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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풍향] 보수 진영 정권 탈환의 ‘걸림돌’ 진단 

당대표 리더십 부재에 ‘허약한 야당’ 드러났다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 수사 돌파 여부가 대선 정국 중대 관건
미래 열어갈 것이라는 ‘좋은’ 정권교체에 대한 믿음 줄 수 있어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월 10일 서울 금천구 ‘즐 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국민 시그널 면접’에 참가하기 위해 면접 장소로 향하고 있다. 이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윤 전 검찰총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 사진:임현동 기자
정권교체를 장담하던 제1야당 국민의힘이 혼란에 빠졌다. 당내 선두 대선주자였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고발 사주(使嗾)’ 의혹으로 공수처에 입건됐다. 수사 결과는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만이 아닌 야권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사안이다.

그런 가운데 ‘무야홍’(무조건 야당 대선후보는 홍준표)을 외쳐온 홍준표 의원의 급상승세를 바라보는 국민의힘 안팎의 시선은 무척이나 복잡하다. 일단 봉합되기는 했지만, 경선 여론조사에서 역선택 방지 여부를 둘러싸고 빚어졌던 당내 갈등은 향후 경선 과정에서 심각한 분열을 예고하는 신호였다.

전체적인 상황을 관리해 당 후보들의 보호를 위한 투쟁을 이끌었어야 할 이준석 대표는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허약한 야당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불과 5개월 전 4·7 재·보선에서 압승을 거뒀을 때 야권 내부에 넘쳤던 정권교체의 자신감은 어느새 ‘이러다가 정권교체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변해버렸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혼돈 상황이나 윤석열 전 총장을 흔드는 여러 상황과 상관없이 정권교체 여론은 여전히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갤럽이 8월 31일부터 사흘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내년 대선에서 ‘현 정권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49%로, ‘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당선되는 게 좋다’는 응답은 37%로 나타났다. 정권교체론이 정권 재창출론에 비해 훨씬 우위에 서 있는 것이다.

정권교체 열망 담아내지 못하는 제1야당


[쿠키뉴스] 의뢰로 한길리서치가 9월 4~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제1야당인 국민의힘으로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는 응답은 47.3%를 기록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재창출해야 한다는 응답 38.8%에 비해 훨씬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넥스트리서치가 SBS 의뢰로 9월 6~7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정권 재창출 39.3%, 정권교체 51.8%로 ‘정권교체’ 응답이 12.5%p 더 높게 나타났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러나 당과 후보 지지율에서는 우세를 장담하기 어려운 혼전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마다 편차는 있지만,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 여론의 비율만큼 야당 대선주자나 국민의힘 지지율이 확고한 우위를 점하지 못한 채 엎치락뒤치락하는 판세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다수 국민의 정권교체 요구를 제1야당인 국민의힘과 그에 속한 대선주자들이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정권교체 여론이 월등히 우세한 환경임에도 이러다가 야당이 정권교체에 실패하는 것 아니냐는 야권 지지층의 위기의식이 대두할 만한 상황이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지난 5개월 동안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이 특별히 잘해서 이 같은 야당의 위기감이 생겨난 것은 아니다. 그사이에 집권세력에 대한 민심이 특별히 달라질 이유 역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집값은 계속 상승일로를 걷고 있고, 악화할 대로 악화한 부동산 민심도 그대로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 국민의 피해와 불만은 한계점에 이르고 있다.

‘입법독주’라는 민주당의 오만한 정치는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그대로 반복됐다. 지난 4월 7일 집권세력 심판에 나섰던 민심이 갑자기 그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로 바뀌었을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국민의힘 내부에서 찾는 게 맞을 것이다. 정권교체 여론과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의 지지율 사이에 존재하는 큰 간격이 그런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국민의힘을 긴장하게 하는 최대 원인은 한때 압도적 승리 가능성까지 보여주던 윤석열이 정작 입당 이후로 이어지는 악재들 속에서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다. 윤석열을 새로운 대안으로 기대했던 중도층에서 이탈의 폭이 컸던 이유는 정치 행보 도입부에서 보였던 과도한 보수 행보에 대한 실망, 잇따른 설화가 낳은 ‘준비되지 않은 후보’라는 인상 때문이었음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뒤로는 윤석열 자신도 그러한 지적들을 받아들여 중도확장성을 위한 실용주의적 행보, 불필요한 말을 조심하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방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정성을 찾아가는 단계에서 ‘고발 사주’ 의혹이라는 느닷없는 태풍이 불어닥친 것이다.

