매물이 있다 하더라도 유난히 올해 전셋값이 많이 올랐다”며 “서울 중심부에서 LH에서 지원하는 한도액(1억2000만원)을 초과한 매물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한도액을 넘어서는 비용은 고스란히 청년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고작 1억원으로 서울에서 집 구할 생각 하나”


▎서울 강남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은 매물 안내판. / 사진:연합뉴스
8월 3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동향지수가 2019년 7월까지만 해도 88을 기록했지만, 지난달에는 113.7까지 치솟았다. 전세수급동향지수는 전세 공급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0~200 사이 수치로 표현된다. 100 이상으로 높을수록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함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매물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7월 서울 연립·다세대주택 전세수급동향지수는 전월 대비 3.7포인트 높은 102.3으로 높아졌다. 서울에서 이 지수가 100을 넘긴 건 2017년 9월 이후 약 3년 만이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저금리로 인해 집주인들이 전세 매물을 거둬들이고 월세 비중을 더 높이 가져가고 있는 데 반해 수요자들은 전세를 더 선호하고 있어 전세수급동향지수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 A씨는 전세가 없어지면 청년들의 주거비 부담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단언했다. A씨는 “임대차 3법 영향 등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전세가 줄고 월세가 늘어나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청년층 수요가 많은 전세 매물”이라고 말했다.

아파트에서 시작된 전세 품귀 현상은 연립·다세대주택까지 퍼지고 있다. 결국 청년주거 지원 제도는 매물 부족 현상과 전셋값 상승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셈이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 좌절하는 청춘이 한둘이 아니다. LH 청년전세임대 지원을 받아 전셋집에 거주하고 있는 정원진씨는 “처음에는 내게 주어진 권리라 여겨 당당하게 집을 구하러 나서지만 한 바퀴 돌고 나면 한없이 초라해진 나 자신을 발견한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도 나라에서 돈을 지원받는다는 자각이 들면서 반지하도 감사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지금의 내 처지에 더 좋은 주거 환경은 언감생심 아닐까 한다.”

대학생 장수연씨는 “집을 구하러 다닐 때가 가장 큰 수치심을 경험하는 시기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특히 한 공인중개사로부터 “고작 1억원으로 서울에서 집을 구할 생각을 하냐”는 핀잔을 듣고서는 주거절벽이라는 거대한 좌절을 맛봤다고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단독가구의 빈곤율은 2006년 15.2%에서 2016년 19.9%로 증가했다. 문제는 전체 가구 빈곤율은 떨어지고 있지만 유독 청년들의 빈곤율은 증가한다는 데 있다. 주거 문제로 허덕이는 청년들의 소리 없는 외침은 현실에 치여 자꾸만 길을 잃는 현 한국 부동산 정책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 심민규 월간중앙 인턴기자 smkyu4958@naver.com

202009호 (2020.08.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