만에 하나 검찰총장이 부하 검사에게 지시해 야당이 고발하도록 사주한 게 사실이라면, 대선후보직에서 사퇴해야 할 정도의 중대 사안이다. 그러나 아직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고발장 이미지를 캡처해 보낸 사람이 당시 대검에 있던 손준성 검사가 맞는지, 그랬을 경우라 하더라도 고발장 작성자가 손 검사가 맞는지는 가려지지 않은 상태다. 윤 전 총장이 그 과정에 개입했다는 정황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물론 윤석열은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당시 손 검사가 고발장을 작성해서 야당 의원에게 보낸 것이 사실일 경우에는 관리소홀에 대한 검찰총장의 도의적 책임은 남는다. 윤 전 총장도 “명확하게 확인된다면, 당시 대검의 어느 직원이나 검사라 해도 총장으로서 그런 걸 살피지 못한 부분에 대해 국민에 사과할 수 있다”며 만약의 경우 자신이 취해야 할 태도를 언급한 바 있다. 공수처가 수사에 착수하고 압수수색까지 했으니 머지않아 진상이 하나씩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중도·보수 ‘대안’으로 여겨졌던 尹의 위기


그런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전격 수사에 착수하면서 손준성 검사뿐만 아니라 대선후보인 윤 전 총장까지도 곧바로 피의자로 입건하는 무리수를 던졌다. “언론에서 이야기해서 강제수사한 거지, 죄가 있냐 없냐는 그다음의 이야기”라는 공수처의 설명은 황당하기만 하다. 언론에서 지적했다고 해서 수사기관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한 예를 본 기억이 없다. 현재까지는 윤석열에게서 아무런 범죄 혐의가 드러난 것이 없다. 대다수의 법조계 인사도 “설혹 손준성 검사가 고발장을 작성해서 김웅 의원에게 보냈다 한들, 윤석열의 개입이 입증되지 않는 한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다른 수많은 고발 사건을 쌓아두고 있는 공수처가 유독 윤석열 고발 사건에 대해서만 이렇게 신속하게 수사에 나서고, 야당의 선두 대선주자를 입건부터 하고 보는 광경은 전례 없는 일이다. 윤석열의 경우도 다른 사람들을 조사한 이후에 범죄 혐의가 있으면 그때 입건하고 수사하는 것이 기본이다. ‘일단 입건부터 하고 나서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나중에 가리자’는 것은 대선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 행위라는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 윤석열을 곧바로 겨냥하고 나선 공수처의 수사가 대선후보인 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안겨주는 결과로 이어질지, 아니면 ‘윤석열 죽이기 2라운드’라는 역풍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그에 대한 지지가 다시 결집하는 계기가 될지 지켜볼 상황이다.

윤석열을 향한 수사의 칼날은 이것만이 아니다. 1심에서 법정구속 됐던 장모에 대한 2심이 진행 중이고, 부인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도 본격화되고 있다. 검찰총장 시절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의혹 수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고발된 사건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야당 대선후보를 겨냥한 수사가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일은 우리 정치사에 없었다.

검찰총장으로 있을 때는 반복되는 ‘찍어내기’ 시도에도 건재했던 윤석열이었지만, 그때와는 비할 정도가 아닌 일대 고비를 맞고 있다. 지금의 대선 환경을 볼 때 윤석열이 이런 의혹으로 무너지는 사태라도 발생하면 국민의힘도 그 타격을 고스란히 넘겨받으며 정권교체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당장 윤석열이 ‘고발 사주’ 의혹 수사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느냐 여부가 대선 정국의 중대 고비가 될 것이다.

그런데 ‘고발 사주’ 의혹으로 윤석열이 흔들리는 사이, 홍준표 의원의 가파른 상승세가 주목받고 있다. 대부분의 가상 양자 대결 여론조사에서는 여전히 윤석열의 본선 경쟁력이 홍준표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보수 야권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는 홍준표가 윤석열을 앞서는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9월 6~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의 보수 야권 대선후보 적합도를 보면 홍준표(32.6%)가 윤석열(25.8%)을 6.8%p 차로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는 결과가 처음으로 나왔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사가 9월 6~8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보수 진영 대선후보 적합도에서 홍준표(24%)가 윤석열(18%)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넥스트리서치가 SBS 의뢰로 9월 6~7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힘 대선후보 적합도에서 홍준표(27.1%)가 윤석열(22.8%)을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쯤 되면 보수 야권 내에서도 허황된 얘기로 여겼던 ‘무야홍’이 현실로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생겨날 만하게 됐다. 한껏 고무된 홍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골든크로스(지지율 역전)가 발생했음을 알리고 자신의 확장성을 강조하는 글들을 연일 올리고 있다.

‘무야홍’과 ‘홍나생’ 사이의 딜레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9월 10일 국회 의원회관 내 김웅 의원 사무실에서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김웅 의원실로 들어가고 있다. / 사진:임현동 기자
홍준표의 이러한 상승세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직설적 화법이 가져다주는 시원함에 대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의 호응, 윤석열에게 실망한 보수층 일부의 이탈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자신의 부정적 이미지들을 드러내지 않고 윤석열의 약점을 공략하는 노회한 정치 행보가 효과를 거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기간에 홍준표의 이토록 빠른 상승이 가능했던 데는 민주당 지지층에 의한 역선택의 영향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가설이 아니라 현실로 확인되고 있는 부분이다. ‘자신의 상승이 역선택이 아니다’는 홍 의원의 주장과는 달리, 실제로 여론조사 결과들을 분석해보면 구조적인 역선택이 이미 현실이 됐음을 알 수 있다.

앞에 언급한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홍준표는 민주당 지지층(35.9%)과 열린민주당 지지층(45.9%)에서 평균 대비 높은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윤석열이 국민의힘 지지층과 보수층에서 각각 48.8%, 45.8% 지지도를 보인 것과는 대비된다. 알앤써치가 [경기신문] 의뢰로 9월 3~4일 실시한 국민의힘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도 홍준표가 32.5%로 윤석열(29.1%)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며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윤석열은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53.2% 지지율을 기록하며 홍준표(27.2%)를 두 배 가까이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홍준표는 민주당 지지층 37.4%, 열린민주당 지지층 49.4% 등 여권 성향 지지층에서 지지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민주당의 압도적 우세 지역인 광주·전라 지역에서 홍준표는 42.7%를 기록, 윤석열(14.9%)을 3배 가까운 격차로 앞섰다. 다른 조사들에서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홍준표의 ‘1위’는 민주당 지지층에 의한 역선택의 영향이 뚜렷하게 읽히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의힘 선관위가 역선택에 대한 우려를 반영해 1차 경선에 당원 투표를 20% 반영하고 여론조사 문구를 ‘본선 경쟁력’을 측정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하는 절충안을 마련했지만, 이미 역선택은 국민의힘 경선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 있을 경선 과정에서 홍준표는 윤석열을 거칠게 몰아붙일 게 확실하다. ‘고발 사주’ 의혹 문제에 대해서도 이미 홍준표는 민주당만큼이나 강하게 윤석열의 책임을 추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진작부터 “관련 당사자들은 더 이상 당에 누를 끼치지 말고, 또 공작정치 운운하시지도 말고 겸허하게 대국민 고백을 하고 수습 절차로 들어가시기 바란다”며 윤석열을 공격하고 나섰다.

허약한 야당, 컨트롤타워가 없다


▎7월 7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회관에서 열린 원희룡 당시 제주지사 지지 현역 국회의원 모임인 ‘희망오름’ 출범식에서 김종인 전 국민의힘비대위원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 사진:임현동 기자
공수처의 김웅 의원실 압수수색과 윤석열 입건으로 당이 발칵 뒤집히고, 김진욱 공수처장 등을 고발하는 상황에서도 홍준표만은 “후보자 개인이야 훌쩍 떠나버리면 그만”이라며 “후보 개인의 문제에 당이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골든크로스를 주장하는 홍준표가 윤석열에게 쏟아낼 특유의 독설들은 앞으로 갈수록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특히 경선 과정에서 있게 될 TV 토론에서 많은 경험을 가진 홍준표는 주도권을 쥐고 윤석열을 몰아붙이려 할 것이다. 윤석열이 이를 어떻게 방어하며 국민의 긍정적 평가를 끌어내느냐가 또 하나의 변수가 될 것이다.

이대로 가면 윤석열을 제치고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될 것이라 믿는 홍준표에게 같은 당이라고 해서 가리고 조심할 말은 없다. 어쩌면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박근혜의 대결 이상의 격렬한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홍준표에게 윤석열은 무너뜨려야 할 상대가 됐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정치인으로서 첫 검증대에 올라서는 윤석열에게 혹독한 관문이 될 것이다. 윤석열로서는 경선이 끝날 때까지는 여당의 의혹 공세에다 야당 내 다른 주자들의 공격에까지 대처해야 하는 힘든 싸움을 해야 할 형편이다.

정권교체를 원하는 민심을 등에 업는 듯했던 야권이 이렇게 혼돈 상황에 처한 데는 전체를 아우르며 이끌어나갈 리더십이 부재한 현실도 한몫하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30대 젊은 제1야당 대표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변화의 구심이 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취임 이후 당내에서 소모적인 말싸움만 하다가 황금 같은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특히 윤석열의 조기 입당을 압박했으면서도 정작 그의 입당 이후에는 신경전만 벌이는 갈등 양상까지 보이면서, 그럴 거면 무엇 하러 빨리 ‘경선버스’를 타라고 했던 것인가라는 질문을 낳게 했다.

물론 국민의힘이 ‘봉숭아학당’처럼 비치게 된 데는 여러 대선주자의 이기적 태도에 대한 책임이 함께 존재한다. 민주당 지지층에 의한 역선택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다수 경선 주자는 역선택 방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야당 후보를 여당 지지층이 결정하는 사태가 있을 수 있음에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여당의 과도한 공세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홍준표·유승민 같은 경쟁 주자들은 오히려 민주당에 가세해 윤석열을 공격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이런 광경들은 “과연 정권교체를 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인가”라는 야당 지지층의 비판을 초래하기도 했다.

지나간 일이지만, 윤석열 전 총장이 전격적으로 국민의힘 조기 입당을 선택했던 것도 큰 패착이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누차 말했듯이, 윤석열은 11월께 가서 국민의힘 후보와 야권 후보 단일화를 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후보 단일화는 이번 대선에서 야권이 손에 쥐고 갈 수 있는 최대의 이벤트였다.

후보 단일화의 효과가 얼마나 큰 것인가는 2002년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의 당선이나 올해 4·7 재·보선에서 오세훈 후보의 당선에서 확인된 바 있다. 윤석열이 설혹 지지율 부진 상황을 겪더라도,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을 통해 반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최대 무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덜컥 국민의힘에 입당해버린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악수였다. 국민의힘 경선버스에 탑승하며 윤석열이 얻는 것이라고는 당내 경쟁 주자들의 네거티브 공세에 따른 상처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권 내부에 판을 제대로 읽어가며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리더십이 있었다면 그런 상황이 관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대선판을 제대로 읽어나가면서 야권 전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밖에 없는 듯하다. 다만 아직 국민의힘 후보가 확정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당분간은 윤석열의 뒤에서 조언하는 이상의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단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선출된 뒤에 김종인이 정식으로 킹 메이커로 나서서 야권 대선 관리의 사령탑을 맡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다만 그 전제는 국민의힘 경선에서 누구든 중도확장성이 있는 대선후보가 선출될 경우라야 김종인의 역할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이다. 홍준표와는 정치적 악연도 악연이지만, 미래를 말하는 김종인이 과거를 떠올리는 홍준표식 정치와 손잡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아 보인다.

‘고발 사주’ 의혹같이 밖에서 불어오는 외풍만이 야당 지지부진의 원인은 아니다. 정권에 대한 심판만 말할 뿐 나라의 미래를 감당할 능력에 대한 신뢰를 주지 못한 야당과 그 주자들의 모습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국민의힘은 직시해야 한다.

중도층 바라는 ‘새로움’에 대한 답 주지 못해


▎지난 4월 7일 서울·부산 시장 재·보선에서 승리가 확실시되자 환호하고 있는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위쪽 사진)와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 재·보선 대승 이후 국민의힘은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렸다. / 사진:연합뉴스
언제나 대선에서는 누가 중도층의 지지를 더 얻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 이번 대선처럼 진작부터 진영 대 진영의 대결로 굳어진 구도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51대 49의 승부에서 중도층의 향배는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변수가 된다.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야당의 주장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야당이 하는 정권교체가 ‘좋은 정권교체’라는 믿음을 줄 때 비로소 중도층은 마지막 순간에 야당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좋은 정권교체란 단지 여야 혹은 진보-보수가 권력을 주고받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가 있는 정권교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민의힘도 윤석열도, 자신들이 집권하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것이라는 ‘좋은 정권교체’에 대한 믿음을 주지 못했다. 야당이 정권을 잡은들, 과거 보수정권으로의 단순한 회귀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는 게 사실이다. 대선 승부를 가를 중도층이 요구하는 새로움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야당의 처지다.

‘고발 사주’ 의혹이야 시간이 지나면 결론이 나겠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야당의 모습이다. 지금같이 정권교체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도 야당이 정권교체에 실패한다면 야권 지지층에 그들은 ‘역적’이 될지도 모른다. 대선이 이제 6개월도 남지 않았다.

- 유창선 시사평론가 yucs1@hanmail.net

202110호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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